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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14. 2021

꽃을 보려고 새벽형 인간이 된다

나팔꽃

  아침을 여는 꽃이 있다. 곳곳에 나팔꽃 덩굴이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름부터 가을까지 지런하게도 매일 피어난다. 이른 아침 꽃이 피기 때문에 새벽 산책을 나서야 갓 피어난 나팔꽃을 볼 수 있다. 곱게 핀 꽃을 보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정확새벽형이라고 해야 맞겠다.

 

 오후에 생긴 꽃봉오리가 밤사이 열리며 새벽 5시면 피어있으니 새벽 첫차처럼 날 기다리는 듯했다.

 메꽃과의 나팔 모양의 꽃들은 시간을 못 맞추면 곱게 펼친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나마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긴 분홍 메꽃이 오후까지 피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오전꽃은 오므라들며 시들어 간다. 


 아이들 등굣길에 활짝 피었던 나팔꽃은 학교 앞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벌써 시들해졌다. 오전에 장을 본 날은 이미 돌돌 말린 나팔꽃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다.

하늘색 나팔꽃은 쓰레기더미 담장을 바꿔놓는다

 이른 아침에 나팔꽃은 덩굴장미처럼 눈길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활짝 핀 화려한 꽃장식을 보는 건 아주 잠깐이다.


 금방 시들어 버리니 새침해 보이지만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는 근면함은 단해 닮고 싶은 생각이 다.

 

 꽃이 지면 방울처럼 생긴 꼬투리가 생기는데, 동글동글  잘 여문 씨앗을 그냥 지나치는 건 쉽지 않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나팔꽃 씨앗 수집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어떤 분은 정도가 심해 잘 익고 바싹 마른 꼬투리를 보면 손이 저절로 간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나 역시도 예쁜 색 나팔꽃을 보면 가을이 끝나기 전 남은 꼬투리가 있는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시든 꽃만 있는 화단에 분홍나팔꽃이 주인공이다.

 나팔꽃이 피는 곳은 그다지 깨끗한 공간은 아니다. 길가에 공터처럼 버려진 곳, 쓰레기 투기가 빈번한 빈 땅, 손보는 사람 없이 아무렇게 자라는 나무를 타고 자란다. 종종 전깃줄을 사이에 두고 마치 커튼처럼 늘어진 모습도 본 적 있다. 덩굴식물은 손에 닿지 않은 높은 곳까지 곡예를 부리니 구경하는 것 만으로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한꺼번에 꽃이 많이 피면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 감탄하지만, 다년생 덩굴 장미나 클레마티스처럼 우아한 덩굴식물 취급은 받지 못한다. 내키는 대로 덩굴을 올리는 나팔꽃은 잡초처럼 뽑히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더욱더 나팔꽃은 사람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깊숙이 숨으며 살아남는지 모르겠다. 도심에 피는 나팔꽃은 사람들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완벽한 장식이 된다. 휴가도 없는 도시의 여름은 피곤해 보이지만 나팔꽃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색색이 나팔꽃을 보려면 당분간은 새벽형 인간으로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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