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엔 벚꽃 개화시기가 4월 3일이라고 했는데 집 앞은 벌써 만발했다. 오전에 절반이 피고, 오후에 나머지가 다 피었다. 집 옆으로 남쪽을 향해 선 벚나무는 이틀 전에 만개했고, 정면에 보이는 벚나무 두 그루도 결국 다 피었다.
봄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서울에선 촉촉한 비바람이 그리울 정도다. 경칩 이후로 분무기에서 나오는 물처럼 비는 한 두 번 날리고 소식이 없다. 매년 봄비가 내려 벚꽃 엔딩이 빨라지나 싶었는데, 목이 마른 꽃들은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로 더 서둘러 갈 모양이다. 이러나저러나 꽃은 한철 피고 지는 약속이 되어 있으니, 벌써부터 내 아쉬운 마음이 핑계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전농로에 살던 나는 매년 벚꽃을 보았다.스무 해 넘게 전농로의 벚꽃은 앞마당에 핀 동백꽃만큼이나 익숙했다.
집 앞 도로는 파도처럼 사람들이 우르르 한 방향으로 움직이다 갑자기 반대로 휙 하고 돌아서며 내 하굣길을 막았다. 버스 정류장을 전에 내려가기는 멀었고, 다른 노선도 없었으니 책가방을 꼭 끓어 앉은 채 꼼짝없이 인간 파도타기를 해야 했다.
<전농로 벚꽃>
삼도1동 전농로 000-00번지
스무 살의 빨간 철문이 열린다
아무도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집 밖은 이불속만큼이나 편안해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뜻대로 되지 않던 시절
결국 봄바람이 부추긴 가출은 실패했다
벚꽃 할머니가 꼬박 밤을 새우며 나를 달랬다
삼도 1동 전농로
스무 해가 지난 벚꽃이 핀다
왕벚나무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집 앞 풍경은 스무 해 전과 똑같아
주인을 잃어버린 집
가방 하나에 인생을 담았어
벚나무가 붉은 잎 경고장을 내밀기 전에 떠났지
그리고 겨울 눈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말았네
봄은 과속을 하고 있었다. 한꺼번에 피어난 꽃들을 쫒느라 내 몸에도 피곤이 밀려왔다.
기다리는 봄비는 오지 않았지만, 기온은 뚝 떨어졌다. 자연은 알아서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냉장고처럼 차가운 공기를 만들어 버렸다. 추월하던 모든 꽃들을 삽시간에 멈춰 놓았다. 아직도 매화꽃잎이 다 떨어지지 않았는데, 황매화꽃이 피고 벚꽃은 만개했다.
당장이라도 일이 벌어질 듯했다. 가만히 있으면 기회는 모두 지나가 버릴 듯 조바심을 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찬바람이 내게도 말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