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멈추고 청단풍 숲은 완전히 안개로 덮었다. 뜨거운 공기를 온몸으로 감싼 채 소나기가 내린 거리를 걸어야 했다. 여름 내내 나는 혼자가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외로움과 고독에 빠질 시간이 그리웠다.
여름은 절반이 지났고 그럭저럭 아이들의 방학도 함께 흘러가지만 예전처럼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뿌였고 희미한 풍경 속에서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리고 있었다. 분명한 결실을 글 하나에 담고 싶었는데, 점점 멀어진 기분이 들었고 숲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활짝 핀 백일홍 화단에 해바라기도 반가웠지만 꽃송이 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작은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텃밭상자에 오이 넝쿨엔 열매가 달렸고, 조금 부풀었다가 이내 노랗게 사라졌다. 곧 자랄 듯 커가는 모습에 설렜다가 또 실망을 했다. 몇 번째 반복하는 실패를 보며 부족한 것이 실력인지, 조건인지, 노력인지 알 수 없었다. 서툰 실력으로 무모한 시작을 한 것일까?
퇴비를 넣어 양분이 많은흙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지만, 액 비료를 넣어주고 기적처럼 작은 열매를 손에 넣고 싶었다. 그런데 오이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속이 상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오이열매 암꽃은 사진으로 남았다
텃밭이 주던 결실처럼 보상을 바랐는데, 매일 무언가를 해내고 있지만 공허함을 떨치지 못했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텃밭이 궁금해졌다. 여름 텃밭은 야생초가 마구 솟아난 듯 엉망인 줄만 알았다. 장맛비가 괴롭히고, 뜨거운 공기가 상추를 다 녹여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수수 암꽃이 아래가 불룩하게 여물고 있었고, 고추꽃은 쏟아질 듯 피었다. 키가 자란 상추 모종은 꽃대는 보이지 않고, 아이 손만 한 잎이 크고 있었다. 방울토마토는 초록열매가 알알이 포도처럼 송이가 달렸다. 애호박은 꽃 머리를 올린 채 단단한 살을 채우고, 가지는 이미 여러 번 열매를 만들었던 흔적이 있는 채로 또 가지 색 꽃이 피었다. 다 끝나버린 줄 알았지만, 텃밭을 지키는 봉선화꽃은 첫 꽃처럼 반짝반짝거렸다.
텃밭엔 호박들이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다들 주어진대로 여전히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만 멈춘 듯 더디게 살아가나 싶었는데, 텃밭을 둘러보고 나니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마스크도 내리지 않았는데, 깨끗한 공기를 마신 듯 몸이 충전된 듯 가뿐했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황금빛 늙은 호박 넝쿨이 눈에 들어왔다. 밭의 절반은 비었지만 고추는 주렁주렁 달렸고, 호박 줄기는 단단한 나무처럼 굵고 힘이 넘쳐 보였다. 호박은 주인이 둘러놓은 나무 조각이 작은 집처럼 아늑하고 벽돌을 받쳐주어 호박 아래는 물이 고일 틈이 없었다.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핏 봐도 호박은 잘 익은 수박만큼 크기가 자랐다. 늦가을이 되면 주름이 잡히고 더 커져서 주인의 얼굴에도 미소와 함께 주름살이 잡힐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호박이 보여줄 결실은 정말 긍정적이었다. 여름 텃밭엔 호박들이 힘찬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가을 풍성함을 그대로 담은 호박이 영그는 과정은 여름 없이 불가능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사실 집안에서 키우는 채소들은 놀라운 효능이 있다. 초록 식물들은 가족처럼 늘 곁에 있지만, 채소 키우기는 소망을 심고 키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대만큼 결실이 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열매도 준다. 텃밭상자를 잠시라도 비워둘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동네 텃밭에서 커가는 호박을 보고 나니, 오이에게 걸었던 기대도 좀 내려놓을 듯싶었다. 자꾸만 시들어 버리는 오이를 보며, 별일 아니다 싶었지만 사실은 의미를 두고 있었다. 실망감은 그간에 노력들도 헛수고였다고 느껴졌다.
둥근 호박들을 하나씩 찾아 사진을 찍으면서, 호박이 지키는 여름 텃밭을 한참 서성였다. 몇 년 만에 맘 놓고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어린 시절 고향에 머물던 시간보다 많아진 탓일까? 지금 이곳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는 진정한 휴식처럼 느껴지게 한다. 여름이면 달려가던 고향과는 너무도 멀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호박 구경은 조천 할머니 집 마당에서 빈둥거리던 나를 기억나게 했다. 아이 손바닥만 한 자리돔을 구이와 보리밥에 된장을 발라 호박잎 쌈을 먹던 여름을 말이다. 행복한 감정은 순식간에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호박 주인들은 아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호박들이 커가며 최고의 열매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이 얼마나 더딘지 말이다. 호박은 끝까지 자신을 기다려준 보답으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을 선사할 것이다. 고마운 이웃에게 선물처럼 안길 호박도 상상했다.
오이를 직접 키워 먹어보고 싶었지만, 행복은 꼭 체험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기분은 텃밭 호박을 보고 나니 다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할머니 집 호박넝쿨이 사진처럼 떠올라, 내면 어딘가에선 나를 할머니 품에 폭 안긴 채 사랑받던 시절을 만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