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선생님이 모두 걸렸다
바이러스 소동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도 덩달아 바쁜 모양이다. 매일 오전 안전문자로 오는 확진자수는 줄어들 생각이 없더니, 며칠 전 두 아이의 주변에 바이러스가 찾아왔다.
학교 내에 접촉자 관리는 예전보다 간결해졌다. 교내에 확진자가 한 명만 나와도 전수조사를 하던 2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별 검사소에 가지 않아도, 밀접 접촉자 안내가 오면 긴 면봉을 코안에 문지르고 검사를 하는 자가진단 키트가 있다. 지난달엔 약국에서 구매했던 기트를 학교에서 챙겨 보내주니 좋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겐 쓸 일이 없었으면 했다. 기다리지도 않았고 원하지 않는 소동은 개학하자마자 벌어졌다.
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는 틈에서 엄마들의 수다가 들렸다
"담임이 걸렸데."
"몇 학년? 몇 반?
수군거리는 틈에서 귀가 쫑긋해졌다. 공공연한 비밀이 저런 건가 싶기도 했다. 확진자 안내가 사라지자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어느 학년이지 공식적으로 알 길이 없다. 대신 여기저기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사실 엄마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반은 내 아이들의 반이었다. 안타깝지만 개학하자마자 큰아이의 선생님이 먼저 확진되었다. 큰 아이는 밀접 접촉자가 되었고, 학교에서 들고 온 자가진단키트는 바로 써야 했다. 막상 검사를 하려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온 가족이 걱정을 했지만 음성 결과가 나올 때까지 큰 아이는 엄마인 나보다 침착했다.
큰 아이는 마스크를 꺼내 쓰더니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쓰고 있겠다고 했다. 걱정이 된 둘째도 마스크를 써야 하냐며 물었다. 다행히 진단검사는 음성이었고, 선명한 한 줄이 나오자 안심을 했지만 또 다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흘 만에 둘째 아이의 긴급 하교 문자가 왔다. 확진자는 선생님이었다. 둘째 아이가 선생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라며 걱정 어린 문자가 왔다. 별일 없이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고, 선생님들도 무사히 복귀했다.
이곳저곳 확진자 소식은 더 많아졌지만, 아이들은 좀 무뎌진 듯하다. 두 아이의 선생님이 확진되고 나서 평소 겁이 많던 아이들은 이번 일로 달관한 듯했다. 확진자가 마치 위험인물로 여겨졌던 예전과는 달라져서 일까? 경험이 많아져서 일까? 나도 달관하긴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안보이던 이유가 바이러스 때문이란 지인의 고백에 '아프지 않았냐'라고 편하게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바이러스에 예민하던 감각들이 무뎌지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 검사 소동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지만 모두가 함께 견디고 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둘째와 놀이터에 나와 있었다.
한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를 멀리서 불렀다.
"언니! 언니네 엄마 코로나 다 나았어?"
"응, 나 이제 놀아도 된데."
큰 소리로 인사하더니 두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놀았다. 놀이터엔 듣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다른 내색 없었다.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난 일을 하고 아이들은 방과 후 활동을 더 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요즘은 글쓰기보다 아이들과 수다 떠는 일에 열중했다. 아이들과 시간은 많아졌지만 양만큼 아이들은 만족하지는 못했다. 이런 시국에도 아이들이 별 탈 없음에 감사하면서도 나 역시 답답함에 못 견딘 날도 많았다.
장을 볼 때마다 고기나 생선 포장에서 물이 샐까 신문지를 싸고 온다. 내겐 신문지가 읽기용이 아닌 지 오래지만 마침 보이는 면에 시와 수필이 실려 있었다. 책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신문지면이 사뭇 정겹게 느껴졌다. 시인의 얼굴이 함께 실려 있는 짧은 시 문장에 머리가 맑아졌다. 그리고 바로 옆에 실린 글은 바이러스 확진으로 입원했던 누군가의 짧은 수기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지난겨울 동료와 함께 확진이 되었다고 한다. 입원할 때 입은 옷은 모두 소각을 해버리니 버릴만한 허름한 옷으로 병원에 갔는데, 입원 수속을 하는 내내 착잡했다고 한다. 게다가 전날 아내가 바이러스로 죽은 환자들이 많아졌다고 걱정을 했는데 확진된 것이다. 입원하고 아내에게 전화했는데, 아내는 '여보, 여보' 하고 부르더니 더는 말 못 하고 통곡을 하는 바람에 전화를 붙들고 같이 울었다고 한다. 같은 날 입원한 동료도 같은 병실을 썼는데, 동료는 자신이 더 비참하다며 울었다고 한다.
아내에게 잘 입원했노라 전화를 했는데, 평소와 너무도 똑같은 목소리로 별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고 말이다. 통곡한 아내를 둔 글쓴이의 입담이 느껴지는 짧은 글 한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두 분은 무탈하게 집으로 돌아가셨지만, 두 부부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글은 읽은 사람에게도 쓰는 사람에게도 분명 영향을 준다. 문득 글이 주는 고마움을 다시 생각해봤다.
마치 긴 여름휴가로 집을 비웠다 돌아온 기분이다. 먼지 쌓인 구석을 닦고, 베란다에 화초들에게 비료도 넣어주고 물을 듬뿍 주었다. 텅 빈 냉장고에 김치와 밑반찬을 하나씩 만들어 넣고 있다. 봄을 기다린 건 꽃이 그리워서였지만, 그보다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워질 세상을 기대했었나 보다. 아이들이 견디는데 어른인 내가 지쳐버리면 안 될 것 같다.
안 그래도 다들 답답한데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훗날 '그런 일이 있었지' 떠올리며 기억될 따뜻한 이야기들은 남기고 싶어졌다. 뿌옇게 먼지가 쌓이기 전에 노트를 꺼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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