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착한 텃밭

대파 꽃이 씨앗을 주기로 했다

대파 키우기

by 무쌍

낮 기온이 포근해지는 4월은 베란다 화분에 씨앗들을 심기 적당해진다. 비닐을 덮거나 실내에서 발아시킬 수도 있지만, 파종시기에 맞춰하는 것이 채소나 꽃이나 제대로 성장할 확률이 더 높은 듯했다. 씨앗을 심고 키우는 일은 발아 온도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성장시키는 기간도 고려해야 한다. 너무 늦어지면 여름 더위 때문에 벌레가 번지거나, 뜨거운 태양에 잎이 노랗게 질려 버렸다.

씨앗을 심기 전에 흙을 다 바꿔주고 싶었지만, 새로 사 온 흙과 비료들을 적당히 섞어 절반 정도 채우는 것으로 만족했다. 밭처럼 흙을 기름지게 만들어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식물들이 자라나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어찌 된 일인지 파종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절반이 빈 화분이다. 애플민트와 바질 씨앗은 하나도 발아하지 않았다. 봉선화는 절반이 싹이 올라왔고, 백일홍도 비슷하게 자랐다. 분꽃 씨앗은 모두 다 싹이 났지만, 채송화는 어디로 간 건지 감감무소식이다. 해바라기 씨앗도 답이 없다. 년엔 모두 잘 키웠는데, 올해는 쉽지 않을 모양이다.

다행히도 토마토 싹은 자리를 잡아서 키가 자라고 있는데, 그 틈에 심지도 않은 싹이 올라왔다. 호박인지 수세미인지 아직 정확하지는 않지만 둘 다 다른 화분에 옮겨줘야 할 듯싶다.

토마토 싹 사이에 올라온 정체는 무엇?

어떻게 번졌는지 화분마다 일제히 제비꽃 싹이 올라왔다. 몇 년 전에 재미 삼아 씨앗을 받아다가 심었는데 꽃은커녕 봄마다 잎만 자라다 시들해졌다. 런데 떻게 번졌는지 화분마다 잊을 만하면 솟아난다. 기다리는 싹은 올라오지도 않고, 잡초 격인 제비꽃만 여기저기 우후죽순 올라왔다. 조그마한 씨앗이 어디 숨어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곤충이 없는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는 걸 제비꽃도 아는지 씨앗만 만들고 꽃은 피지 않는다. 혹시나 제비꽃이 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심은 씨앗을 챙기는 일이 맨 먼저다. 아무래도 보이는 대로 뽑아내야 할 듯싶다.


란다 텃밭이 뒤죽박죽인 것처럼 내 머릿속도 요 근래 어수선했다. 금방 싹이 날 것 같은 기대도 화분마다 심었는데 소식 없는 화분을 보니 시큰둥해졌다. 무엇이 나를 조바심 들게 했을까? 막 시작한 식물들에게 서둘러 결과를 보여달라고 보챘나 싶다. 벚꽃도 열흘 넘게 늦게 찾아왔는데, 모든 것이 작년보다 늦어지는 식물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대파꽃(2022.04.18)

식이 더딘 화분들 틈에 솟은 꽃이 보였다. 이번에도 나를 달래 주는 건 꽃이다.

즘 내겐 종일 반복되는 집안일이 다였는데, 대파 꽃 한 송이가 찾아왔다. 얼마 전 줄기 끝에 흰 공처럼 달려 있었는데, 어느새 키가 자라 고개를 쭉 내민 채 통통한 꽃다발을 만들어 놓고 나를 기다렸나 보다. 꽃송이를 덮었던 얇은 껍질은 장식처럼 목에 달고 단장한 얼굴로 나를 겨 주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대파 꽃이 핀 이유를 거창하게 담아보고 싶어졌다.


송이 핀 장미꽃을 보듯 대파 꽃을 바라본다. 사실 채소 꽃은 쉽게 볼 수 없다. 채소들은 대부분 식용으로 재배되니 열매나 잎을 위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꽃을 단 대파 한 단을 파는 일은 없다. 마트만 가봐도 잘 손질된 채소 꾸러미들이 늘 진열장에 놓여있다. 텃밭을 하기 전엔 관심이 없었지만, 채소들도 씨앗 종자에서 자라난다는 걸 알게 되니 꽃 한 송이도 소중해진다.

대파 꽃은 라일락처럼 향기는 없었다. 천일홍처럼 동그란 꽃 모양이 귀여운 듯했지만 손을 대면 바스락 거리며 부서질 것 같았다. 당분간 난 섬세하고 예민해 보이는 대파 꽃 하고 잘 지내봐야겠다. 잘 영글면 씨앗을 받을 수 있으려나? 또 기다려야 하겠지만, 언젠가는 꽃이 있던 자리에 검은 씨앗이 생길 것이다.

고맙게도 대파 꽃이 내게 씨앗을 주기로 했다.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했던 내게 뜻밖에 선물이 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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