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 몽고메리를 만나다

격려받고 싶은 마음

by 무쌍

매일 무엇을 써야 할지 궁리한다.

그런데 공상과 영감을 오가는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늘 딴생각을 했다.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쓴 글은 건조되지 않은 수건처럼 축축하고 꿉꿉한 냄새가 났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것들을 글로 기록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질 것만 같았다.


글쓰기는 순간순간 방해하는 것들과 실랑이를 하며 나에게 집중하는 일이다. 똑같은 시간 똑같은 행동들이 손을 쓰지 못하게 붙잡는 기분이 들었다. 가장 화려한 꽃 밭이 아니라 고독이 흐르는 텅 빈 겨울부터 기록하기 시작했다. 무 많은 건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보다 못했다. 없는 것들을 찾아서 그리워하는 편이 좋은 듯했다.


가을이 깊어지는 길가엔 알록달록 잎이 색종이처럼 뿌려져 있었다. 계절이 주는 색다름은 익숙하긴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얼굴이다. 시작된 계절이 반갑기도 했지만 가장 예쁜 조각을 찾아서 낙엽 사진을 찍고 싶었다.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남들은 못 보는 걸 갖고 싶은 욕심일 것이나, 나에겐 이런 풍경이 무엇보다도 반짝반짝 거리며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 생기가 있는 것들이 좋아지게 된 건 내 몸이 가장 바닥을 칠 때부터였다. 어느 해 10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건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었지만, 염증은 평생을 약을 먹고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한 없이 원망스러웠다. 밖으로 가고 싶은데 자꾸만 기운 없는 몸은 잠을 자려고 했다.

하루 만에 시드는 꽃처럼 쓰러져 자기도 했지만, 점점 백일홍처럼 며칠이 지나도 끄떡없어졌다. 몇 년 동안 고생을 한 후에야 나는 일상생활을 찾았다.


사회에서 멀어져 버렸지만, 자연 속에 더 깊게 들어가게 되었다. 시골에 살지는 않지만 도시에서도 나무가 많고 숲과 하천이 흐르는 곳에서 지낸다.


대자연이 돌보는 품에 나의 병을 맡기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선 아이들과 남편의 사랑을 약처럼 먹었다.


죽을병도 아니고, 당장 쓰러지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내일을 알 수 없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 내일을 더 긍정하는 앤셜리를 만든 그녀를 닮고 싶었다.


나는 대자연을 항상 마음속 깊이 사랑했다.
숲에 울창하게 자란 귀여운 풀고사리, 전나무 아래 핀 초롱꽃의 얇은 이파리, 키 큰 상앗빛 자작나무에 쏟아지는 달빛 둑 위에 서 있는 늙은 낙엽송 위에서 빛나는 초저녁 별, 알곡이 풍성한 밀밭의 일렁이는 물결...
이 모든 것은 '눈물을 흘릴 정도의 사색'과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내 안에 싹트게 해 주었다.
- 내 안의 빨강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서전)

빨강머리 앤의 루시 모드 몽고메리만큼 자연을 사랑한 작가가 있을까? 그녀의 자서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작품에서도 자연의 풍광은 빠지지 않고 묘사가 되는데, 자서전에도 자연 안에서 싹튼 창작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꽃과 나무에 대해 쓴 문장들은 푹 젖어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한 잡지에 '험한 길'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연재한 것을 묶어낸 책이었다. 그녀가 자서전으로 쓴 것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 작가로의 인생을 소개해준 샘이 이었다. 소설이 아닌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수필 형식의 글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다.

책 서문에는 이렇게 그녀의 험한 길에 대한 소외가 담겨 있었다.

결국 용기를 내서, 대단치는 않지만 나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내가 한때 성공을 좇아 걸어왔던 고된 길을 말이다. 비록 특별하진 않은지라도, 그 길을 따라 힘겹게 걷고 있을 다른 고행자들에게 조금이나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서,..'
- 내 안의 빨강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소설 속에 작지만 용기 있는 빨강머리 앤은 시인이고, 선생님이고, 작가로 인생을 살았다. 마치 그녀 자신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말이다. 그 당시 나이가 마흔세 살이었던 그녀는 그 후로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책에는 그녀가 작가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이후 그녀의 삶도 궁금해졌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녀의 기록을 찾아보았다. 안타까웠지만 몽고메리에 관한 다른 책에서 말년에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성공한 그녀의 이야기가 출판된 후 별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출판사와 법정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미리 쓸 수 있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무단출판하고 허락 없이 저작권을 판 출판사와의 소송으로 남은 생을 힘들게 보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금도 루시모드 몽고메리와 앤 셜리는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나마 위로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자서전을 읽고 나서 한동안 글 쓰는 것이 망설여졌다. 몽고메리는 글 쓰는 자신이 '험난한' 길을 가는 고행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힘들고 가파른' 길이었다고 강조했다.


겪어내야 할 일을 미리 겁을 낸다고 달라질까? 내게 그런 험난한 길은 오기나 할까. 생각을 멈추는 건 산책이 가장 효과가 좋다. 밖으로 나서야 했다. 앤이 다이앤을 만나러 가듯 나는 꽃밭으로 향했다.




가을 색은 노란색이 가장 먼저 인 듯싶다.

은행나무가 물들어 간다. 고약한 열매 때문에 까치발로 걸어야 하지만 아이들은 은행잎을 구경도 빠드리지 않았다. 해바라기 꽃밭으로 가는 길엔 청단풍도 물들기 시작했다.


파란색 하늘이 보기 좋았지만 노란 해바라기가 고개를 숙여 나를 보고 있으니 내 것인 양 애틋해졌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씨앗을 잘 여물고 끝나길 바라지만 화단의 꽃들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뜻하지 않은 달콤함도 맛보지만 예기치 못한 인생도마다 할 수 없다. 해보지도 않고 온갖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지친 기분이었다.


아이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매번 지켜본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입학하고 점점 아는 것이 많아지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에 자신감을 키우는 아이처럼 해바라기도 늦봄부터 싹을 틔우고 줄기를 세웠다. 그 모습을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분이 들었다.


아무렴 어때. 틀릴 수도 잘 못될 수도 있겠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잖아.


아이들에게 말을 하듯 나에게도 말해주면 되었다.

교문 안에 들어간 아이는 바닥에서 뭘 줍더니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뭘 떨어뜨렸나 싶었지만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교문 앞에서 뭐 떨어뜨렸어?"

"아니"

"그런데 너 걸어가다 뭐 줍던데?"

" 아 맞다. 엄마한테 줄 게 있어."


아이는 가방을 열더니 뭔가를 찾았다. 그리고 내 손위에 올려놓았다. 작고 노란 은행잎이었다. 온 사방이 노란색으로 물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글로 쓰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순간순간을 함께하고 있었다.

마치 은행잎은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뭔가를 써야 한다는 조바심과 마음 졸이며 길을 나섰던 나를 안심시키는 듯했다. 너무 쉽게 쓰려고 했던 것일까? 몽고메리가 말한 험한 길을 알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그녀의 소설은 여전히 우리를 즐겁게 한다. 빨강머리 앤의 솔직한 감정을 읽는 즐거움은 자연이란 있는 그대로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였고 거침없는 자유로움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바깥에서 자란 야생화처럼 험한 길을 피해 갈 수 없지 않을까. 거친 날씨를 견뎌야 하겠지만 꽃이 된다면 찾아오는 손님들이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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