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이 핀 몬타뇰라에서 헤세를 만나다

세상의 이치

by 무쌍

머릿속엔 나만 아는 벌레가 산다. 조금만 틈이 생기면 꿈틀거리면서 상상 속의 내 걱정과 불안을 먹으러 나온다. 허기가 심한 날은 잘난척하는 질투심도 찾아서 기도 한다. 아무 일 없다가도 또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이 많은 날은 벌레도 식탐이 줄어들지 않는다.


도 덩달아 머릿속의 벌레를 따라 오락가락하다 보니, 멀쩡한 시간만 흘러 보낸 기분이 들었다. 곤한 듯 잠이 쏟아졌다. 상선이 날 재우기도 하지만, 종종 이런 걱정들을 피해 낮잠을 자기도 한다. 내가 먼저 지쳐서 잠이 들어야만 벌레들의 소동도 끝이 나기 때문이다. 잡동사니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 내게는 잠이 보약이다.


지난여름 내겐 더위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다. 큰 파도 같은 상황을 넘겼지만 계속해서 작은 파도들이 연이어 날 찾아왔다. 반가운 일은 하나도 없었고, 계속 나아가는 기분을 갖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망치듯 내 안의 공포에서 멀어지려고 했지만, 나만 달라졌을 뿐 세상은 그대로였다.

"엄마 꽃 피었어!" 라며 아이가 나를 깨웠다.

초록 식물들을 돌보는 일도 재미없고, 수시로 들여다봐야 하는 식물들을 꿈쩍하지 않는 가구처럼 대했다. 일 달라지는 모습에 경의로움을 느끼던 감정들이 시들해졌었다.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아이가 알려줘서야 보게 되었다. 새로 핀 백일홍은 연분홍색이었다.


"어머 몰랐네." 아이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예전 같은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잔잔한 물 위에 피어난 수련처럼 도도한 얼굴로 당당한 모습이었다. 내가 살피지 않아도 완벽하게 핀 백일홍 시시하게 느껴졌다. 씨앗을 심은 주인은 정작 보살펴주지도 않는데, 곱게 핀 꽃을 알아보지 못하는 내 어리석음을 어쩌면 좋까....

백일홍이 피었다(2022.06)

단정하게 핀 꽃송이를 골라 색색으로 정돈된 꽃을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마음이 바뀐 걸까? 꽃 한 송이가 아니라 화려하게 만들어진 꽃바구니처럼 받고 싶었던 것일까? 자기 백일홍 꽃에게 무심해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


백일홍 꽃이 시시해지고 나니 줄곧 일상도 무료해졌다. 답을 찾을 수 없으니 계속 방황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여름에 찍은 백일홍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의 꽃은 싱그럽게 핀 모습었지만 여름이 끝날 무렵 빛바랜 꽃과 줄기는 바짝 말라 바닥으로 드러누워있었다. 점 시들어 가는 백일홍 꽃송이를 보고 나니 오래전 스위스 몬타뇰라에 살던 그가 떠올랐다.

시든 백일홍 꽃(2022.08)

나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꽃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게다가 그 '사람'이 작가라면 내 관심은 확실하게 고정이 된다. 꽃을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는 사는 곳마다 정원을 만들고 지냈다. 그가 평생 자신의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시골의 한적함을 좋아했다는 건 그에 대한 호기심을 더 게 했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의 보금자리를 단단하게 지키려고 노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런 이유로 정신과 의사인 칼 융에게 치료를 받을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을 받다니, 대단한 명성 뒤에 가려진 그의 슬픔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헤세는 정신과 치료와 함께 그림 그리기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생을 다 할 때까지 남긴 글과 그림엔 꽃이 많다.


"올해는 어디쯤에 백일홍을 심어야 할지 궁리해 보기도 했다."
-정원일의 즐거움

그가 해마다 정원에 심은 꽃 목록 중에 백일홍은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헤르만 헤세가 그린 꽃그림 중엔 백일홍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느낌은 벌써 오래전부터 나를 사로잡고 있는 아주 기분 좋고 건강한 감정이지. 어느 정도는 노쇠하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은 이 감정은 특히 시들어 가는 꽃들을 보고 있으면 불붙듯 일어난다네! 꽃병 속에서 서서히 빛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나는 죽음의 춤을 체험하지 무상함에 대해 슬퍼하며 한편으로는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가장 무상한 것이야 말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죽음이야 말고 아름다운 꽃피움이며 너무도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네.

<정원일의 즐거움> 백일홍 - 헤르만 헤세

시들어가는 꽃잎의 신비함을 그의 언어로 읽게 되다니, 내가 알고 있던 시든 백일홍도 그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도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우쭐함이 느껴졌다. 같은 이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자연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을 쓴 그의 작품처럼 나도 쓰고 싶다는 상상이 만든 오만함이었다. 와 닮은 조각을 하나 찾았다는 걸로 모두 다 는 것처럼 기세 등등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지우고 싶었다.


그리고 수년 전 화분에 백일홍 첫 꽃이 피었을 때 돌아가 보고 싶었다. 내가 왜 꽃을 키우기 시작했는지 기억해 내려고 해 보았다. 씨앗이 뿌리를 내려 땅 위로 싹이 돋고 꽃이 되어 시들었다. 꽃이 시들며 남겨준 씨앗처럼 내 글이 새로 쓰이긴 했다. 매년 백일홍을 심는 일처럼 나의 글쓰기도 반복되었다. 작은 꽃이 많이 피기도 했고, 적게 피었지만 꽃송이가 커다랗게 피기도 했다. 한 가지 색만 피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색이 피기도 했다. 글쓰기는 진솔한 나를 만나기도 했지만, 허영심에 가득한 나도 마주치게 했다.

꽃 한 송이를 간절히 기다리던 마음이 이제 시시해져 버린 건가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왜 백일홍을 심기 시작했는지 까맣게 잊어버렸구나.'


몬타뇰라의 헤세의 정원처럼 내 화분에도 백일홍이 피고 있었다. 그런데 잊어버렸던 것 같다. 매번 첫 문장을 쓰듯 씨앗을 심고, 마지막 문장을 완성하듯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첫 문장을 쓰는 게 망설여지던 내가 이제는 가만히 폼만 잡고 싶었나 보다. 어느새 창 너머 겨울 눈은 하얗게 쌓였다.


겨울과 봄 사이 따사로운 태양이 말을 걸어오면, 빈 화분에 백일홍 씨앗을 심을 것이다. 그와 똑같은 정원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내 작은 화분에 정성을 다해볼 참이다. 배움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었나 보다.

몬타뇰라의 정원에서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백일홍과 보낸 그에게 물어볼게 많아졌다. 음 배운 듯 꽃씨를 심어야겠다. 그리고 꽃이 피면 시들어 가는 백일홍의 색채에 열광하던 헤세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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