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있기엔 구름을 밀어내는 바람이 좋아 보였다. 낙엽길을 따라 걷고 나서 차가운 커피를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걸어도 몸은 커피가 마시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몸은 더워지지 않았고, 마실 물도 필요하지 않았다. 몸을 감싸줄 따뜻한 이불 생각이 간절했다. 우박과 비가 섞여서 쏟아지더니 동장군이 코앞으로 와버렸다.
어제와 비슷한 풍경의 공원 산책로엔 낙엽이 속도 조절을 하는 듯했다. 노란 잎이 시작한 낙엽비는 느티나무의 갈색 잎이 거들고 있었다. 며칠 사이 더 붉어진 단풍나무는 립스틱 바른 입술처럼 강렬하게 시선을 잡았다. 나무들을 보느라 공원 화단에 남은 꽃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나리 꽃 (2021.11.10 @songyiflower인스타그램)
"어머, 봄인 줄 깜빡 속을 뻔했네."라며 남편이 껄껄 웃었다. 정말로 겨울이 떠나고 꽃피는 봄이 온 것 같았다. 공원 울타리로 심어진 개나리가 노랗게 꽃이 핀 것이다. 빙 둘러진 담장마다 개나리가 한두 송이씩 피어 있었다.
겨울을 보내는 동안 꽃 피우는 법을 잊어버릴 까 봐 그런 건가? 내년 봄에 꽃 피울 연습을 미리 하는 건가? 미루던 숙제를 급하게 끝낸 듯 엉성해 보였지만, 노란 꽃잎은 작고 앙증맞았다.
사는 게 하루하루가 훈련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훈련을 하듯 매일 산책을 한다. 운동처럼 충분히 걸으면 마음도 단련시킬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는 기분을 불러오는 가장 자연스러운 행위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갈 땐 의기양양한 기분이 돼서, 매번 굳은 다짐을 했다. 하지만 하루를 보내다 보면 지쳐버리고, 그냥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렇지만 나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내일 산책을 나서면, 다시 하고 싶은 기분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초롬하게 핀 개나리 꽃은 '너도 지금이 꽃핀 날이라고 떠올려봐.'라고 하는 듯했다.
꽃잎만큼 작게 아무도 안 들리게 나만 웃었다. 웃는 얼굴을 들킬까 봐 고개를 들었더니 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