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위해 나팔꽃을 만난다

새로운 하루

by 무쌍

아침을 여는 꽃이 있다.

곳곳에 나팔꽃 덩굴이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여름부터 가을까지 부지런하게도 꽃은 매일 피어났다. 해가 짧은 여름엔 나팔꽃도 서둘러 피기 때문에 새벽 산책을 나서야 갓 피어난 나팔꽃을 볼 수 있다. 곱게 핀 꽃을 보려면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더 정확하게 새벽형이라고 해야 맞겠다.


전날 오후에 생긴 꽃봉오리가 밤사이 열리며 새벽 5시면 피어 있으니 새벽첫차처럼 날 기다리는 듯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듯 하룻밤 자고 일어난 나에게 새 출발을 응원하는 꽃이기도 하다.


메꽃과의 나팔 모양의 꽃들은 시간을 못 맞추면 곱게 펼친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나마 나팔꽃과 비슷하게 생긴 분홍 메꽃은 오후에도 피어있지만 대부분 오전에 꽃은 오므라들며 시들어간다.


아이들 등굣길에 활짝 피었던 나팔꽃은 학교 앞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엔 벌써 시들해졌다. 오전에 장을 본 날은 이미 일과가 끝난 듯 돌돌 감겨버린 꽃잎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다. 덩굴장미처럼 활짝 핀 꽃장식을 보는 건 아주 잠깐이다. 금방 시들어 버리니 새침에 보이지만 매일 새로운 꽃을 피우는 근면함은 대단해 닮고 싶었다.


꽃이 지면 방울처럼 생긴 꼬투리가 생기는데, 동글동글 잘 여문 씨앗은 가을이 가까울수록 더 많아졌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나팔꽃 씨앗 수집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어떤 분은 정도가 심해 잘 익고 바싹 마른 꼬투리를 보면 손이 저절로 간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나 역시도 예쁜 색 나팔꽃을 보면 가을이 끝나기 전 남은 꼬투리가 있는지 기웃거리게 되었다.

나팔꽃이 이는 곳은 그다지 깨끗한 공간은 아니다. 길가에 공터처럼 버려진 곳, 쓰레기 투기가 빈번한 빈 땅, 손보는 사람 없이 아무렇게 자라는 나무를 타고 자란다. 전깃줄을 사이에 두고 커튼처럼 늘어진 모습과 본 적도 있다. 덩굴 식물은 손에 닿지 않은 높은 곳까지 곡예를 부리니 구경하는 것 만으로 아슬아슬하기도 했다.


한꺼번에 꽃이 많이 피면 그 모습이 매력적이라 감탄하지만, 다년생 덩굴장미나 클레마티스처럼 우아한 덩굴식물 취급은 받지 못하는 듯싶다. 내키는 대로 덩굴을 올리는 나팔꽃은 잡초처럼 뽑히는 일이 허다했다.

그래서 더욱더 나팔꽃은 사람 손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깊숙이 숨으며 살아남는지도 모르겠다. 휴가도 없는 도시의 여름이 피곤해 보였지만, 나팔꽃은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 매일 새로운 꽃장식을 선보였다.


아침 해가 비추면 밖으로 나갈 궁리를 했다. 그곳엔 슬픔도 사랑도 무관심하게 만들어 버리는 꽃이 있다. 무수히 많은 점들로만 촘촘하게 그려진 그림처럼 초점을 잃은 채 한없이 바라보게 했다. 꽃이 풍기는 세밀한 풍경이 내 취향에 딱 맞았는지 이리저리 떠오르는 감정들도 낄 자리가 없다. 넋을 보고 있는 내가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어지럽게 할 때마다 꺼내 보려고 꽃 사진을 찍었다. 처음엔 나 혼자였지만 곧 사람들이 많아졌다. 인생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누구나 지나는 길 위에 꽃밭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보통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야생화는 약속한 듯 다시 만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 삶에 잠시 나타나 나를 일깨우며 삶의 목적지가 어딘지 알려주려고 말이다. 혼자만 알고 싶은 야생화 꽃밭을 매일 찾아간다. 그곳엔 나만 아는 감정들이 꽃처럼 피어난 나만 아는 곳이다.




