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을 잘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관계에선 내가 다정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별거 아닌 일에 섭섭해지기도 했다. 더 보태면 작은 것을 두고두고 잊어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날카로운 조각이 발에 찔린 듯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글을 쓸 땐 작은 기억이 영감이 되기도 했지만, 모두가 글이 되지는 않는다. 망설일수록 글쓰기가 자꾸만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커피 취향을 기억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무얼 마실지 물어봐주는 일도 좋지만 먼저 "넌 카푸치노?"라고 물으면 "응"하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던 직장동료들이 있었지만 그들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와 커피를 마셨던 지인들의 커피 취향을 나만 기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커피맛을 알기도 전에 커피 심부름을 했다. 열 살이 좀 넘은 나이였던 것 같다. 아빠가 손님들과 집에 오셨는데 때마침 나 혼자 있었다. 주전자에 아빠가 물을 올리시고는 찻잔을 꺼내셨다. 집안에 있는 찻잔세트가 다 나온 걸 보니 꽤 많은 손님이 오신듯했다. 그다음은 내 몫이었는데, 빨간 뚜껑이 달린 유리병 안에 커피를 티스푼으로 떠서 찻잔에 넣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아빠는 팔팔 끓인 물을 넣고 스푼으로 잘 섞었다. 그리고 흰 설탕과 프리마 가루를 똑같이 넣으셨다. 고소한 향기가 진동하는 쟁반을 아빠는 들고 거실로 나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국식 홍차를 대접하는 것처럼 아빠의 커피 준비는 그럴싸했다.
아빠는 늘 손님을 데리고 오셨고, 그때마다 내가 커피 심부름을 했다. 오신 분께 커피를 어떻게 드시는지 묻는 일은 내일이었다. 그리고 자주 오시는 손님은 "내가 마시던 대로 알지?" 하고 하면 "네"라고 대답하곤 했다. 종종 용돈을 주시는 분도 계셨는데 받기가 민망해 방으로 숨어 버렸다. 아빠는 커피를 안 드시는 줄 알았는데, 분재 화분을 보려 오는 손님들과는 늘 맛있게 드셨다.
집안에 커피 향이 진동하고 나무 이름과 꽃 이름이 오가는 대화는 어둑한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지금도 어스름한 저녁이면 그 달그락 거리던 찻잔 소리가 그리워졌다.
나는 친구를 만나는 대신 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놓고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커피가 친구가 되었다. 오랜만에 찾은 친구가 달라졌다. 수수하고 성격 좋은 동네 편의점 커피가 오백 원이 올랐다. 약속이나 한 듯 마트만 가도 가격이 오른 공산품이 눈에 띈다. 물가가 오를 때 커피도 덩달아 오르니 할 말을 없지만, 커피 한 모금에 투덜 댔다. 그래도 고맙게도 편의점 커피는 말이 없이 다 들어준다. 비싸졌다고 그 친구를 안 찾을 순 없을 듯싶다. 가장 가깝고 편한 수다 상대니까 말이다.
지난 주말 아침 산책길을 함께 하는 편의점 커피는 따뜻하고 다정했다. 커피 향을 맡는 순간 내 말이라면 다 들어줄 것처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나를 감싸주었다. 커피 한잔은 나긋하게 대답해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독이 멀어지니 글쓰기도 멀어지는 듯싶다. 잘 아는 친구를 찾아가듯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얼음이 가득한 커피 한 모금에 온몸이 얼어버렸다. 여름을 즐겨보겠다고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는데 몇 모금을 마시고 나니 난감해졌다. 절반을 먹을 때까지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얼음이 섞인 커피는 정신이 번쩍 나게 했지만, 아무래도 엄살을 떨 수 없었다. 너무 오래 나를 방치했나 보다. 벌써 달력은 절반이다.
커피는 "다 집어치우고 그냥 해봐!"라며 차가운 냉수보다 더 강렬했다. 얼음 조각을 입에 넣으니 더 확실해졌다. 내겐 그런 말을 해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커피는 가장 냉정한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