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벚꽃은 다 필 것 같다
매일 커가는 아이들
작년 이맘때 벚꽃은 지고 있었다. 웬일인지 4월이 되도록 집 앞의 벚꽃은 필 기미가 없었다. 제주 장전리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서울의 벚꽃나무는 감감무소식이고 다른 꽃들도 개화가 늦긴 마찬가지였다. 산수유가 아직 남아있고, 일찍 핀 매화꽃을 제외하고 홍매화도 그대로 피어있다. 목련꽃잎이 벌어지자 진달래와 개나리가 함께 만개했다. 꽃들이 늦어지는 만큼 내 일상도 느리고 더디게 흘러갔다.
기다리면 오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기다렸다. 새날이 되면, 새달이 되면, 새해가 되면 말이다. 봄이 오면 나아지려나, 제비꽃이 피기 시작해야 좋아지려나 싶었다.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아 그런가? 봄이 되어도 지난겨울과 달라진 것 없었고, 엄마 역할은 볼품없었다.
아이는 걸음마가 꽤 늦었다. 엉덩이가 무거워 보이지 않았고, 허벅지 근육도 단단한데 좀처럼 손을 공중에 놓지 않았다. 일부러 걷기 연습을 시킨다고 등 뒤에서 양쪽 겨드랑이를 잡고 걸음마를 시키면 잔뜩 엉덩이를 힘주며 앉으려고 만했다. 육아서에는 보통 아이들이 돌을 전후해서 15개월 정도면 걷는다고 했다. 아이는 16개월 꽉 채우더니 갑자기 걷기 시작했다. 18개월이 되었을 땐 다른 아이들처럼 능숙하게 어디로든 달려갔다.
걷는 것이 다른 아이들과 비슷해졌지만 아이는 느린 것이 또 있었다. 어린이집 같은 반 아이들 중에 말을 못 하는 건 내 아이뿐이었다. 그렇다고 못 알아듣거나 발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인 나와 아이와 소통은 문제없었다. 엄마가 되면 신기한 능력이 많이 생기는데 그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유아기엔 느린 듯했지만 학교에 들어가서부턴 가장 성격이 급한 아이가 되었다. 호기심이 드는 건 뭐든 해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말을 어찌나 빠른지 아이 아빠는 종종 아이에게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둘째 아이는 모든 것이 빨랐다. 태어났을 때 고개를 가눴고, 말은 6개월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을 정도였다. 7개월부터 걷기 시작했고, 8개월엔 달리기를 했다. 말을 능숙해지니 질문도 많이 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무조건 입에 넣고 손으로 집어 들었다. 늘 온몸에 상처와 멍을 달고 살았지만 넘어져도 울지 않는 신통한 아이였다. 입으로 귀속으로 콧구멍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넣으니 병원에 자주 갔고 나는 의사에게 늘 혼이 났다. 살핀다고 했지만 몸이 워낙 빠르니 늘 순식간에 일은 벌어졌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세상 게으른 아이가 되었다. 늘 늦잠을 자고 시작하는 걸 보려면 무척 오래 기다려야 한다. 실수를 싫어하고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한다. 일단 하는 일에 칭찬받을 만큼 자신 있어야 한다. 버틸 만큼 버티다가 마지막 주자를 자처한다.
저 아이는 왜 뭐든 급하게 할까? 이 아이는 매사에 세월아 네월아 느긋할까? 한 아이에게 좀 천천히 하라고 하면서, 다른 아이에겐 서두르라고 다그친다. 둘이 죽이 맞으면 빛의 속도로 사고가 나지만, 금방 각자 속도를 유지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스스로 하길 바라는 마음과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그러고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아이는 빨리 나오느라 미숙아였고, 느긋한 아이는 달을 다 채워도 나올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두 아이는 정반대의 유아기를 보냈다. 어쩌면 세상을 배우는 방식이 서로 다른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데도 엄마의 조바심이 끝이 나지 않는다. 곧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기 인생의 속도를 찾아갈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크는 일을 '걱정'이란 안경을 쓰고 끼어들고 싶었던 것 같다.
2022.04.04잠시 동안 벚꽃 개화가 왜 늦는지 이유를 찾으려고 했었다. 벚꽃이 피는데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필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그런 걸 말이다. 아이들이 그랬듯이 벚꽃은 준비가 덜 된 것일 뿐인데 달력만 보고 왜 안 피나 싶었다. 그런데 창밖을 내다보니 벚나무 가지 끝에 꽃이 벌써 피었다. 어제만 해도 꼭꼭 다물고 있던데 어느새 연한 분홍색 꽃잎이 보인다. 딴생각을 하느라 꽃이 핀 것 못 봤으니 나도 벚꽃나무에게 할 말이 없었다.
서울도 이제 벚꽃이 개화했다. 지금은 벚꽃의 계절이다. 닮은 듯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때가 되면 피어날 것을 엄마랍시고 큰소리를 냈나 싶어 혼자 부끄러워진다. 벚꽃은 눈부시게 피고 있고, 아이들의 곧 하교시간이다.
벚꽃이 피었으니 안온한 기분을 모두 불러보아 볼 참이다. 더는 찬바람이 불지 않을 테니, 엄마인 나도 온화해지길 바란다. 밤사이 벚꽃은 다 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