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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Feb 08. 2023

마흔이지만 혼자 노는 게 좋다

엘리너 파전 <작은 책방>과 나의 은신처

  그녀의 이름을 한번 듣고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엘리너 파전' 어딘가 익숙한 그의 성 때문이지만, 몇 년 전 그녀의 책과 이름이 실린 뉴스기사 기억게 했다.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면서, 한 국회의원이 엘러너 파전의 <줄넘기 요정>을 읽으며 자신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갑자기 '거기서 왜 나와?"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왠지 정치인들은 책을 읽을 것 같지 않아서일까. 정치적인 장소엔 문학은 어울리지 않거란 나의 편견일 수도 있었다.

 참 인간적이지 않은 곳, 동화 같은 이야기는 더군다나 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여겼다. 그러고 보니  간적이고, 동화 같은 반전이 벌어지는 장소가 된다면 좋을 텐데 참 아쉬운 곳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동화책이 필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벗어났지만 영국인 엘리너 파전은 멀리 한국의 정치인이 자신의 동화를 읽는 장면은 상상이라도 했을까? 작가는 세상에 자신의 글을 발행함과 동시에 그 용도에 대해서도 작가의 손을 떠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인이면서 동화 작가로 알려진 엘리너 파전,  녀만의 완벽한 공상의 세계를 써놓은 글을 더 읽고 싶어졌다.  간된  그녀의 책 중에는   <작은 책방>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에는 작은 책방이라는 방이 있었다. 사실 그 집에 있던 방은 모두 책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책 없이 사는 것보다 옷 없이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밥을 먹지 않는 것이나 이상하게 생각했던 시절이다.

소설가인 영국인 아버지와 배우인 미국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싶다. 집안 여기저기 둔 책 속에서 배고프면 배를 채우듯 보이는 책들을 집어 들고 읽은 듯 보였다. 그녀가 말한 대로 작가 찰스 램처럼 글로 된 것은 모두 다 읽었다는 책벌레였던 것이다. 그녀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채 자랐지만 독서와 글쓰기로 스스로 작가의 길을 게 되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반세기 전 삶이지만 말이다.


늘 집안엔 책이 넘쳤고, <작은 책방>이란 공간은 집에서 책만 따로 쌓아두는 창고 같은 곳이었다. 창문을 열지 않는 작은 책방의 먼저 속에서 책을 읽었던 일을 이렇게 써놓았다.


 방바닥에 웅크리고 앉거나 책장에 기대서, 몸은 비록 거북해도 마음만은 책에 열중하고 있으면 나의 코는 어느새 먼지로 가득 차고, 곧 눈이 아파오곤 했다.
먼지란 별 조각, 황금 물, 꽃가루 등등 언젠가 땅 속으로 돌아가 또다시 히야신스 꽃 모양이 되어 넓은 대지에서 피어날 티끌들인 것이다.
<작은 책방> 엘리너 파전


 그 책방은 지금 내가 갖고 싶어 하는 은신처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녀가 비유한 꽃과 잡초가 자라난 뜰처럼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아직 내겐 없지만 상상 속의 나는 그 뜰에서 영감을 얻는다.


 마흔 살이 넘었지만 혼자 노는 아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은신처가 필요했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마음속 은밀한 고민들과 작고 소소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호기심들을 놀이처럼 펼쳐 놓고 싶었다. 글로 쓰인다면 커다란 나무도 작은 풀잎도 내 곁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혼자 노는 시간이 좋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알게 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오히려 넘치는 물건들 사이로 헛헛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러했다. 

 그녀가 책위로 날리는 먼지들과 함께 기억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내게도 선명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 있을 듯싶었다.

 온돌방에 뜨끈뜨끈 열이 올라 방구석에 쌓여있던 책이 품은 온도였다. 노란색 표지에 한국 동화 작가들의 글과 그림이 엮어져 있던 어린이전집이었다. 늦은 오후 텅 빈 집에 나 홀로 있었지만 엉덩이가 뜨거워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들고 있던 책이 후각으로 알려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온돌에서 올라온 열기가 물들어진 책에서 풍기는 잉크와 종이 냄새였다.


뜨거워진 방바닥에선 책들이 익어가고, 무릎에 올려두고 읽다가 식어버린 책은 바닥에 두면 또 따뜻해졌다. 그 시간은 한동안 혼자만의 즐거움이기도 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내 결을 지켜주는 듯 든든했다.


  <작은 책방> 말미에 그녀의 마지막 문장을 빌려왔다.

내가 내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중략)...
운이 좋으면 훗날까지도 잠시 마음의 등불을 밝혀 와 줄 때가 있다.
- 1955년 5월 헴스테드에서 엘리너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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