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좋아하는 남편은 날마다 눈이 언제 오냐고 묻는다. "그러게 오늘도 소식 없네." 이 대답을 한 달도 넘게 했다. 흰 눈이 쌓인 겨울 풍경이 그리웠다. 우리를 꽁꽁 묶어 놓은 건 찬바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였으니 말이다. 계절이 주는 평온한 일들은 그리움을 넘어서 아쉬움이 되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달관한 듯 눈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작년엔 산타가 선물 주러 오려면 2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했지만, 올해는 별말들이 없다. 아이가 등굣길에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 사계절이 다 있는 날이네요. 비가 와서 여름 같고, 낙엽을 보니 가을인데, 봄처럼 초록 이파리들이 보이잖아요."
그럼 겨울은 뭐냐고 물었더니
" 손이 시리잖아요." 란다.
정말 아이 말처럼 요즘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코와 입만 막고 다닐 뿐인데, 아이들은 계절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걸 체념한 듯했다. 우울한 기분으로 아이들을 보내고 나니 산책로는 더 정막 했다.
평소보다 포근했지만 먼지가 많은 산책로엔 사람이거의 없었다. 진한 먼지와 안개가 섞인 공기로 꽉 채워진 산책로는 평소와 전혀 달라 보였다. 가까운 나무를 빼고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저 멀리 셜롬 홈즈와 왓슨이 사건을 해결하러 지나가도 될 만큼 뿌연 안개는 이국적이었다.
안개가 깔린 바닥은 축축했고, 물을 잔뜩 머금은 잔디는 건강하고 푸릇해 보였다. 길가엔 여전히 푸릇푸릇한 잎을 내민 야생초가 많았다.
새로 만든 공원에 얼마 전 잡목들과 꽃모종이 심어졌다. 한겨울에 꽃을 심다니 꽃봉오리를 볼 때마다 속이 상했지만, 눈앞에 일제히 나리꽃이 피어 있었다. 겨울이 알아챌까 봐 그랬을까? 짙은 안갯속에 숨겨두고 싶었다. 꽃이 핀걸 비밀로 해야 하는 듯 나는 침묵으로 안갯속을 걸었다.
싱싱하게 자란 치커리와 적겨자잎
산책로에 텃밭은 낙엽만 수북해졌지만, 둘러보고 싶었다. 텃밭 하나가 좀 달라 보였다. 알록달록 쌓인 낙엽 더미 위로 뭔가 솟은 것이 보였다. 신선한 잎채소들이 크고 있었다. 밭 안쪽엔 붉은 비트잎과보라색 적겨자잎이 가지런히 자라고, 청상추와치커리도 앙증맞게 올라왔다. 밭주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자연의 이치를 잘 감지하는 분일 듯했다.
아직 텃밭 일이 남은 밭주인이 부러웠다. 잎을 갈아먹는 벌레도 없고, 촉촉하고 신선해 보였다. 그 밭은 완전히 땅이 얼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가 보다.이 밭주인은 참 좋겠다. 끝까지 응원하고 싶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나 보다.
남편은 겨울 눈을 기다리지만, 난 꽃봉오리 인채 얼어 버릴까 봐 걱정이던 나리꽃이 보고 싶었고, 텃밭에 남은 것들을 더 보고 싶었다. 아직 내 바람은 효염이 있는 듯 하지만, 겨울은 냉혹하게 당연하게 모든 걸 끝낼 것이다. 나도 이젠 눈이 오게 해달라고 하는 남편의 편을 좀 들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