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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Nov 24. 2021

착한 텃밭 표류기

프롤로그

 텃밭 당첨은 소망 목록 하나실현시켜주었다. 해보고 싶었지만 두렵고 자신 없었다. 아파트 베란에서 토마토 화분 키웠던 경험은 텃밭에선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작물 파 수확시기 정해져 있지만, 수확물을 얻려면 야만 . 처음엔 모두 빈 밭이었지만, 파종을 하고 작물을 심으니 같은 밭은 하나도 없었다. 가뭄과 장마, 비와 바람을 견뎌야 하는 텃밭은 자연 그 자체였다.  

 

  소쿠리에 차곡차곡 수확한 채소를 담아내듯, 텃밭 이야기를 글로 썼다. 쌈채소는 일 년 동안 먹을 채소를 다 먹은 기분이 들게 했고, 일기예보를 신경 쓰며 비 내리는 날을 기다렸다.  소 꽃을 좋아하게 되었고, 고추꽃이 예쁘고, 들깨꽃은 귀여운 것도 처음 알았다. 직접 키운 감자로 감자칩을 만들고 배추를 키워 김장도 했다. 잘 자란 다른 밭 배추를 보며 부러워하고, 고추를 잘 키웠다고 칭찬도 받았다. 원래 말이 많은 나 더 수다스럽게 만든 것이 바로 텃밭이다. 그 많은 수다를 모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쓸게 남은 듯 아쉽다.


 착한 텃밭에서 운 작물들은 계절마다 쓴 것 같은데, 텃밭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선 쓸 기회가 없었다. 갈 때마다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가는  텃밭은 카페에서 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키고 앉을 수 있었다. 흙냄새와 신선한 채소 냄새는 내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곳에서 다른 텃밭에 작물을 구경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옆 밭 할머니는 올 때마다 노래를 부르셨다. 노래가 끝날 무렵이면 가방에 차곡차곡 뜯은 상추를 넣고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가장 오래도록 싱싱한 상추를 키우셨다.

  한 아주머니는 만날 때마다 말을 거셨는데, 밭에 오면 너무 행복해져서 매일 오고 싶다고 하셨다. 밭을 시작하고는 우울한 기분도 싹 사라지셨다고, 사람들 만나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셨다. 나도 수긍하듯 매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방울토마토가 아까워서 못 따먹겠다고 늘 미안해하셨다.

 

 밭 하나에는 '제가 밭에 자주 못 와서요. 오다가다 물 한 번씩 주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팻말이 걸려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밭은 한 번도 마르지 않고 늘 촉촉한 상태였던 것 같다.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밭주인의 펫말은 효과가 좋았던 것 같다.

 

 봄에는 아네모네 꽃이 피고 여름엔 봉선화가 피고 가을엔 해바라기가 피던 밭 있었다. 꽃을 좋아하는 난  갈 때마다 참새 방앗간처럼 그 밭도 찾아갔다. 한 번쯤은 밭주인을 만날 수 있으려나 했는데, 끝내 만나지 못해서 꽃을 잘 봤다는 인사는 못했다.


 수다가 많은 그녀는 늘 짝꿍을 데리고 왔다. 데리고 온 지인에게 텃밭 신청해서 같이 다니자고 설득하는데, 상대방은 늘 시큰둥해했다. 그녀가 상추를 뜯는 동안 옆에서 커피만 마셨다. 아마도 취향은 다른 동무였나 보다. 그래도 혹시 내년엔 나란히 텃밭을 신청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같은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는 엄마들도 있었다. 한 분은 오지랖이 넓고, 또 한분은 고집이 셌다. 밭에 물을 주는 것도 작물에 액비를 주는 것도 서로 맞다고 실랑이를 벌였다. 그런데 늘 같이 와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갔다. 밭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다 들렸다. 래도 아이들은 사이가 좋아 보였다.


 텃밭에서 듣는 소리는  "이야! 와!이것 봐 봐, 많이 자랐네!"라는 반가운 이었다. 수확이 적어도 짜증 내거나 화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도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눈으로 보고 배웠다. 잘 크지 않는 토마토 대신 고추가 잘 열렸고, 시금치가 잘 되지 않지만 비트는 무럭무럭 자랐다. 실망도 하지만 기쁨도 한꺼번에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두 가질 수도 없었지만, 뿌린 만큼 얻을 수 있었다.  

 밭에 물을 주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밭주인들의 수확을 기대하는 마음의 소리처럼 보이지 않는 힘이 담겨 있었다.


  머 시간 소중했다. 뒷산엔 배나무 밭이 있었고, 딸기가 자라는 비닐하우스, 밭을 빙 둘러서 블루베리가 심어진 넓은 농장이었다. 내 이름이 꽂힌 밭고랑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가끔 지나는 바람을 만나고, 참새나 비둘기가 기웃대는 소리 들었다. 건물도 보이지 않고,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야생이 남은 곳이었다. 할머니 우엉 팟에서 놀던 때를 떠올렸고,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쉼터다.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인심 좋은 착한 텃밭이었다. 


 텃밭이야기 묶음에 무슨 이름을 붙이면 좋을까 싶었는데, 첫번째 텃밭이었고, 경험했으니 남편은 '표류기'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떻겠냐고 했다.

 내 첫 번째 텃밭 이야기는 그렇게 '착한 텃밭 표류기'로 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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