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착한 텃밭

부러운 마음에서 배우다

텃밭 훔쳐보기

by 무쌍

립이 만발한 중랑천을 걸었다. 유난히 나이 지긋한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얼핏 들려오는 대화는 점심 메뉴를 정는 듯했다. 그리고 가의 새들과 지천에 자라는 야생초들이 이야깃거리였다. 또 다른 부부는 어제와 달라진 날씨를 말하며 지나갔다. 할머니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아픈 다리가 어떤지 묻는 아버지 소리도 들렸다. 부부는 닮아 가는 것인지, 닮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되는 건지 속설은 분분하지만, 부부는 닮은꼴인 건 분명해 보였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은 확인할 수 없지만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은 포개 접으면 똑같아질 듯 같았기 때문이다. 가볍고 느린듯한 걸음은 서로에게 맞춰서 있는 듯 나란히 한 방향으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부부가 풍기는 향기는 금방 훅 맡아지지 않지만, 지나간 길에서 편안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분들이 몹시 부러웠다.

부모님과 비슷한 나이의 부부를 볼 때마다 겹쳐지듯 예전이 떠올랐다. 젊은 날의 부모님은 어쩌다 하루쯤 행복한 날이 있었고, 대부분은 신경이 예민하고 막 다툼이 일어날 듯 아슬아슬했다. 안타깝지만 내가 결혼했을 때 부부관계에 지켜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 답안이 없었다. 인들이 보여주는 다정한 부부는 어떤 모습인지 알듯도 했지만, 겪어봐야 했다. 로 맞추는 법은 시간이 주는 선물처럼 하나씩 얻어지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입이 무거우신 분이다. 평소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하시다. 부부 사이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모두 시아버지에게 배웠다. 긴 이야기가 아닌데도 몇 마디 해주신 말이 내내 묵직하게 느껴졌다. 시아버지가 다녀가시면 은은한 꽃이 남긴 잔향처럼 잔잔하게 있다가, 불쑥 올라오는 성미를 다독이며 나를 붙잡아 주었다.

어느 날부터 내가 어떤 집안에서 자랐는지, 어떤 식으로 가족을 대했는지 오래된 습관들이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부러운 것들에 솔직해졌기 때문인 듯싶다.

"참 부럽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부러우면 지는 거란 말도 있다지만, 나는 부러운 마음이 들고 나서야 배울 수 있었다.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언젠가 나도 그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른 아침 남편과 나는 산책을 나선다. 우린 산책로에 있는 텃밭을 늘 지나간다. 비었던 밭에 모종이 심어놓은 것이 한눈에 보였다.


누군가의 텃밭 앞에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총총총 모종을 줄 맞춰 심은 밭을 보며 남편이 먼저 말했다.

" 줄 맞춰서 모종 잘 심었다. 우리 밭은 엉망이었잖아."

"우리 모종 심을 때 기억나지? 아이들 데리고 갔잖아." 예전 생각 서로 웃음이 나왔다.

텃밭 모종을 심는 날엔 아이들을 일부러 데리고 갔었다. 직접 심은 모종과 씨앗이 자라는 걸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소리만 지르다가 돌아왔다. 마음이 급한 아이들을 달래 가며 모종을 심는 일은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막 모종을 심기 시작했는데 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내렸다. 리는 비를 맞으며 정신없이 심고 돌아왔는데, 그 뒤론 아예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후론 우리 부부만 모종을 심으러 갔는데 늘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심었다.


아이들과 텃밭을 오가는 가족들이 부러워서 시작한 텃밭이었지만 흙장난과 물장난에 빠진 아이들과 씨름을 해야 했다. 작은 벌레만 봐도 소동 부리는 아이들은 밭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래도 아이들은 밭에서 난 채소를 먹으면서 신기해했다.


가족들과 모든 일을 함께 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다. 아이와 해보고 싶은 것들, 남편과 해보고 싶은 것들을 보면 알게 된다. 지나고 보면 실수투성이고 창피했던 일도 모두 웃음으로 떠올리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작고 소소한 기억들이 하나씩 쌓여간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부러운 것들을 하나씩 하고 있었나 보다.

'부러움'은 해보지 않은 것을 등 떠밀며 도와주는 것이었다.

남의 밭에서 구경만으로도 우린 할 말이 많았다. 해가 떠오르자 텃밭에 그림자가 드리워 몰래 훔쳐보는 우리 모습 그대로 보였다. 림자를 보니 우리 부부도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였다.


얼핏 봐도 밭은 작년보다 잎채소가 훨씬 많이 심어졌다. 밭주인이 바뀌었나? 밭의 대부분이 잎채소들이었다. 작년엔 고추나 들깻잎 모종이 많았고, 방울토마토와 오이나 호박 같은 넝쿨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지런한 손을 한 밭주인들이 텃밭 분위기도 다르게 바꿔놓았다. 한동안 잎채소가 부풀었다 줄어들다 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을 듯싶다. 잘 자란 잎채소를 아삭 거리며 씹는 건 상상만으로 군침이 돌았다.


부러운 마음은 텃밭을 뒤로하고 튤립을 보러 가야 했다. 튤립은 해를 좋아해서 밤엔 꽃잎을 다물었다가 아침햇살에 꽃잎을 펼치기 때문이다. 립 구경을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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