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동상이몽

멀리 갈 것도 없네

벚꽃나무

by 무쌍


늦은 결혼 있었지만 나만 늦은 건 아니었다. 남들은 결혼할 때가 되면 그럴 만한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다고 하던데, 그런 줄만 알았다.


그는 보통의 키에 피부가 하얗고 마른 사람이었다.

시를 쓴다고 했고, 영화를 좋아했다. 여기까지가 결혼 전의 기억이다. 그 후에 이야기는 좋았다가, 짜증이 났다가 울컥했다가, 여러 가지 감정의 파도를 타며 그럭저럭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한다.

2023.04.02

일 년 동안 기다렸던 근처 산에 피는 벚꽃을 미세먼지 가득한 날 다녀왔다. 작년 봄에 찾았을 땐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내년엔 꽃필 때 오자.'라고 약속했다. 집 앞에 벚꽃들도 만개했으니 산에도 피었을 듯싶었다.



근처에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남편이 가끔 '나무 보러 가자.'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큰 나무를 보기만 해도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듯 편안하게 해 주었다.


나무 근처엔 보기 좋게 꽃을 가꾸는 주택이 있는데, 계절마다 꽃이 다르게 피어났다. 오랜만에 찾은 집은 대문과 지붕이 새로 칠을 한 듯 반짝이며 선명한 파란색으로 리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꽃소식은 단출했다. 화분들을 많이 정리했는지, 돌단풍 꽃이 촘촘히 담긴 화분 하나만 눈에 들어왔다.


작년엔 버스를 타고 갔는데 이번엔 오래 걸려도 쉬엄쉬엄 걷기로 했다. 어제 금전문제를 겨우 해결했지만, 둘은 말없이 없었다. 깜깜한 밤길도 아닌데 산아래 벚꽃나무길 찾기는 뿌연 먼지들이 방해로 눈앞이 침침하고 자신이 없었다.


처음 오는 동네인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산 방향으로 걸었다. 산 근처에 다다랐더니 골목 사이로 눈부시게 밝은 조명처럼 벚꽃나무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뒤 둘은 할 말을 잃었다. 만개한 벚꽃이 늘어선 길가는 생각지 못한 골목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자주 가던 길가에서 몇 걸음만 더 가면 나오는 곳이 산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전혀 다른 곳이라고 추측했는데 바로 옆에 두고 몰랐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하는 남편과 지켜보는 일이 부담스러운 나는 방금 전 몰랐던 몇 걸음을 걷는 중인 것은 아닐까? 큰 파도는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헛걸음을 하는 건 아닌지, 시간을 너무 허비하는 건 아닌지, 미리 짐작하는 일에 익숙해있었다.

확실치도 않고 틀릴지도 모른다는 기분을 모른척하기 어려워서, 모퉁이를 돌면 곧 목적지 앞에 있다는 걸 아채지 못하고 말이다.

깔딱 고개 같은 고비가 몇 번이나 찾아올지 알 수 없는데도, 나는 늘 예상하고 싶다. 그래서 더 안심되는 쪽을 선택하려고 했다. 지나고 보면 벌어질 일이었고 그 결과가 나온 것뿐이었다. 실망을 많이 겪다 보면 단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위축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 앞에 벌어진 일도 순서대로 피는 꽃처럼 일어날 순서였나 보다.

2023.04.02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벚꽃나무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일까? 꽃가지를 잡고 꽃을 꺾어 귀에 꽂는 사람들을 보니 나무가 그리 좋아하진 않을 듯싶다가도 카메라 세례를 계속 받는 벚꽃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앞에서 걸어오던 할머니가 만개한 벚꽃을 보더니 "멀리 갈 것도 없네."라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마다 벚꽃나무는 꼭 있다. 태어나 지금까지 살던 집도 근처에 늘 벚꽃이 피었다. 앞은 아니어도 벚꽃 구경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봄날에 하는 벚꽃구경은 항상 지나던 길가나 집 앞에 핀 꽃을 보며 감탄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말을 맞은 아이들을 데리고 벚꽃을 다시 보러 갔다. 구름 없이 파란 하늘에서 우리가 걷는 내내 벚꽃 잎은 비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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