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Aug 26. 2021

엄마를 움직이게 하는 꽃이 있다

분꽃

 처서가 지나고 여름 태양은 한걸음 뒤로 물러섰나 보다. 아침에 나온 태양은 하루가 다 지나도록 금방 숨지 않더니, 하늘도 이젠 어둑해져 저녁이 다시 돌아온 듯 느껴졌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곧 개학이지만 반갑지 않은 바이러스는 떠날 생각도 없으니, 마트를 거의 매일 가다 시 피했다.

"마트에서 집 냉장고를 오가는 나는 누구일까? 엄마지만 엄마를 대신해줄 누가 없을까?"

투덜거리는 내 발소리를 들었나 보다. 지는 해가 만든  내 그림자 끝엔 녹색 이파리가 선명하고, 진한 분홍색 꽃이 보였다.


역시 투덜대는 나를 바로 조용히 시키는 건 언제나 꽃이다. 꽃을 보니 반가웠다.

분꽃은 늦은 오후에 피어 다음날 아침까지 피어 있다

 분꽃은 화단에 많이 심 친숙한 꽃이다. 꽃이 가장 많은 6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가을까지 피어나는데, 키우는 것도 까다롭지 않기 때문이다. 잎 색도 다양해 혼합색이 나오거나, 조금씩 다른 무늬로 피어 매력을 더한다.


 귀여운 나팔 모양의 꽃잎은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의 치장을 도와주던 생화 귀걸이였다. 꽃을 따면 아래 동그란 부분을 잡고 조심히 꽃잎을 당겨 긴 꽃술에 꽃잎이 걸쳐지게 했다. 그럼 화려한 장식의 귀걸이처럼 찰랑거렸다. 꽃송이 밑 둥근 부분을 귀에 걸치면 얼굴도 화사해진 듯 기분이 좋았다. 양쪽 귀 걸린 꽃 귀걸이에서 나는 향기가 엄마가 쓰는 화장품 냄새 같았다.  양쪽 귀에 걸고 놀다 보면 화단 주인에게 혼나곤 했지만, 여름 봉선화 물들이기처럼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다.


 분꽃은 유독 여자들과 인연이 많은 꽃이다. 

잘 익은 씨앗을 쪼개 곱게 빻아 하얀 분을 만들어 얼굴에 바르던 천연 화장품이었다. 가루를 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으니 셀프 생산이 가능한 화장품이었는데, 장을 즐겨하는 여인이 있는 집 마당이라면 분꽃을 키웠을 것이다. 꽃을 보는 것도 좋은데 꽃이 지면 씨앗을 화장품을 만들 수 있으니 더 정성을 다했을 듯싶다. 금이야 편하게 쓸 수 있는 화장품이 있지만, 전엔 꽃으로 화장품을 만들었으니 후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를 부엌으로 보낸다는 그 꽃이었다. 늦은 오후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가족들의 저녁식사를 미리 준비해야 하는 엄마들에겐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꽃이었다. 잠시 오후의 여유를 즐기다가도 꽃이 피면 엄마는 부엌으로 가야 한다니 참 듣기만 해도 섭섭하다. 어쩌면 분꽃 시계를 보고, 밥을 하러 가던 엄마들은 곱게 핀 꽃이 미웠을지도 모르겠다. 시계처럼 오후 4시면 꽃이 피니, 포어 클록(four-o'clock)이라고 불릴 정도로 특이한 이름도 갖고 있다.

분꽃은  곧 하루가 저문다는 걸 알려주는 알람시계 같다.


 그러고 보니 나의 꽃시계도 깍재깍 가고 있었다. 장바구니가 묵직해서 분꽃 사진을 마음껏 찍지 못했지만, 집으로 오자마자 서둘러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이전 09화 꽃을 보려고 새벽형 인간이 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