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홀로 핀 꽃인 줄 알았다

홀로서기

by 무쌍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난 것일까?' 이 물음은 나를 오랫동안 침묵하게 했다.

나서지 못하고 자꾸만 숨고 싶은 기분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내면에 깊은 물처럼 닿지 않는 진실이 있을 거라 믿었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으로 되물었고 분석도 해봤다. 백과사전처럼 찾아서 배우면 될 일 같았다. 손에 닿는 대로 책을 펼쳤지만 나에게 맞는 사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서관 책장에 책 제목들이 익숙해질 무렵, 절대 읽을 일이 없다고 여겼던 책들을 집어 들 용기가 났다. 공포의 대상과 마주 보지 않는 것, 그들이 나타나면 멀리 도망가는 것. 무서운 뱀의 정체를 알고 나니 피할 방법은 생겼다.


나를 이렇게 만든 존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건 소용이 없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 우울함을 떨쳐내고 싶었지만 종이 위에 들러붙은 스티커처럼 땔수록 함께 찢어지는 일이었다. 잠시라도 평화로운 기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폭풍 같은 바람에 날아가는 낙엽이었고, 바람이 아니어도 뚝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어린 시절의 사진 속에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 주름이 잡힌 이마에 눈치를 보는 눈은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은 건 진 찍는 걸 싫어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나이가 들었고 어른의 모습을 갖추긴 했지만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내 곁엔 나와 닮은 가족이 아무도 없는 것일까? 씨앗이 떨어져 나와 긴 여행 끝에 뿌리를 겨우 내린 야생화처럼 나 혼자였다. 꽃무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피었지만 늘 내가 온 곳을 그리워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버거웠다. 누가 나를 이렇게 겁쟁이로 몰아넣는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남들보다 걱정이 많고 더 예민한 안테나를 달고 사는 것이 바로 나였다. 가족에게 휘둘리는 이유는 내 본성이 아니라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날과 힘든 날이 번갈아 나를 찾아왔다. 힘든 날이면 무작정 걷는 일에 집중한다. 지금은 여름꽃의 시간이다. 계절의 시간에 맞춘 꽃들을 보느라 들뜬 발걸음이 춤을 춘다. 담장 아래 뚝 떨어진 꽃송이를 보았다. 딱 이맘때 피는 능소화는 시들면서 송이째 떨어진다. 마치 지난 일들이 시든 꽃잎처럼 보였다. 이젠 시간 뒤로 보내야 하는 사진 한 장 속의 기억이라고 말이다.

시든 능소화 꽃송이

머릿속으로 끝없이 분석하며 다가올 걱정을 찾는 것에 익숙했지만,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걱정하는 습관은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남긴 흉터일 뿐이었다.



고개를 숙인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길가의 작은 꽃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풀포기는 찬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라색빛 꽃이 반짝거렸다. 꽃을 보러 다녔다.

동네 어디든 꽃이 피었고, 길가에 핀 야생화의 이름을 알아내고 사진을 찍었다. 집 주변을 산책하며 만난 꽃은 깊은 우울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해 주었다. 걱정을 하나씩 떠올리는 것처럼 예쁘게 피어난 꽃을 찾았다. 꽃 사진을 찍다 보니 지나친 생각을 하는 버릇들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자연의 작은 환희에 빠진 후론 값비싼 물건이나 어떤 것도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물건이 주는 가치는 점점 더 소박해졌다.

리석 단 구석에 핀 한 송이, 아스팔트 틈에 핀 한 송이, 꽃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핀 꽃 한 송이, 산책길에 만난 꽃들은 모두 혼자였다. 손가락 만한 키에 손톱만 한 꽃잎을 하고 있었지만 활짝 핀 모습은 아름다웠다.


홀로 핀 루드베키아, 꽃양귀비

그동안 내가 숨겨온 감정이 뭐였는지 알 것 같았다. 외로움이었다. 무리에서 나만 홀로 떨어져 핀 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구 전체가 하나의 땅 덩어리라면 난 나대로 자리를 잡고 핀 것이라는 왜 몰랐을까. 자 피어날 수밖에 없던 건 그게 내가 원했던 삶이기 때문이었다. 는 홀로 걷고 싶었다. 로서기를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혼자니까 말이다. 너무 많은 의미를 찾으려고 삶을 지옥에 빠뜨린 건 나였다. 삶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일 꽃을 보러 집 밖을 나섰지만, 꽃을 보는 시선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온종일 나만 바라보며 내 얘기만 쓰게 바꿔놓았다.


아무렇게 피어난 길가의 한 송이 꽃을 보며 별일 없는 하루가 소중해졌다.

홀로서기가 쓸쓸하다고 생각했는데, 홀로 있어야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혼자 있지만 늘 꽃이 함께 해주었으니 외로운 줄 몰랐다. 그렇게 꽃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하나씩 늘어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