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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Apr 29. 2021

아무 데서나 쓰고 싶었다

작업공간

  

 이들에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주고 예술적인 감수성을 주는 엄가 되고 싶었다. 패션 감각이 넘 아이에게 자신을 꾸미는 법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속에 나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자신 있는 건 아이들의 수다를 감당해 주는 일 정도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장점이 많다. 특히 일대일로 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 아이는 훨씬 편안하게 속이야기를 털어놓고 만족스러워한다.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면 아이는 힘들었던 도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나무를 찾아다.

마스크를 내려 뭔가 먹기엔 걱정스럽고, 아이스크림처럼 차갑지는 않아도 나무 그늘의 서늘함을 이용한다. 다행히 집 근처 찾아가기 쉬운 곳에 늘 나무들이 기다려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들이 털어놓을 땐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상을 늘어놓다가, 뜻밖에 아이의 숨겨온 오래된 비밀도 듣게 된다. ^^ 무언가를 털어놓는 순간 별일이 아니라고 아이도 느껴지는지 금세 이렇게 말한다.

"이젠 괜찮아요."


 

 나무 아래 토끼풀이 어느새 주변을 뒤덮고, 하얗고 동그란 꽃이 피었다. 토끼풀이 눈에 들어온 아이는 네 잎 클로버를 찾고 싶다며 진지해진다. 결국  네 잎 클로버를 하나 찾고 난 아이는 방금 전까지 했던 걱정거리는 뒤로하고, 찾아올 행운이 뭔지 궁금해한다. 이스크림을 대신하기엔 초록 토끼풀이 깔린 나무 그늘은 너무도 건전하고 경제적이었다.



  

 한 전업작가는 책상이 두 개라고 한다. 한쪽 책상에선 소설을 쓰고 그 작업이 잘 안 되면 다른 책상에서 다른 글을 쓴다. 그리고 다시 지겨워지면 원래 책상으로 가서 소설을 계속 썼다고 한다. 부엌 식탁 아래에 이미 다 쓴 노트를 담은  박스가 있고, 주변엔 읽다만 책들이 쌓여있다. 언제나 식탁 한자리는 내 노트가 늘 놓여있다. 그리고 다른 자리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아이를 등교시키며 출근하듯 카페를 찾아 글을 썼다는 작가는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쓰고도 그렇게 작업을 한다고 한다. 아이가 집에 오면 엄마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실은 있더라도 아이들이 놀이터가 된다. 방문을 닫아놓고 글을 쓰는 일은 불가능하다. 늘 집안일과 엄마 역할을 병행해야 한다.


 할 수 없이 집안에서도 여러 곳을 전전하며 글을 쓴다. 여기저기 노트를 두고 끄적이거나, 갑자기 떠오르는 걸  스마트폰을 붙잡고 입력한다. 아직은 주어진 상황에 맞춰 연습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엉덩이가 딱딱해질 때까지 앉아서 글을 쓰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 혼자만 알고 싶었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내겐 나만의 방도 나만의 책상도 없어도 상관없었다.

아무 데서나 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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