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때문인가, 한동안 꽃을 보러 나가지 않고 꽁꽁 갇혀 지내는 일이 편했다. 중랑천이 폭우로 시름하는 동안 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매일 가던 산책로는 나가지 못하지만, 빼놓지 않고 반드시 가야 할 곳은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그곳에 간다. 같은 층엔 병원이 워낙 많아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복도는 늘 붐빈다. 복도에 자리가 생겨 앉았지만, 갈 때마다 오래 있고 싶지 않은 곳이다. 핸드폰을 들고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말이 더 크게 들렸다.
"넌 아직도 우울하니?"
"..."
"야! 다들 우울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
"..."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해? 꼭 먹어야겠어?"
아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는 다시 물었다.
"뭐가 그렇게 우울한데?"
"나도 몰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처방전을 들고 있는 엄마는 아들이 못마땅한지 자꾸만 한숨을 쉬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듣고 있어야 하니 불편했다. 엄마는 사람들 틈에서 거리낌 없이 말했고, 아들은 그런 상황이 익숙한 듯 다른 곳을 보며 말이 없었다.
그날 들었던 대화가 자꾸만 귓속에서 다시 반복된다. 지난 일인데도 몇 마디가 남아서 나를 툭툭 치는 기분이었다.
둘째를 수유하던 나는 산후 우울증상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첫 번째 산후조리와는 달랐다. 정말 알 수 없는 우울감은 아무것도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변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다들 산후에 오는 우울증이라며, 그녀들은 별 탈 없이 잘 산후조리가 된 듯 부럽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유치원을 마친 아이들이 노는 동안 매일 보다시피 하는 아이의 친구 엄마에게 말을 꺼냈다.
"언니 아무래도 산후우울증이 심한가 봐."
"우울증?"
"아무것도 하기 싫고 딱 그만두고 싶네."
"이그, 몸이 편해서 그래. 둘째가 잘 먹고 잘 자니까 엄마가 편하구먼. 몸이 힘들면 그런 생각도 안 들걸."
말을 꺼내고 나서 금방 후회했다.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건지 내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대화는 내 몸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다. 그런데 아들과 엄마가 나눈 대화를 듣고 나니 예전에 느꼈던 기분이 느껴졌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듣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 그리고 가족 그 상대가 나를 낳은 엄마라도 어쩔 수 없구나. 그래서 전문상담가를 만나고, 병원을 가고, 책을 읽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걸 말이다. 자신의 치료과정을 글로 쓴 작가들의 책을 읽다 보면 나도 감정을 털어놓은 듯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그들처럼 나아지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자꾸만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겐 살갗에 닿는 것처럼 불편할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감정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불편한 감정을 전염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더 섬세하게 단어를 고르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망설이고 고민이 된다는 건 내가 변했기 때문인 듯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잘 살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인생의 책 결말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 결말을 기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은 내가 죽어도 남을 테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오래오래 남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쓰는 건지도 모르겠다. 잘 쓰고 싶은 욕망은 다시 자연으로 산책을 나서게 했다.
나무 아래 바람은 살랑거리며 젖은 몸을 말려주긴 했지만, 산책로엔 백일홍 꽃들도 고개 힘이 빠졌고, 고개를 푹 숙인 해바라기가 잠을 자는 듯 꼼짝하지 않았다. 꽃들이 시들한 건 계절이 곧 바뀔 것이기 때문인데 자꾸만 실망스러웠다.
꽃이 만발하길 기대하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비 갠 하늘의 아름다운 무지개 쇼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행운의 징조처럼 내 눈앞에 무지개라도 떠오르면 좋을 텐데....
겹겹이 빛나는 무지개색을 하나씩 세어보듯 내게 오는 행운들도 겹겹이 즐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무지개 찾기는 그만두고 야생에 핀 꽃들을 찾아야 했다. 분명 무지개는 존재하지만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으니 말이다.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단념하니, 오히려 내리쬐는 햇볕에 완전히 물들고 싶었다. 들판에 핀 꽃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걸음도 빨라졌다.
시간을 딱 맞춰 찾아온 낭아초와 싸리꽃을 보니 악수하듯 손부터 내밀었다. 작고 아기자기한 꽃잎은 이리저리 다른 방향으로 보아도 좋았다. 바람이 멈추지 않아 사진이 모두 흔들렸지만 바람이 가라는 대로 눈을 따라가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나뭇가지에 층층이 달린 꽃송이를 세다 보니 손목에 모기들이 몰려왔다. 여름 숲엔 관람료처럼 모기에 물린다. 몸을 아무리 칭칭 감아도 숲은 반드시 대가를 받아간다. 그래도 꽃 사진 몇 장을 찍었으니 다행이었다.
여름이 막바지인 들판엔 나팔꽃들이 카펫처럼 뒤덮었고, 어느새 산국화 줄기가 진해졌다. 모든 꽃은 자신의 시간에 맞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럼 나의 이야기는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쓰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쓰지 않은 이야기도 없는 듯싶다. 더는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갈팡질팡 하는 마음도 즐겨야 할 듯하다. 내게 벌어지는 일들도 날씨와도 같아서 매일매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먹구름이 걷혔다고 해서 푸른 하늘과 맑은 태양이 바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퍼붓는 비에도 야생의 자연은 내색도 없이 담담하다.
낭아초 꽃을 찍다 보니 그 틈에 새하얀 꽃범의 꼬리 꽃이 잘 숨어 있었다고 고개를 내밀었다. 수변공원 화단에 핀 꽃들은 모두 곤죽이 되었는데, 야생화들은 험한 날을 다 보내고도 멀쩡히 꽃이 피었다.
나만이 기준이 되었던 것도 분명하게 선을 그어 버리고 싶었던 것도 멈추어야 했다. 화단에 심어진 선명하고 알록달록한 꽃송이처럼 나도 사람들 틈에서 눈에 띄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녹색 풀숲에서 어렴풋이 새로운 것이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꽃은 분명 찾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야생화처럼 보일 듯 말 듯 작고 은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내게 있었나 보다. 야생화처럼 살고 싶어졌다. 그동안 내가 찾던 것은 꽃이 아니었다.
타인과 함께지만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삶이 그곳에 있었다.
꽃범의 꼬리꽃과 벌노랑이꽃 (중랑천 202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