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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an 26. 2021

 비밀을 숨겨두었다

 다정한 도서관

  벌레와 활자중독 가까운 독서를 한다. 아무것도 읽지 않는 시간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땐 가방을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도서관으로 간다. 손을 뻗으면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이란 공간이 주는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차게 도서관을 다니는 나를 동네 엄마들은 아이들 책을 빌리러 가는 줄만 알고 있다. 사실 도서관에 비밀이 따로 있는데 말이다.

  한때 도서관 사서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일을 하는 시간만큼 읽을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서점에서 일을 하면 어떨까?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가 하루 종일 서있는 것 때문에 병원신세를 진적이 있다.  책을 볼 시간은 더군다나 없었다.  서점 주인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아직 버리지 않은 꿈 중 하나지만, 보고 싶은 책을 모두 서점에서 팔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부작용도 없이 책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 바로 도서관 대출이다.  

도서관에서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낮잠을 재울 시간에 도서관으로 갔다. 매주 책을 빌려와, 예전처럼 책을 사지 않아도, 독서의 욕구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 여행 에세이나 사진집으로 육아로 갇혀있는 일상을 벗어나게 했고, 서점에 가지 않아도 신간도서들을 읽을 수 있었다.  절판도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구매하는 것보다 다양 책을 보게 되었다.

   작가의 작품을 모조리 빌려다 한꺼번에 읽기도 했다. 읽기가 거북한 책은 읽다 말고 반납해버렸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은 여러 번 빌려다 보았다. 책을 많이 빌려본다고 도서대출권수도 일정기간 동안 늘려주기도 했다.


대출권수 최대 빌리기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책을 읽다가  문득문득 글 속에서 나를 본다.  외국의 어느 작가에게서도 내가 있고, 남자 작가들의 이야기에서도 내가 있다. 천년도 넘은 과거 속 작가에게백 년 전 작가에게도 내가 있었다.  그들의  글에 지금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이미 들어 있었다.

     듣고 싶어 했던 말 책에서 발견이 되었다. 밋밋한 내면이테가 새겨지듯 잔잔한 무늬 생겼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꼬리를 물듯이 책에서 책으로 연결되었다. 

  서재를 새책으로 채우던 일은 아주 예전 일이 되었다. 대신에 도서관에서 친구처럼 책을 집으로 데리고 온다. 좋은 책을 읽다 보면 나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딴생각을 하지 않게 책을 읽는다. 아주 손쉽게 책의 힘을 빌렸다. 책을 읽을수록 삶에 다른 향기가 섞이고 내 인생도 꽤 멋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해 주었다. 무언가를 쓰면서 원하는 삶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주문을 걸어다.


     직장을 그만두니 일상이 턱없이 단조롭고 단절되었다. 그럴수록 도서관을 더 자주 다녔다. 스스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도서관을 갈 수 있어 덜 억울했다. 시시하지 않은 날들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비밀을 도서관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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