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노트

하짓날 긴 낮에 장아찌를 담근다

절기 하지

by 무쌍

투닥거리며 남편과 논쟁이 벌어졌다. 작정한 건 아니지만 뭔가 뜨겁고 매운 름이 코앞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걸까. 뿌옇게 시야를 가린 습한 공기와 더운 태양이 성가시게 약을 올렸다.

' 왜 우리는 이렇게 안 맞는데도 맞추고 살고 있는 걸까?' 혼잣말을 하며 남편의 침묵에 나도 입을 다물었다. 산책을 나선 우리는 한 시간 남짓 집으로 돌아올 때가 되니 진정되었다.


미디어엔 다양한 사람들이 고민이 나온다. 예전엔 패션 어드바이스나 다이어트 같은 외모 변신이 유행 같더니, 요즘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의 방법을 찾아 주는 것이 대세인가 보다. 그들의 하소연을 보면 나와 다른 모습이지만 내 이야기 같기도 했다. 모두가 감정을 다루는 일에 능숙한 건 아니었다. 감정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한없이 실패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그 감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 것이었다. 아주 가까운 사이라도 감정은 각자의 것이다. 남편과 한바탕 감정이 끓어오르고 나면, 고비를 넘긴 기분이 든다. 큰 태풍이 지나간 듯, 높은 산의 최고봉을 넘은 듯 긴장이 풀린다.

그래서 감정적인 회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금씩 쌓였던 것들이 큰 산이 되고, 큰 폭풍우가 되면 어찌 되었든 간에 지나가야 한다. 그냥 사라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딴 사람이 될 정도로 흥분하더라도 나는 이 고비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이들 문제로 시작하면 끝은 우리 부부의 문제가 드러난다. 각자 속마음을 알게 되면 잔잔해진 날씨처럼 한동안 말이 없어진다.


'그랬구나.'

'내가 그랬구나'

'당신은 그랬구나.'


감정적인 문제들을 무겁게 끌고 다녔던 나는 이런 감정싸움이 참 하기 싫었다. 잘 참는 성격이 결국은 속병이 난다고 하는데, 무조건 다 들어준다고 평화가 오는 건 아니었다. 감정은 서서히 쌓이고 꽉 차고 나면 비워야 했다. 묵은 때를 닦아내고 쌓인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한 것처럼 감정을 정리해야만 한다.


즐거운 감정은 향기처럼 떠다니지만 금방 사라졌다. 대신 슬픔, 불만, 걱정, 화, 억울함 따위의 반대 감정들이 문제였다. 하나 둘 아닌 것 같아도 쌓이면 큰 문제가 된다. 습기제거제가 물을 머금듯 비울 때가 반드시 왔다. 다 차면 더는 참을 수 없어진다. 감정을 버리는 건 소란스럽지만, 딱 쌓인 것만큼 버릴 수 있다. 습기제거제를 주기적으로 바꿔주듯 우리 부부는 감정 버리기를 매번 하는 듯싶다.


묶은 감정을 버리고 나면 나는 활기를 되찾고, 남편에게 전보다 자기주장을 더 잘하게 된다.^^;뭔가를 비운 마음은 새로운 걸 하고 싶게 했다.


어제 소란은 여름 준비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를 하루 앞두고 선풍기를 꺼내고 닦고 땀을 흘렸더니 대단한 일을 한 듯 뿌듯했다. 무더위가 오기 전에 남편과 감정 버리기를 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이젠 여름을 잘 지낼 일만 남았다.

자귀나무꽃과 루드베키아(2022.6.21)

절기상 하지라니 태양이 두배는 강렬해진 듯하다. 태양은 오늘 가장 오래 우리를 빛나게 할 것이다. 짧은 밤을 기다리며 길고 긴 낮을 보내야 한다. 미루고 있던 마늘종 장아찌를 담그려고 마늘종을 샀다. 마늘종이 원래 마늘의 꽃줄기라서 그런가 마늘종 한 묶음을 꽃다발처럼 가슴에 안았다. 줄기가 가늘고 연해 보이는 대파도 한단 샀다. 난번 대파는 질겨서 흰 줄기는 육수 내는 데만 썼는데 여름은 대파 맛도 다르게 만드니 계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대파와 마늘종을 꽃다발처럼 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 자귀나무 꽃은 만발했고, 루드베키아는 눈부셨다. 름 꽃들은 평소보다 더 긴 낮을 실컷 누릴 모양이다.


할 일없이 비어 있던 유리병을 꺼내 소독을 했다. 간장 끊이는 냄새가 푹푹 소리 내며 뜨거웠고, 마늘종을 씻어내는 물소리는 유난히 시원했다. 마늘종은 시들했지만 씻고 나니 더 푸릇해 보였다. 마늘종을 자르며 질긴 듯 한 부분을 한입 먹어 봤더니 생마늘만큼 아삭하고 알싸했다. 일정하게 자르고 싶지만 늘 길이가 들쑥날쑥이다. 그래도 잘 익으면 맛은 똑같을 테니 걱정은 안 했다.

여름은 시작되었고, 하짓날 짧은 밤은 금세 지나갈 테니, 긴 낮을 실컷 써야겠다. 장아찌를 담그기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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