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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Dec 14. 2021

꽃을 보니 다시 하고 싶어졌다

글쓰기

  무엇이든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거나 쓸 수는 없었다. 망설이다 못 쓰고, 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흔들린다.

 

 쓰고 싶다고  놓고는 또 핑계를 찾고 있었다. 혼자 하는 작업이라 좋았지만, 누군가가 을 알려주었으면 싶었다. 사람들과 멀어지자, 자연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스마트 폰에 안전문자가 쌓여가는 만큼, 내 글도 늘어가긴 했다. 그래도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길가의 핀 민들레처럼 흔한 이야기 같았고, 서툴게 쓴 글은 아무렇게나 흩어져 핀 망초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완성하고 싶은 이야기는 탐스럽게 핀 배롱나무꽃처럼 가지마다 화려하고 폼나는 것이었을까? 작고 초라해지는 이유를 꽃이 흔하지 않은 계절을 보내고 있어서라고 믿고 싶었다. 꽃을 보러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더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길가에 사는 야생초들은 지루한 시간을 나와 함께 해준다. 조금 서두르면 건널 수 있었는데, 신호등이 깜빡거리며 곧 바뀔 듯했다. 가만히 서 있으려니, 찬바람보다 차가 달리는 소리 더 듣기 싫었다.

 하지만 금방 기분이 아졌다. 노랗고 귀여운 애기똥풀꽃이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건물 공터에 사는 애기똥풀꽃의 고단한 이야기를 듣느라, 내 몸도 이리저리 바람에 휘청였다. 초록 보행 신호 켜지자 우린 서로 헤어졌다.

건널목 신호등을 놓쳤지만, 사진 찍을 시간이 생겼다.  애기똥풀꽃(2021.12.12 @songyiflower인스타그램)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내 사정도 말하고 싶었지만, 꽃 앞에선 생각나지 않았다.


꽃만 보면 멍해지기 때문이다.


 길가의 꽃은 내 지루한 시간만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작고 노란 애기똥풀꽃은 깜빡깜빡 거리며 작동되지 않는 내 몸의 스위치를 켰다. 걱정에 사로잡혀 몸과 정신이 따로였던 나는 고요한  영혼을 만난 듯 평화로움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도 무언가 쓰고 있다고 믿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황이 달라지길 기다리며 지쳐가고 있었나 보다. 자연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희열감을 다시 불러온 듯했다. 온기가 남은 땅에 핀 야생화를 찾았으니,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그만 꽃고통 없이 단번에 피어나지 않는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만의 꽃은 언제쯤 피어날까? 나의 시간은 어디쯤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작은 뿌리가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뿌리를 내리는데 시간은 걸릴 것이고,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일은 누구에 눈에도 띄지 않는다. 단어를 선택하는 일은 신중해야겠지만, 나를 표현하고 쓰는 것을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걱정은 오래 하지 않기로 했다.


아름다운 꽃을 보니, 다시 뭔가가 하고 싶어졌다.




꽃만 보면 멍해져요- 01꽃을 보니 다시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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