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지 않으려고 명자나무를 만나러 간다

생존자의 고백

by 무쌍

봄의 경쾌함이 새싹이라면, 은은하고 단호하게 떨어지는 단풍잎은 가을의 상징 같다.

나무가 뿌리는 낙엽은 지금 길 위에 가을이 있다고 알려주는 듯했다. 낙엽을 쓸어 담은 자루는 꽉 찼지만, 낙엽을 모으는 손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바닥은 떨어진 잎으로 노랗게 물들었지만, 가지만 앙상항 은행나무는 쓸쓸해 보였다. 래도 다른 나무들이 곁에 있으니 외롭진 않았다.


봄의 절반도 안 되는 태양의 온도는 식물들의 속도도 늦춰버린 듯했다. 뙤약볕에선 하루도 안 가던 꽃들이 꿈쩍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태양도 부족해 보였다.


아침에 핀 나팔꽃은 저녁이 되도록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새로 돋아난 제비꽃 군락지엔 작은 보라색 꽃다발이 일주일 넘도록 멀쩡하다. 철쭉나무에 핀 꽃은 활짝 핀 모습 그대로 조화처럼 똑같은 얼굴을 며칠째 하고 있다.

꽃들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된 걸까?

아니면 뒤늦게 찾아올 곤충들을 걱정하며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차가운 겨울이 오기 전에 반드시 채워야 할 연료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나 역시 허전한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을 앞둔 심정은 비슷한 기분을 불러오는데 끝을 내야 한다는 망설임과 어떻게든 마무리되는 계절을 수긍하면서 벌어지는 나만의 게으름이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늦장을 부리며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화단에 명자나무는 할 일을 다하고 휴가를 보내는 줄 알았다. 열매가 모과처럼 잘 익은 걸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잎이 떨어져 앙상해진 명자나무는 예상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었다.

막 핀 듯 한 은 꽃이 노란 모과처럼 익은 열매와 함께 피어있었다. 꽃잎은 겹겹이 꽃술을 감싼 채 찬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명자나무는 붉게 칠한 손톱과 립스틱 바른 입술로 봄 보다 더 생기 있고 젊은 차림새였다.

나보다도 가진 게 많아 보였던 명자나무를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곁에 있어서 고마웠다. 날마다 나는 꽃이 떠났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명자나무 앞으로 갔다.


명자나무를 만날 때마다, 귓속을 맴돌며 꽃이 속삭이는 걸 글로 적어보고 싶었다. 꽃이 지지 전까지 써보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망설임이 날 가로막았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망설이는 걸 알아챘는지 꽃은 금방 시들지 않았다.

금방 떠나지 않는 꽃을 보며 나도 더 이상 꽃과의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매년 꽃이 없는 계절을 슬퍼하고 두려워했다.

눈이 내려도 피어있을지 모를 꽃을 찾아다니며, 완전히 땅이 얼어버리고 나서야 꽃 찾기를 포기했다.


그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병명을 알지 못했다.

꽃을 좇으며 감정을 피하고 있었다는 걸 얼마 전에 인정하게 되었다. 고통, 분호, 수치심, 외로움, 자책감, 죄책감의 감정을 모두 만나고 나니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같은 상처를 치료하는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지낼 수는 없었다. 과거로부터 오는 낡은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알게 되었다.

생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책을 읽을 땐 기억했지만 막상 우울해지면 잊어버렸다.

심리 전문가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자신의 책 < 나는 감정적인 사람입니다>에서 우울증은 자체 항체 말고는 백신이 없다고 했다. 우울한 감정을 벗어버릴 항체 감정을 만들 수 있어야 했다. 바로 긍정적인 감정이다.

어른들은 어리석게도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으며, 긍정적인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그는 경고했다.


우울한 감정은 감기처럼 전염성이 강하고, 부정적인 사람 하나가 모든 사람을 전염시킨다고 말이다. 나는 오랫동안 부정적인 사람들 틈에서 깊어졌었다. '나만 행복해지면 안 된다는 기분을 너무 오래 믿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언제든 즐거워해도 된다며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을 내밀어 준 친구가 있었다. 바로 꽃이다.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찾았던 꽃은
나에게 백신보다 강한 항체를 준 것일지 모른다.
꽃이 없는 계절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울한 감정 때문에 모든 것이 시들했던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내 병을 잊게 도와준 꽃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어졌다. 꽃에게 받을 것을 돌려주듯,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 오늘도 명자나무 꽃은 떠나지 않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을 갖고 유연하게 계속 나아가고 싶었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 당신은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고, 그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의 생존 가이드가 될 것이다.

치유를 위해서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그녀의 조언은 내게 적지 않은 용기를 주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이야기들은 나의 생존 가이드가 되었다. 꽃들이 그러했고, 책들이 그러했다.


꽃은 감춰진 감각들을 깨워주었고, 글쓰기는 내가 더는 약해지지 않을 거라며 안심시켰다. 그래서 난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망설이고 참았던 이야기는 점점 용기의 지팡이에 익숙해지고 있다.


명자나무가 보여준 가을의 마법에 나는 놀랐고, 생명이 느껴지면서 불끈거리는 감정들을 배웠다. 이 모든 것은 자연에서 온 것이었다. 꽃들이 피어나는 곳마다 감정들은 새롭게 생겨나 내가 생존자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게 했다.

꽃을 좇아 다니면서 배운 것은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꽃은 다시 핀 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망설이지 않으려고 명자나무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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