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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Jan 23. 2021

날마다 모은다

반복과 수집

  늘 뭔가를 써왔다.  어렸을 땐 일기를 썼고, 엄마가 내 일기장을 보는 걸 알고 난 뒤에는 일기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만들어진 조각들을 담아 두고 감정을 남기는 노트였다. 아무도 모르게 나를 모아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스프링 노트일기와 메모 섞어 쓴다. 줄이 그어진 빈 노트를 보면 손이 반응을 한다. 빼곡하게 채우고 싶어 진다. 마치 글자들을 노트에 새겨놓는 듯 눌러쓰기 시작한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 노트 필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싫어하던 과목도 노트 필기를 많이 시키는 선생님이면  좋아하기도 했다. 교과서에는 거의 필기를 하지 않고 모조리 노트에 옮겨다 썼다. 시간이 많이 들기는 했지만 지루한 학교생활에서 필기하는 수업시간은 나쁘지 않았다. 부를 했다기보다는 노트를 채우는 기분이 좋았다.


  서술식 시험을 볼 때는 문제의 답을 잘 알지 못해도 빈 줄을 채우는 기분이 좋아서 빼곡하게 쓰고 빈 여백을 남기지 않았다.            

  가방에는  늘  노트와 펜을  챙겼다.  지금도 여전히 노트가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텅 빈 줄 노트가 좋다.  


@songyiflower 인스타그램

  평소에 내 관심을 끄는 것들을 수집하고 쌓아두는 곳은 노트다. 써놓글자들이 목록럼  저장된다. 그러다가 써둔 과 어떤 생각이 겹쳐지면, 글감이 되고 짧은 글로 스마트폰에  메모를 한다. 그리고 새로 쓴 문장들이 뒤로 밀려 잊어버린다.

  날마다  수집을 반복하면서 짧은 글도 쌓인다. 그러던 어느 날 길가에 꽃을 찍다가 수집해놓은 글들 중 하나가  떠올랐다.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 섞이, 묘한 반응들이 일어난다. 

  수집을 반복하면서 무언가를 모은다. 노트뿐만 아니라 사진도 수집하듯 찍는다. 사진을 보면 찍은 장소와  주위를 감싸고 있던 공기,  날씨와 기온도 함께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들이 글감이 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듯하다.

  반복되는 것들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일으로 바뀌었다. 요즘은 매일 글과 사진을 공개하고 있는데, 이 행동도 반복하다 보니 습관처럼 되었다. 그래서인지 수집방식도 좀 달라진 것을 느다.

 노트에 아무렇게나 모아둔 조각들이 이렇게 쓰일 줄을 몰랐다.  예전엔 이유 없이 좋아서 수집해 두었다면, 요즘은 뭔가 대단한 것을 채집하는 기분이다. 그전엔 날것으로 먹었다면, 요즘은 익히고, 소스를 얹어 필요한 만큼 먹는 듯싶다.

 


 중랑천에서 사진을 찍 한 아저씨가 궁금한 듯 말을 건넨다.


"혹시 작가세요?

"...."


"매일 사진을 찍으시던데 궁금해서요"

"아... 네."


"그렇셨구나. 어쩐지,  내 말이 맞지? 하며 일행에게 설명한다. "

 얼굴이 빨개져서 그 자리를 도망치듯 벗어났다. 아무도 몰래 하려고 한건 아니지만 들켜버린 기분이 들어 당황스러웠다. 그분이 내게 뭘 쓰는 작가인지? 뭘 찍는 작가인지 물어볼까 봐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수집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날을 떠올려 보았다. 솜사탕처럼 사르르 사라지는 상상이지만 항상 달콤하기만 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방학인 아이들은 집안을 통째로 장악해버렸다. 집안을 치우는 건 애당초 손들었다. 점심 먹은 설거지 모른척하고, 노트를 뒤적거리며 글감을 찾고 있다. 가족들의 저녁 식사 전까지 끝을 내야 한다. 내가 정한 마감시간은 늘 촉박하고,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 날마다 모은 수집 품목을 모두 펼쳐놓고, 쓰는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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