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산책은 오랜만이었다. 산책로는 낮에 모아둔 온기가 남은 듯했지만, 밤공기가 빰을 스치며 몸을 차갑게 했다. 곧 들이닥칠 겨울이 떠올랐다. 겨울은 정오나 되어야 겨우 산책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산책로의 차가운 공기는 몸까지 얼어붙게 하지만, 한낮의 햇볕은 따뜻하게 뺨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오래 걸어도 몸은 쉽게 뜨거워지지 않는다. 꽃이 없으니 마음은 더 쓸쓸할 것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이 임박했다.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계절 뒤로 숨어버린 꽃들이 아쉬웠다.
밤 산책을 나온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니, 나의 시간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듯 느껴졌다.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낮에 나온 사람들과 좀 달랐다. 일과를 마친 사람들은 모습은 피곤한 듯했지만, 걷는 몸짓은 한결 가볍고 부드러웠다. 산책로 가운데 하천 물은 소리 없이 흘러가고,양옆을 오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들은 여유가 있는 걸음으로, 천천히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듯 멈추지 않았다.
산책로에 조명을 받은 황화코스모스가 밤길을 근사하게 해 줬다. 낮에 찍은 코스모스가 차갑게만 보였는데, 가로등 조명 아래 코스모스는 포근하게 느껴졌다. 줄기와 잎이 꽃잎과 함께 반짝거리며 나를 멈춰 세웠다.
황화 코스모스의 낮과 밤
꼬박꼬박 일기처럼 글을 쓰면, 내 삶도 별일 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화분에 키우는 화초들이 이파리가 커지고 꽃을 피우니, 함께 살아 있음을 느끼며 감사했다. 싹이 올라올 때부터, 마지막 꽃을 남기고 떠날 때까지 모든 순간이 노트에 남았다. 이제 나팔꽃 덩굴은 씨앗주머니를 선물을 두고 바짝 말라버렸다. 베란다엔 빈 화분이 더 많아져 마음 한구석도 허전했었다.
밤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면, 코스모스가 밤에도 빛이 난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코스모스를 실컷 보고 나니, 가을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을꽃을 다 보고 온 줄 알았는데, 집 앞 화단엔 새하얀 까실쑥부쟁이 꽃이 어둠 속에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계절이 겨울을 준비하느라 꽃을 다 숨겨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찾지 않은 내 마음 때문에 꽃을 보지 못했나 보다. 아직 남은 가을이 내게 꽃을 보는 방법을 알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