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착한 텃밭

텃밭과 글밭

눈과 함께 찾아온 손님

by 무쌍

나는 뭔가 단단히 채비가 된 듯 같은 해에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얼마 후 텃밭 하나가 생겼다. 내 이름표가 꽂힌 텃밭에 씨앗을 뿌리고 모종도 심었다. 무쌍이란 이름으로 런치에서 좋아하는 꽃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 만으로 기뻤다.


가을 밭에 김장배추가 수확을 앞둘 무렵이 되자 전엔 없던 자신감이 생겼. 용기가 생기자, 나는 아무렇게나 피는 야생초가 된 듯 생긴 대로 살고 싶어졌다. 브런치에 만든 글밭은 내 생김새처럼 정돈되지 않았지만, 자유로움이 좋다.


그러고 보니 텃밭 일상은 글쓰기와 꼭 닮았다.


1. 주인의 스타일대로 생산된다.

텃밭의 아우라는 김장채소를 키울 때 압도적이었다. 잡초가 솟아날 때마다 손은 쉬지 않았고, 소쿠리를 다 채우지 않아도 수확하는 건 폼 났다.

브런치는 작가가 되는 순간부터 작가 코스프레를 제대로 하는 중이다. 게다가 브런치의 어마어마한 작가들 틈에서 함께 쓰는 건 여러모로 내게 유리했다. 주렁주렁 열매가 달린 텃밭을 구경하듯 러운 시선으로 다른 작가들을 본다. 텃밭 작물들처럼 글쓰기도 주인의 스타일대로 생산된다. 언젠가 내 스타일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살포시 믿어 본다.


2. 채우는 작업이 쉽지 않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면 휑한 빈 땅을 보는 듯하다. 위 영감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가도 생기고, 찾고도 글을 쓰다 보면 산으로 갔다. 그래도 씨앗을 구하고 모종을 사다가 텃밭을 채우듯 글밭을 채우고 있다. 뭘 몰라서 서툰 것이 오히려 용감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3. 내보이고 싶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는 글쓰기가 가장 적합했다. 시간 조절은 내 마음대로 글 쓰는 공간은 아무 데서나 가능했다. 돈이 많이 들고 복잡한 건 내 취향도 아니었지만, 책을 좋아하니 그냥 쓰고 싶어졌다.

글쓰기가 마음을 드러내고 싶은 거라면, 텃밭은 모든 일상이 무용담이다. 남편하고 둘이서 떠는 수다로도 부족해서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텃밭 자랑은 한도 끝도 없이 길어졌다.


4. 상과 수확이 있다.

차곡차곡 완성된 생산물이 눈에 보인다. 나는 잘하지는 못했도 부지런을 떠는 것에 승부 거는 삶을 오래 살았다. 텃밭에 물 주듯 글쓰기도 가능하면 규칙적으로 쓰려고 했다. 그래서 둘 다 수확물은 나왔다. 단 그게 마트에서 파는 당근이랑 비슷한 크기인지, 내 손가락 만한 크기 인지만 다를 뿐이다. 퀄리티는 들쑥날쑥 맛도 보장하지 못했다. 결과가 형편없거나 아예 없기도 하지만 다시 모종을 심어 키웠다. 그래서 늘 기회가 무궁무진하고 작아도 보상이 따라온다. 인정받고 싶던 마음은 모두 텃밭에서 되돌려 받았다. 그리고 나니 글 쓰는 힘을 에너지로 얻었다.


그리고 둘 다 예측할 수 없었다. 텃밭은 보상으로 수확물과 경험담만 준 것이 아니었다. 키워서 성장시키고, 실패와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여유도 알게 했다. 자신감은 글밭을 일구며 내 목소리를 쓰라고 자꾸만 부추겼다. 일 년을 텃밭과 브런치 글밭에서 보냈더니 기묘한 일들이 벌어졌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었다.


눈 덮힌 텃밭(2022.1.19)

폭설이 내리던 날이었다. 날씨는 예보대로 큰 눈이 쏟아졌지만, 브런치에선 내게 예고도 없이 큰 선물을 주었다. 하얀 눈이 설레게 한 감정은 계속해서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과 함께 진정되지 않았다. 첫 화면에 걸린 브런치북 <착한 텃밭 표류기>가 다음날 오전에 사라져서야 겨우 차분해졌다. 감생심 한 번쯤 내게도 순서가 오려나 싶었는데, 막상 순서가 되니 이어 달리기를 하고 겨우 도착점에 들어와 바통을 넘겨준 듯 몸이 녹초가 되었다.


눈이 내려서 일까? 여전히 나를 들뜨게 했다. 뭔가 현실적이지 않은 듯 자꾸 브런치를 들락날락거렸다. 펑펑 내리는 눈처럼 하나 둘 다정한 분들이 착한 텃밭을 찾아오셨다. 나는 텃밭과 글밭을 오가며 즐거웠다.

'감격'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것은 텃밭이었다. 그리고 소복이 눈 쌓인 텃밭처럼 차분하지만 황홀하게 나를 응원해주는 것은 글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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