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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an 18. 2023

착한 아내도 착한 엄마도 아니다

보상심리

 매년 늦가을이면 피었던 꽃들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갑자기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빈둥거린다. 그리고 슬슬 도서관으로 서점으로 발길이 움직인다. 겨울 동안 찬 바람도 피해야 하고, 쓸쓸한 마음도 달래기 위해서다. 그동안 읽지 못했던 이슈 도서들과 다시 읽고 싶은 고전을 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동기부여, 자기 계발'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게 된다. 그건 아마도 한 해 한 해 나이 듦이 썩 좋지 않아서인 듯싶다.

  도서관에서 예약 도서 알림이 왔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서 보기는 어렵고, 도서관만큼 내 처지를 이해해 주는 친구도 없는 것 같다. 계획했던 책은 아니었지만 '제일 살기 힘든 아내가 착한 아내'라는 역설적인 소제목이 눈에 콕 들어왔다. 저자는 워낙 많이 알려진 자산가며 강연자였다. 물론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있는 아빠였다.

그의 책을 보면서 성취를 통한 경험자의 진한 자신감이 무엇인지 알 듯했다. 경험은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지난날의 노력의 상징이 아닌가 싶었다. 마치 속성 강연을 들은 듯 순식간에 책을 읽었다. 그리고 착한 아내에 대한 대목을 찾았다.    

세상에서 제일 살기 힘든 아내가 착한 아내이고, 제일 다루기 힘든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다.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착한 사람은 자신이 착하다는 것을 안다.

착한 아내는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챙긴다. 성격도 순하고 앙심을 품는 일도 없다. 그러다가 서서히 보상심리가 발동한다. 대우나 보상도 받지 못하리라는 아는 순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다.

<생각의 비밀> 김승호


문장에서 착하다는 것이 좋지 않은 뉘앙스라는 걸 알았지만, 읽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보상심리'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말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너 나중에 보자.'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도 모르게 가족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가족을 위한 일은 한답시고 몸이 지치도록 쓰고 나서 후회가 될 때가 많았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사나 싶은 기분에 사로잡혀서 우울해지는 날도 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싶은지 말이다.


 내 목소리를 찾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나 자신에게 받고 싶은 보상심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헌신해서 얻은 것도 아니고, 맘대로 하는 권력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찾고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가족이 흔들리지 않고, 내 몸에 더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최선을 찾고 싶었다. 마도, 딸도, 아내도 아닌 나 자신에게 보상을 받고 싶었다.



마흔까지 무엇을 하다 어떻게 망해도 다시 설 수가 있다. 몸만 상하지 않으면 된다. 설령 몸이 상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방법이 있다. 몸과 마음은 실존 세계에서 한 뿌리다.

 나는 이미 한번 강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그의 말대로 라면 나도 다시 일어설 방법을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아주 오래 걸렸지만 말이다. 정신이 들어보니 마흔이 눈앞에 있었다.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았지만 더 늦기 전에 기회를 잡고 싶었다. 저자는 마흔 전에 성공한 사례보다는 마흔 이후에 성장하는 편이 낫다고 했다. 이른 성공은 독이 되어 더 나락으로 데리고 가거나 자만으로 이끈다고 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내 마흔의 시간은 성장하고 있는 걸까? 멈춘 것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흔 점에 성공해 본 기억이 없으니 기회라곤 마흔 이후뿐이었다.

 

 내가 착한 아내가 되는 걸 포기하고, 딴짓을 시작한 건 잘한 일이지 모르겠다. 하지만 종종 가족들에게 헌신하고 보상을 받으려는 '보상심리'가 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부산을 떠는 집안 일도, 좀 게을러지려고 속으로 외친다.


'난 착한 아내도 착한 엄마도 아니야.'
적당히 모른 척 하자.


 완벽하지 않아도, 착하게 굴지 않아도 괜찮았다. 가족들도 내가 일에 빠져 있다고 해서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죄책감을 만드는 건 '착함'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었다.  


사람은 마흔이 넘어서야 경험과 지식이 균형을 이룬다. 인생의 반은 살아야 흔들림이 추가 앞쪽 무게를 견디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야 함부로 흔들리지도 않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도 잘 알게 된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도 마흔이 넘어서야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알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책 속에 문장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었다.

그 문장들은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헷갈릴 때마다, 나 자신이 의심될 때마다 내편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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