명자나무 꽃은 금방 떠나지 않았다
감정에 맞서다
봄의 경쾌함이 새싹이라면, 은은하고 단호하게 떨어지는 단풍잎은 가을의 상징 같았다. 나무가 뿌리는 낙엽은 지금 가을의 시간이 길 위에 있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낙엽을 쓸어 담은 자루는 꽉 찼지만, 낙엽을 모으는 손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바닥은 떨어진 잎으로 노랗게 물들었지만, 가지만 앙상한 은행나무는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다른 나무들이 있으니 외롭진 않았다.
봄의 절반도 안 되는 태양의 열기는 식물들의 속도도 늦춰버린 듯했다. 뙤약볕에 하루도 안 가던 꽃들이 꿈쩍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태양도 부족해 보였다.
아침에 핀 나팔꽃은 저녁이 되도록 조금도 시들지 않고 그대로였다. 새로 돋아난 제비꽃 군락지에 작은 보라색 꽃다발이 일주일도 넘게 멀쩡하다. 철쭉나무에 핀 꽃은 조화처럼 꽃잎을 다물지 않은 채 계속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꽃들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된 걸까? 아니면 뒤늦게 찾아올 곤충들을 걱정하며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반드시 채워야 할 연료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명자나무 열매와 꽃 (2021.11.3)@songyiflower인스타그램 화단에 명자나무는 할 일을 다하고 휴가를 보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잎이 떨어져 앙상해진 명자나무는 예상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었다. 모과처럼 잘 익은 열매와 붉은 꽃이었다. 꽃잎은 겹겹이 꽃술을 감싼 채 찬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명자나무는 붉게 칠한 손톱과 립스틱 바른 입술로 봄 보다 더 생기 있고 젊어 보였다. 날마다 나는 꽃이 떠났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명자나무 앞으로 갔다.
명자나무를 만날 때마다, 귓속을 맴돌며 꽃이 속삭이는 걸 글로 적어 보고 싶었다. 꽃이 지기 전까지 써보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망설임이 날 가로막았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망설이는 걸 알아챘는지 명자나무 꽃은 금방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꽃과의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매년 꽃이 없는 계절을 슬퍼하고 두려워했다. 눈이 내려도 피어있을지 모를 꽃을 찾아다니며, 완전히 땅이 얼어버리고 나서야 꽃을 포기했다. 그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명을 알지 못했다. 꽃을 좇으며 감정을 피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고통, 분노, 수치, 외로움의 감정을 모두 만나고 나니,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오는 낡은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리 전문가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자신의 책 <나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에서 우울증은 자체 항체 말고는 백신이 없다고 했다. 어른들이 어리석게도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긍정적인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다며 경고한다. 감기같이 우울증은 전염성이 강하고, 부정적인 사람 하나가 모든 사람을 전염시킨다고 말이다. 사람들 틈에서 깊어졌던 우울감은 소소한 기쁨을 찾아 나서면서 달라진 듯싶다.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찾았던 꽃은 나에게 백신보다 강한 항체를 준 것일지 모른다. 꽃이 없는 계절이 더이상 두렵지 않다.
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울증 때문에 모든 것이 시들했던 것을 인정해야 했다. 오랫동안 내 병을 잊게 해 준 꽃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꽃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듯,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 오늘도 명자나무 꽃은 떠나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