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서 수련꽃을 그리는 모네를 만나다

관찰된 기억들

by 무쌍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아빠와 단둘이 도망치듯 성산포 앞바다에 가는 날은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성산포 앞바다, 가끔씩 문어가 기어 나오기도 하고, 작은 게 들이 닷돌 위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낚싯대를 잡고 있던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말이 없으셨다. 잡은 물고기를 다시 바다에 놓아주면서 낚시놀이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짠 냄새와 축축한 바람, 시끄러운 파도소리, 부서진 돌멩이들이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았지만 바다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바닷 물속에 들어가는 건 좀처럼 안하지 못했다.


콧 안으로 짠 소금물이 들어왔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는데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잠깐 물아래로 내려가는 듯싶더니 귓구멍으로 물이 들어오는 물소리가 무서웠다. 스무 살 여름에 한 마지막 바다 수영이었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다. 바다가 좋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건 너무 멀어진 이야기가 되었다.


내겐 기억이 맞는지 지어낸 이야기 인지 헷갈리는 과거가 있다. 무언가 떠오르긴 하지만 자신할 수 없다.

작은 아이들 그 틈에 내가 있는데 물에 빠졌던 아이는 입에서 물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 뒤로 나는 물속에서 기억을 더듬어 내는 듯 몸이 움츠러들었다.

까맣게 잊어버렸다가도 물이 주는 감촉과 소리, 수면 위로 찰랑거리는 물결의 파동을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하지만 기억을 확인해 줄 사람은 없었다.



새찬 비가 연달아 내리고 있었다. 방에 갇힌 나는 비가 그치길 기다렸지만 나흘 째가 되어서야 비가 그쳤다. 마당으로 나간 나는 파란 수국 나무 뒤에 연못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 위에 배처럼 둥둥 떠 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했다. 초록 이파리가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펼쳐져 있고, 중심에 장미처럼 겹겹이 꽃잎을 한 수련 한송이가 피어 있었다. 과거가 관찰된 기억은 수련꽃과 물에 빠진 나를 뒤엉켜 놓았다. 아주 오래된 기억은 지금까지도 나를 헷갈리게 한다.


나는 늘 정원에서 일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꽃이다.


클로드 모네가 한 말이다. 그가 정원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정원을 가꾸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수련연작도 그가 만든 정원이 완성된 후, 그의 말년에 그린 작품이었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정원에 생명을 불었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길게 머리를 늘어 뜨린 아래엔 수련이 채운 연못이 있었다. 작은 다리를 만들었고, 그 풍경은 살아있는 작품이 되었다. 그가 만든 정원이 모습을 갖추었지만, 그의 시력은 빛을 잃어 갔다. 보이지 않는 풍경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을 상상해보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림은 보기 위함인데, 희미해진 눈으로 화폭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화가의 집념은 대단하다는 표현 말고는 가늠할 길이 없었다.


설령 모네가 시력이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그림 속에 푸른빛이 감도는 물 위에 피어난 수련이란 걸 알고 있다. 우리는 화가가 보여주는 대로 그림을 보기 때문이다. 해석은 다르게 할 수 있지만 딱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이다. 나는 뭉개진 듯 핀 수련꽃이나 섬세한 선으로 표현된 수련꽃도 다 모네의 수련 연작일 뿐이었다.


그랬다. 내 기억 속에 선명한 것과 흐릿한 것을 연결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편집한 기억이 같은 것이라고 하면 되고, 다르다고 하면 그런 것이었다. 모네가 보이지 않은 눈으로 정원 풍경을 기억해 수련꽃으로 피어나듯,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는 것뿐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무엇이었을까?

수련이 피어있던 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시간을 거슬러 관찰하다 보면 오르는 얼굴들이 나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일찍 떠나버린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최근에 나는 가족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마치 가족사진을 글로 설명하듯 말이다.

사진관에 걸린 단체사진이 아니라 내가 관찰한 대로 가족의 이야기다. 그걸 쓰지 않고서는 나를 증명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을 찍듯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만 쓰고 싶다.


물에 빠진 것인지, 너무 울어서 눈물과 땀에 젖은 몸이었지는 정확하지 않다. 추워서 몸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 나를 감싸줄 어른들은 모두 다른 곳에 있었다. 내 옆이 아닌 연못 옆에 누워있던 아이 곁이었다. 그 뒤로 연못을 사라졌고, 수련꽃은 버려졌다.


검은 물, 수련꽃, 연못, 바다는 관찰된 기억들이 불러온 단어들이다. 그리고 사실이든 아니든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완성된 정원을 가질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내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모두 내가 관찰한 것들이라는 것 말고는 없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정착해서 30년 가까이 수련 연작에 몰두했다고 한다. 화가로 명성이 쌓이고 정원에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키웠다. 그리고 연못에 수련이 피어나는 것을 그린 것이다.


오랜 시간 수련을 그리면서 연못에 비친 나무, 빛, 그림자, 수련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연못을 보며 그림을 그리던 그는 날마다 물에 부서지는 빛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시력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나아질 수 없었다. 그가 수련 그림을 그리려고 연못으로 가면 눈부신 빛의 풍경을 보지 않을 수 없었느니 말이다. 그가 남긴 수련 그림은 그래서 더 사랑받는지도 모르겠다.



모네는 언제나 꽃이 필요했다.


꽃을 그렸기 때문이다. 모네의 그림과 정원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정원을 가꾸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의 삶을 만나 볼 수 있으니, 인가가 많은 모네의 그림만큼이나 클로드 모네의 수련정원은 북적이는 명소가 되었다. 나도 언젠가 그곳에서 모네의 그림 속을 걸어가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지만, 현실은 내가 사는 지구 반대편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꽃은 어디든 피어나니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모네의 정원 대신 나는 동네 길가에 야생화를 사랑하기로 했다.


글을 쓰기 위해 꽃을 찾는다. 베란다 화분에 키우는 화초나 길가에서 만나는 꽃들 모두가 내 글이 된다. 집 앞 화단에 안 보이던 작은 야생화들이 찾아왔다. 초록 잎 사이로 꽃마리가 피었고, 봄까지 꽃이 만발하던 자리에 종지나물꽃이 고개를 들었다. 앙증맞게 핀 노란 민들레도 찾았다. 새로운 꽃들이 찾아왔으니 새 글을 써야 한다.


모네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언제나 꽃이 필요하다

나를 증명하기 위한 글들은 꽃이 필요했다.
꽃은 보는 내가 글을 쓰기 때문이다.


매일 꽃을 보러 다니니 모자를 써야 하고, 꽃을 찍으니 두 손은 유독 햇볕에 그을려 있다. 하지만 몸에 해로운 일은 아직 없었다. 대신 공허함에 갇혀있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떠올려 관찰한 기억은 글이 되지 못하고 깊은 물속에 잠겨있다. 물 안으로 뛰어들어 숨을 참고 내 손으로 끄집어내야 한다.

모네의 그림을 보며 나는 연못을 어슬렁 거리고 있다. 수련이 핀 연못을 이젠 곁에 두어야 할 듯싶다. 거를 기억해 낸다고 해도 나는 예전에 그 아이가 될 수 없다. 기록으로 남길 것인지 그냥 둘 것인지 선택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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