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꽃이 핀 콩코드에서 소로우를 만나다

자연의 기념품

by 무쌍

꽃이 없는 겨울이 되면 나는 소심한 은둔자가 된다. 산책을 나서도 금방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자꾸만 혼자가 되어 빈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싶어 진다. 행동반경은 집안에서도 좁아져서 주방 식탁을 독서실처럼 쓴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며 노트에 끄적거린다. 점심때가 되면 집안일을 하다가 차 한잔을 마시고 써놓은 글을 읽는다. 커피와 차를 셨으니 따뜻하게 물을 끓여서 홀짝 거리며 또 궁리를 한다. 글에 무얼 더 넣을 것인지 찾다 보면 입이 무거워진다. 나무늘보처럼 몸도 느려지고 수험생처럼 노트 들여다본다.


수험생처럼 지내다가도 바깥세상이 그리워다. 걷고 싶은 마음이 이겨서 집을 나섰다. 단단히 껴입고 나왔지만 눈 덮인 길가를 보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화단에 남은 꽃들을 잠시 둘러보려고 공원으로 향했다. 꽃들은 다 떠났지만 꽃들이 내게 남겨둔 기념품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눈 쌓인 공원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찬 바람이 불어왔다. 그래도 끝까지 걸어가는 이유는 그가 말한 '꽃들의 기념품'을 찾고 싶어서였다.


반쯤 눈이 덮인 곡식 밭에서 건조하지만 깨끗하게 씻겨나간 블루 컬의 빈 컵을 발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섬세한 푸른 꽃이 피었던 자리에 겨울은 이 바싹 마른 컵만 남겨두었다. 눈 위에 서 있는 꽃의 기념품
- 헨리 데이비스 소로우 1851년 12월 14일 일기


그는 바로 미국 콩코드 살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다. 꽃을 쫓아다니다가 알게 된 그는 자연 관찰자이자 사회사상가로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꽃과 나무, 야생동물에 대한 방대한 관찰기록을 남겼다.

그가 남긴 고향 콩코드 지역의 자연관찰 기록은 100년이 지난 지금 생태학적으로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야생화들과 개화시기의 변동, 사라진 나무와 야생화의 증거들, 월든 호수의 생태계도 모두 그의 일기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실제로 그가 살던 때 보다 호수의 폭과 높이가 줄어들었고, 온난화로 꽃들의 개화 시기도 달라졌다고 한다. 그가 긴 시간 반복해서 같은 지역을 세세히 관찰도 했지만, 사실 그가 고향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알 수 있다. 세상을 여행하지 않아도 그는 더 큰 세상을 이미 다녀온 듯 깊은 통찰과 혜안이 긴 글이 보고 싶어졌다. 겨울이면 소로우의 책을 다시 펼쳐 들게 한다.


소로우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문장은 필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개인적이고 진실하다. 고향 콩코드의 땅을 직접 걷고 누비며 그 광활한 자연을 일기로 기록했다. 자연, 사회, 정치, 환경, 인간의 존재 그가 남긴 글은 지구 반대편 우리에게도 귀중한 조언들이 많다. 그중에서 반가운 글귀를 발견했다.

나는 적어도 하루 네 시간씩 세속적인 일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숲과 언덕과 들판을 어슬렁거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건강도, 기운도 유지할 수 없다.

나는 좀이 쑤셔서 하루도 방에만 있을 수가 없다.

여성은 남성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데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다.

걷기는 하루 종일 걸리는 일이며 모험이다.
-<달빛 속을 걷다> 헨리 데이비스 소로

늘 집 밖을 나설 궁리를 하고, 집안보다 밖에서 더 에너지를 얻는다는 걸 그에게 털어놓으면 그가 반갑게 동의해줄 듯했다. 집안을 꾸미는 시간보다 꽃이 핀 중랑천에 나갈 시간이 더 좋은 나였다. 가끔은 밖으로만 나가려는 내가 이상한가 싶기도 했지만, 앞으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가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것에 마냥 기뻤다.



처음엔 핀 꽃들을 눈에 띄는 대로 찍었다. 관찰하다 보니 전년도에 봤던 꽃을 또 보게 되었다. 새로 핀 꽃도 보이고 지난번엔 몇 송이 없었는데, 군락지가 되어 있기도 했다. 예쁘게 핀 꽃만 쫓아다니다가 소로우가 한 관찰이 무엇인지 알아낸 듯 한 기분도 들었다. 가장 먼저 꽃을 찾으려고 한 두 시간씩 걸어갔다는 일화는 그에겐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꽃의 개화시기를 정리했다는 식물학자로의 열정은 감탄할 뿐 흉내 낼 엄두도 낼 수 없다.


꽃을 찍으러 다니다 보면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구부려야 한다. 땅바닥만 보고 다니다 보면 잠깐씩 현기증이 난다. 그럴 때마다 허리를 펴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잠시 벤치를 찾아 쉰다. 그의 일기에 보면 그도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땅만 보고 다니는 것도, 하늘만 올려다보는 것도 몸엔 무리를 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가 3-4시간 걸으면서 콩코드의 숲과 호수를 다니는 수고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겨울을 건너는 동안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하나는 소로우의 책을 다시 읽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야생화 일기를 완성하는 일이다. 겨울은 어쩔 수 없이 봄부터 가을까지 찍어둔 사진을 꺼내보며, 머릿속으로 상상해야 한다.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글로 옮겨야 하지만, 추운 공기 탓 인지 쉽게 속도가 나질 않는다.


소로우의 야생화 이야기도 사실상 겨울이면 휴식기가 된다. 겨울에 꽃이 없듯이 일기장에도 자연 관찰은 거의 없다. 나의 겨울도 그런지도 모르겠다.


눈 쌓인 화단 (나무수국 마른 꽃, 마로니에 나뭇잎)

이불속에서 반나절을 누워있다가 아이를 데리러 밖을 나섰다. 어제 본 풍경은 그대로였다. 눈으로 덮인 콩코드에서 소로우도 보았을 법한 풍경 같았다. 그가 보았던 눈 쌓인 자리에 꽃이 남긴 기념품이 내 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화단에 쫑긋하게 솟은 질경이의 꽃차례, 나무수국의 마른 꽃잎에 쌓인 눈, 치우지 않은 단풍잎, 마로니에 잎 위에 쌓인 눈... 눈꽃과 자연이 남긴 기념품이 계속 눈에 띄었다.

겨울 눈꽃이 핀 콩코드에서 소로우를 만나고 나니 용감해진 걸까? 눈 쌓인 땅 속에서 준비가 길면 길 수록, 꽃의 향기는 더 깊어지고, 꽃잎은 진한 색으로 피어 날 것 같았다.

나의 글쓰기도 꽃이 없는 겨울처럼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계절이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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