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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25. 2021

도둑은 꽃만 갖고 가지 않았다

사라진 제비꽃

 얼마 전에 꽃다발처럼 탐스러운 제비꽃을 만났다. 자그마한 제비꽃에서 뻗어져 나온 꽃송이가 빽빽하게 피어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 뒤로 제비꽃을 보러 두어 번 더 찾아갔었다.


 꽃이 유난히 컸던 제비꽃 나무에 기대서 피었었고, 그 옆에 자줏빛에 가까운 제비꽃은 동그랗게 꽃다발을 꽂아 놓은 듯 풍성했다. 나무 주변은 온통 제비꽃 밭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제비꽃 밭은 엉망이었다. 누군가 땅을 파 헤져 뿌리까지 파간 걸로 보였고, 둘 다 같이 파 간 것인 듯했다. 범죄현장을 마주 한 듯 등이 오싹했고, 서둘러 사진 함을 열어 이틀 전에 찍은 꽃을 찾았다. 제비꽃이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주변에 남은 제비꽃은 잔뜩 놀란 듯 굳은 채 모두 시들해있었다.


 며칠 전에부터 작은 파도를 치듯 자꾸만 성가신 일들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발목을 잡고 태클을 걸어오는 듯 일상이 피곤했다. 산책하면서 기분을 풀던  제비꽃 명소였던 나무 아래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 응당 피고 나면 시드는 것이 당연한데, 한참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탐스러운 꽃을 보며 누군가는 준비했을 것이다. 맨손으로 파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쾌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라질 줄 았었다면 더 사진을 찍어 둘걸' 후회가 되었다. 꽃을 찍으며 꽤 여러 해를 다녔는데, 제비꽃 도둑은 처음이다. 꽃을 따가서 사라지는 일은 종종 마주하지만 말이다. 

친구가 말없이 떠나버린 기분이다.

  중랑천 수변공원에 꽃모종이 심어졌다. 얼핏 봐도 열댓 명 되는 작업자들이 빈 화단에 꽃을 심고 있었다. 능숙하게 알록달록 꽃들을 심는 인부들을 보며 방해가 될까 봐 자리를  피했었다. 일주일 만에 찾은 공원엔 그때 심었던 꽃들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소행으로 느껴지는 구멍들이 보였다. 가만히 보니 나팔 수선화들만 쏙 골라 파갔다. 구석에 볼품없이 수선화가 하나만 남, 푹 파인 흙구덩이만 남아 눈에 거슬렸다. 

  

 심어진 모종이 사라지는 것과 야생화가 사라지는 건 좀 다르게 다가온다. 야생화를 가지고 간 누군가는 꽃만 들고 간 것이 아니다. 제비꽃이 있던 자리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미생물과 곤충들의 기회를 뺏아갔다. 물론 도시의 화단에 야생화는 곧 뽑힐 것이다. 화단에 풀을 제거하는 제초작업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비꽃은 그전에 다 시들고 할 일을 마친 뒤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떠난 것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말을 떠올린다. 아쉬운 마음은 텅 비어버린 꽃자리에 두고 왔다.  그리고 내일도 꽃은 필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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