아무 일 없다가 갑자기 과거가 나를 괴롭혔다.

여자아이에게 소리를 지는 엄마를 길 위에서 만났는데, 그 눈초리가 무섭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제인 에어를 무척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 외숙모와 지내는 장면은 읽지 않았다. 너무 슬픈 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 간단한 줄거리만 보아도 온갖 상상력이 눈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님과 가족들 일엔 한없이 맹목적으로 나섰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여자아이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자다 말고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심부름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대신 부모님의 일을 거들었다. 내가 필요한 것들, 요구할 것들을 무시해야 부모님이 싸우지 않고 저녁에 잠들 수 있었다.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내 감정을 뒤로 한채 지내온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처럼 맞춰주고 공감해 주었지만, 가족들은 계속해서 요구했다. 오랫동안 그 욕구를 채우느라 나 자신이 망가지는 것을 몰랐다. 더 이상 못하겠다는 기분이 들면서 흔들렸다. 나 혼자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불편해했다. 뭔가 필요한 것이 있어도 그 감정 자체를 무시하면서 지냈다. 이미 어른이 되었지만, 내 머릿속엔 여전히 목소리가 떠다닌다. 잊고 있다가도 누군가의 한마디에 강한 돌풍이 부는 소낙비가 쏟아졌다.


날씨처럼 나의 감정은 화창한 날도 있지만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이 몰아쳐 며칠씩 비에 젖어 지냈다. 그런데 꽃 한 송이의 위로는 매일 아침 나를 새롭게 해 주었다. 모든 것은 지난 일이라고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며 다 잊어버리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색색이 나팔꽃을 보느라 새벽형 인간으로 지낸 여름은 이제 멀어졌다. 가을이 다가올수록 나팔꽃의 수명은 길어졌다.

점심때가 되어도 싱싱한 얼굴 그대로 있더니, 은행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부턴 오후까지 똑같은 얼굴이다. 요즘은 해가 진 저녁에도 그대로 핀 나팔꽃을 만난다. 전날 핀 분꽃도 다음날이 되어도 향기가 풍성하고 단풍잎이 떨구어진 자리엔 늦은 민들레도 피었다.


가을은 천천히 정리를 하고 있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단풍잎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가 탐스럽게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 나팔꽃은 서둘러 떠나지 않고 나에게 천천히 숨을 돌리라며 성미 급한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계절에 맞게 시간을 늦추는 꽃을 보면서 몰아치던 감정들도 차근차근 글이 되어 갔다.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을 또 읽었다.

그가 쓴 나팔꽃 이야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침은 이렇게 나팔꽃 수를 세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피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나팔꽃이 피어 있을 뿐인데, 나는 마치 내가 피어나는 것처럼 분발했다.
자기 안이나 바깥을 불문하고 우리에게 선한 것으로 나타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나타나고, 사랑스러운 것, 행복한 것, 고요한 것, 영원한 것, 진실한 것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모두 신이자 신의 숨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천국에만 가둬 둘 필요는 없다. 신은 삼라만상으로서 하늘 구석에도 있지만 이 지상에도 가득 차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존재다.

매일 아침 골짜기 물을 끌어오는 수도에 얼굴을 씻고 그 뒤로 오늘은 몇 송이나 피었나 송이 수를 에며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바라보는 일이 이 여름의 조촐한 나의 기쁨이다. 오늘은 서른아홉 개- 오늘은 마흔다섯 개라고 세어간다.

<여기에 사는 즐거움>
다만 나팔꽃이 피었을 뿐인데 중에서

올여름은 새벽산책을 자주 나가지 못했다. 대신에 야마오 산세이를 따라 했다. 나팔꽃을 화분마다 심어서 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아침마다 나팔꽃 수를 세는 일로 하루를 열었다. 아파트 베란다는 그가 살던 마당집과는 달라서 꽃은 단출했다. 스물한 송이가 핀 날이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이었다. 나의 집에도 신의 숨결로 피어난 나팔꽃이 있다. 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고요하고, 영원히, 진실한 남편과 아이들 말이다.


매일 딴생각으로 한눈을 팔았는데, 오늘 아침 홉 송이의 나팔꽃이 알려주었다. 날마다 오늘이 최고의 날인 것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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