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쌍 Aug 03. 2021

오후 5시가 되면 숲으로 간다

루틴의 힘

 

 가족이 모든 잠든 시간 에어컨 냉기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창을 살짝 열었더니 빗소리가 요란했다. 어느새 비 공기도 시원하게 바꿔 놓았다. 선선한 기운이 좋아 잠시 우산을 쓰고 어두운 밤 외등이 켜진 곳으로 산책하고 싶었다.   

 가로등이 반짝이며 바닥에 생긴 물 웅덩이 위로 비추는 별구경을 하고 싶었다. 똑똑 창문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나뭇가지를 흔들며 쏟아지는 빗소리가 좋아서 이대로 비가 계속 내리길 바랐다. 고요한 시간이 나에겐 왜 달콤한지 비는 알고 있는 듯 오랫동안 머물렀.




 내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리워할 줄 몰랐다. 특히 엄마가 되고 나서 더욱 그렇다. 가족들이 모두 나가면 혼자 있는 시간이 꿀맛 같았지만 잠시 동안만 가능했다. 족들이 있는 시간에 집안일을 하거나, 가족이 없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지 달랐다.


  누구의 부름도 받지 않는 시간이 몹시 필요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혼자만의 방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쓰기 위한 방이 아닌 몸을 움직이며 글을 쓸 기분을 불러오는 시간이 있어야 했다. 나는 습관처럼 오후 5시가 되면 집 밖을 나섰다. 늘 비슷한 시간 억지로 일터로 나가듯 글을 기 위해 워밍업을 한다. 


1층 현관을 나가면 나무들이 양쪽에서 내려다보는 보도블록을 따라 걷는다. 높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허리를 펴고 팔을 벌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마치 마녀가 사는 집을 벗어나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갔다. 나무들의 안부를 묻고 나면 더 깊은 숲을 찾아 걸었다.


 

엄마 역할은 부엌에 걸어둔 앞치마와 함께 두고 나왔다. 아이들 없이 홀가분한 기분은 금방 효과가 나서 몸이 가뿐했다. 밖으로 나와도 나는 완전히 홀로 있지못했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 새들과 산책 나온 개들, 식물들까지 더 많은 존재들만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관찰하는 내 눈은 금 바빠지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오후 5시가 되면 홀로 숲으로 다. 그 숲에선 내 눈에 의미 있는 것들이 기다렸다. 꽃이 불러 세우고 나뭇잎이 붙잡기도 했다. 사진 한 장만 찍은 날도 있지만, 그냥 걷기만 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매일 관처럼 밖으로 나선다. 글을 쓰기 위해 만든 나만의 루틴이다. 아와 가족의 저녁을 해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루틴의 힘을 믿는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가고 싶기 때문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만 홀로 걸을 때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겁이 많은 나는 한꺼번에 쏟아 내는 것이 두려워서, 매일 숲으로 갈 때마다 손에 잡히는 하나의 조각을 꺼내 들고 한참을 방황한다.   

이전 02화 날마다 모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