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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ug 30. 2021

나만 아는 재미를 찾았다

덕업 일치

  길가에 야생화는 어디든 따라다닌다. 특별한 자격증도 없고 원예 박사도 아니지만 꽃을 진지하게 보고 다닌다.  동네 야생화 사진가가 된 항상 당당하다. 매일 새로 핀 꽃이 시들어 완전히 떠날 때까지 책임지고 찍는 것이 일이다. 그들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 준비한 채 나를 대접 준다. 바람에 흔들리다가도 아무 말 없이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주거나, 가장 예쁜 꽃잎을 막 피워 나를 부르기도 한다.


 대신 관할 지역은 따로 없다. 주로 동네를 오가지만, 길가나 산이나 중랑천 근처도 모두 상관없다. 가끔 가족들과 비행기를 타거나 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가면 출장을 가는 기분이 들 때도 있. 그런데 사실 출사처럼 꽃을 찍는 일은 거의 없다. 가족 여행엔 엄마 노릇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화가 많이 피는 남양주 천마산에 갈 수 있다면 정말 출장 같을지 모르겠다. 그곳 야생화 탐방을 다녀온 분들은 하나같이 걸작을 찍어 오시는 듯했다. 언젠가 야생의 꽃을 보러 가기 위한 여행을 가고 싶다. 그런데  혼자 산행을 가는 일이 두렵지 않은 세상은 아닌 듯하다. 겁이 많은 탓인지 몰라도 오히려 야생의 낮은 도시의 낮처럼 안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도시의 삶을 살며 야생과 가까운 중랑천을 새벽마다 거닐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도시의 야생은 뭔가 더 애정이 간다. 갑자기 보석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오면서 기운이 난다. 이를 학교에 등교시키고 돌아오는 길 아무것도 없던 하수도 근처에 나팔꽃 한송이가 웃는다. 어느 틈에 뿌리를 내린 건지 너무 반가워 내일도 찾아갈 참이다. 늘 다니는 길에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일은 내 적성에 딱 맞는다. 시력이 좋지 않지만 작은 것들을 금방 알아채는 편이었다. 어려서부터 유독 내 눈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마치 현미경을 들고 다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하수도 구멍 주변에 핀 야생초 2021.08.30

 일본의 한 작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야생초 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길가의 꽃을 그리는 영국 화가는 역이나 버스 정류장 주변의 쓰레기와 삶의 잔해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난 어디서든 보이는 꽃들을 좋아한다.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 물론 가족이 있지만, 상처나 치유는 분명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든 식물들이 보이면 나무든 꽃이든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느 곳에서든 북적거리며 살고 있는 일상을 그들도 하고 있다는 걸 보며, 나도 이 정도는 견딜만하다 싶어 진다. 도심에서 피어나는 꽃들과 나무들도 사람처럼 견디고 있다. 일부러 심어놓은 화단의 식물들이나 아무렇게나 피어난 야생초들도 마찬가지다. 고된 시간을 보내면 꽃들도 위로의 시간이 찾아온다. 도시의 꽃들도 나비, 벌과 곤충들이 찾아와 주니 말이다. 분명 꽃들의 끈기를 인정해주는 치유의 시간은 있다고 믿는다.

 

 나는 꽃을 좋아하지만, 사실 꽃을 찍는 것을 훨씬 더 즐긴다. 그리고 요즘은  재미가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너무 오래 거리두기를 해서 기억조차 희미한 '내 존재감'을 찾아 준 듯하다. 여전히 꽃을 찍는 일은 재미있다. SNS에 꽃을 올린 지 꽤 되었다. 종종 쪽지로 꽃 사진을 보내 이름을 물어보는 분, 꽃 농장이나 가게를 하는 줄 알고 구매를 의뢰하는 분들도 있다. 혹은 플로리스트나 정원사 같은 꽃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럼 이참에 꽃집 사장이라도 해봐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 재미가 밥을 먹여줄지 모른다는 '덕업 일치'를 상상해본다. 왠지 꽃 책이 더 폼나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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