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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y 20. 2021

사진과 사라지는 꽃

꽃양귀비

 그곳으로 달려가는 마음은 설레었다. 지난번 본모습보다 더 반갑게 맞아주길 바랬다. 걸어서 십 분이면 볼 수 있는 꽃밭인데 매일 온다고 말만 하고 한동안 가보지 못했다.  바쁜 척 얼굴 안 내미는데도 반겨주는 꽃들을 보자마자 미안해졌다. 한눈에 봐도 안개꽃 사이로 빨간 꽃양귀비가 많이 핀 게 보였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색 꽃이 피었으니 사람들은 금방 꽃양귀비를 알아봤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던 꽃밭에 상처가 보인다 @songyiflower

 꽃을 보러 온 사람들 말소리와 짹짹 거리는 까치가 뒤섞여 떠들썩했지만 꽃을 보다 보니 잠잠해졌다.

벌써 안개꽃은 시들어 가는 듯했고, 사이사이에 보였던 꽃양귀비는 제법 많아졌다. 중랑천을 따라 길게 만들어진 수변공원 꽃밭은 여전히  바다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바람이 느껴졌다. 찰랑거리는 중랑천과 물결처럼 꽃이 핀 꽃밭은 봄과 여름 사이에 만난 완벽한 친구였다.


망가진 꽃밭 @songyiflower
  지난번 찾아왔을 땐 내 기분이 바닥이었는데, 이번엔 꽃들이 바닥을 보여준다. 며칠 만에 풍경이 달라졌다.

 꽃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

사진을 찍는 동안 사람들 발에 밟히고, 엉덩이를 깔고 앉은 흔적은 꽃들을 죽여가며 유령처럼 기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꽃이 다 피기도 전에 꽃밭 사이로 샛길이 수없이 많이 생겼다. 흙이 완전히 드러난 바닥은 피나며 벗겨진 살처럼 보였다. 고운 얼굴을 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더 활짝 피고 촘촘히 핀 곳을 찾아서 가장 탐스러운 꽃부터 사라지게 한 듯 싶었다.


 부디 꽃과 사진을 찍을 때도 사람 친구와 사진을 찍을 때와 똑같이 서로의 발을 밟지 않고 찍으면 안 될까?


 꽃은 예쁘기도 하지만 사진 속 풍경으로 담기면 더 싱그럽게 반짝인다. 그러니 사진 속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던 꽃은 아름답게 꾸며줄 것이다. 꽃은 재촉하지 않아도 자신의 시간대로 곧 떠나버린다. 친구가 시들어 떠날 때까지 좀 더 붙들고 싶다. 꽃이 꺾이거나 뽑히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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