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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an 27. 2022

꽃을 발견하는 즐거움

꽃만 찍는다

 꽃을 찍기 시작해 정신없이 빠져들 때였다. 

 무심함에도 잘 적응한 제비꽃에 홀딱 반해 보이는 대로 찍고 싶었다. 흙먼지 위에도 콘크리트와 벽돌 틈에도 아무 지게 핀 모습이 신기해 어쩔 줄 몰랐다.


  잔디밭보라색 얼굴을 내민 제비꽃을 발견했다. 도 없는 행렬을 보이는 대로 찍다 보니 멀가 날 지경이었다. 키 작은 꽃을 찍느라 았다 일어려는데 리가 청거리며 지럼증이 났다. 이 아득하고 컴컴해지니 잠시 눈을 감은채 다렸다.  

 

  잠시 뒤 정신이 들자 가까운 벤치 앉았다. 힘이 쪽 빠졌다. 제비꽃이 사라지기 전에 야 한다고 조바심을 너무 냈나 보다. 좋아하는 것도 지나치면 집착이 되는 걸까? 보지 못한 장소에서 피고 있을 꽃들까지 다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도시의 제비꽃 (songyiflower@인스타 그램)

 방금 찍은 제비꽃 밭 사진을 보다 보니 실망스러웠다. 작년에 찍은 제비꽃 사진보다 못한 듯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꽃을 쫓아다니니 사진은 많아졌지만 뭔가 빠져 있었다. 마치 어린 시절 조개껍데기 줍기처럼 말이다.


 바다가 가까운 곳이 고향인 나지만 예쁜 조개껍데기는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눈에 들어온 조개껍데기를 주울 때는 그 처음 하나가 만족스러웠다. 모래더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뭔가를 찾아낸 듯 소중했다. 그러다가 무수히 흩어져있는 조개껍데기가 보이고, 파도치는 물결 아래에도 수없이 려 있는 것이 보였다. 하나 둘 줍다 보면, 양손은 무거워지고 맨 처음 주운 조개껍데기가 어떤 건지 잊어버렸.  시작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애써 모은 것이 필요 없어졌지만, 속마음은 누군가에게 내 것을 뺏기기 싫었다. 그런 마음을 들키기 전에 깊은 바닷물에 풍덩 던져버다. 조개껍데기 모으기는 항상 같은 방식으로 시작해서 바다에 던지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꽃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는 거지만, 사실은 '꽃을 발견하는 일'을 즐겼다. 꽃 사진을 찍는 일도 조개껍데기를 잠시 내 손에 모아 두듯 내 시선을 담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꽃을 많이 보던 적게 보던 나는 빈손이었다.

내 삶에서 중요한 것들만 채우고 싶었지만, 무언가가 빠져있는 듯 느껴졌다. 허전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랐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헷갈렸다.


꽃 사진이 늘어나는 만큼 외우는 꽃 이름이 많아지고, 외운 것을 영단어처럼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꽃을 좇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어느 여름 길가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았다. 꽃에서 풍기는 향기였다. 사람들 손이 닿지 않는 후미진 곳에 흔하게 피는 개망초를 꽃이 질 때까지 찍으면서 향기가 익숙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꽃이 건네는 말을 해석하기 시작한 건 그 꽃 향기를 나서부터 였다. 개망초는 나를 어린 시절의 귤밭으로 데리고 갔다. 어린 내가 봤던 그 꽃이 호기심 많던 동심을 채워주었다는 걸 기억나게 했다.


 엉겅퀴 꽃은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며 가시 돋친 몸으로 나를 울컥하게 하게 했지만, 향긋한 향기는 어린 내가 보았던 꽃이 정말로 내게 왔다는 설렘도 주었다.


계절마다 꽃봉오리를 찾으며 새로 피어나는 꽃처럼 잃어버린 꿈을 펼쳐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점점 나는 아무렇게나 핀 야생초들처럼 딱딱한 씨앗을 쪼개며 움트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꽃사진은 수집품 처럼 쌓여간다 (songyiflower@인스타 그램)

 사진을 잘 찍고 싶어 진작가의 사진집이나 에세이를 보며 사진 찍는 법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크게 실력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도움은 되었다. 사진을 많이 찍어봐야 한다는 것과 빛을 잘 다루어야 한다는 것,  사진 한 장에 너무 많은 것을 담지 말라는 조언들은 억하려고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해서도 비슷한 조바심이 났다. '다 쓰지 못하면 어쩌지...' 뭔가를 쓰고 있으면서 다음 떠오르는 글이  사라지면 내가 쓰지 못한 것들이 영원히 생각나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


 노트에 촘촘히 글이 쓰인 날이나, 카메라에 찍힌 꽃들이 메모리카드에 가득 담긴 날은  스스로 많은 일을 한 듯 안심이 되었다. 자판을 두드리며 깜빡거리는 커서 뒤로 나타나는 글자들이 내 발자국처럼 새겨지면 기분 한결 가벼워졌다. 쉬지 않고 걸을수록 머릿속 글자들이 알아서 나오는 기분이었다.


 조바심은 곧 시들어 버리는 꽃처럼 사라지긴 해도 되살아나 날 쫓아왔다. 렇다고 해서 시든 꽃이나 쓰지 못한 문장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모두 욕심이 부른 걱정이었다. 걱정들을 버리고 싶었지만, 사실은 무턱대고 다 갖으려는 내 욕심을 줄여야 했다.

 

 곧 입춘이다. 봄은 저 멀리서 출발했을 것이다. 귀여운 제비꽃을 만날 생각에 벌써 즐거워진다.


 꽃 한 송이를 보자마자 사진을 찍고 싶겠지만, 꾹 참고 소설책 한 페이지를 넘겨보듯 찬찬히 바라보았다.



꽃만 보면 멍해져요- 02꽃을 발견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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