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Apr 13. 2022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제비꽃이다

제비꽃

  봄이 되자 어김없이 제비꽃이 찾아왔다. 집 근처 보라색 제비꽃은 대부분 시들었지만,  스마트폰 배경화면엔 선명한 꽃잎 그대로 피어 있다.


 지난달부터 이르게 핀 제비꽃을 찾아온 동네를 뒤지다시피 했다. 봄이 오면 눈이 더 커지는 이유도 제비꽃 때문인지 모르겠다. 제비꽃이 핀 군락지를 찾기 위한 출사점점 더 먼 곳까지 나가게 했다. 동네 필 만한 제비꽃은 거의다 핀 듯싶다. 보라색 제비꽃이 절반 정도 피고 나, 흰 제비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지금은 모든 색 제비꽃이 피어있다. 머지않아 종지 나물이라고 불리는 미국 제비꽃이 남은 시간을 다 채우며 마무리를  것이다.


  제비꽃 꽃대를 길게 뻗어 적극적으로 꿀벌과 나비를 기다리기도 하지만 키가 작은 야생화다. 키가 커진 봄까치꽃, 냉이꽃, 별꽃, 토끼풀, 비비추 가려지기 쉽다. 느덧 생화들이 뒤덮은 곳에서 제비꽃도 뒤엉켜 구분이 되지 않는다. 덥수룩해진 풀밭은 이제 여름으로 향했다.

  

 길가에 콘크리트 틈이나 계단 틈 사이에 피어나는 제비꽃을 찾아 제비꽃 지도를 그렸지만, 전에 피었던 제비꽃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매일 다른 곳에서 제비꽃을 발견하고 있다.  


 작은 균열이 만든 기적 같은 제비꽃이지만 시들면 꽃은 사라진다. 새로 피는 제비꽃을 찾으며 매일 걷고 있지만, 사진을 더 찍고 싶 수집욕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올해 만난 가장 탐스런 제비꽃(2022.3)

 유독 꽃이 작은  야생화들이 신경 쓰이는 건 내가 작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 늘 앞자리를 서야 하는 작은 키였지만, 그다지 불편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맏이였던 내가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것이 섭섭했다. 유독 나만 작아서 누굴 닮은 건지 궁금했지만, 일가가 다 모여도 내가 가장 작았다. 하이힐이 종종 도와주던 시절도 있었지만, 키가 작은 것은 나의 특징 중에 하나일 뿐 장점도 단점도 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키가 작은 것이 흠이면 흠이라고 하셨다. 늘 키가 작아서 라는 말을 듣고 살다 보니, 키가 조금만 컸어도 내 삶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미련을 갖고 있었다. 외모에 대한 미련은 아이를 낳고 나니 싹 사라졌다. 한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일을 겪고 나니, 작은 싹 하나가 올라오는 광경마저도 경이로워졌기 때문이다.

비꽃 한 포기에서 피어나는 꽃송이가 한아름 꽃다발이 되어가는 모습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키가 작은 것 때문에 높은 선반에 손이 닿지 않는다고, 쳐다보지도 않은 일은 없었을까? 나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단절해버린 것은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땅 위로 솟아난 제비꽃처럼  어둠을 뚫고 나가기만 하면 내게도 새로운 역할이 생길 것 같은 설렘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비록 피어난 자리가 꽃밭인지, 차들이 지나는 아스팔트 도로 인지, 아무도 찾지 않은 황무지 같은 곳인지 환경은 선택할 수는 없는 듯싶다. 내가 자란 환경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피는 제비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송이가 촘촘하게 핀 탐스러운 제비꽃을 찾으면, 스마트폰 배경화면을 바다. 처음 한송이 제비꽃이던 화면은 점점 제비꽃 송이가 늘어났다. 지난주 발견한 제비꽃 밭에서 찍은 사진 정점을 찍은 듯하다. 며칠째 배경화면을 바꾸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제비꽃을 찾아 당분간은 더 걷고 싶다. 제비꽃을 찾느라 부지런히 걸었더니 몸은 적당히 힘을 빼고 유연해진 듯하다. 그래서일까? 활짝 핀 꽃처럼 결과를 빨리 보고 싶었던 조바심을 버리고 싶어졌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택 못하고 망설이는 나를 좀 내버려 두기로 했다.

 

 제비꽃이 떠나고 나면 예전처럼  자신을 재촉할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스마트폰 배경화면은 제비꽃이다. 그때마다 제비꽃이 날 응원해주길 바란다.

 '괜찮아. 서둘지 마.' 라며 나를 기다려주고 싶다.

 



 

 

 

이전 04화 도둑은 꽃만 갖고 가지 않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