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서 인지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온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나를 보자마자 "엄마 뭐 먹을 거 없어?"를 외친다.
날이 더울 땐 시원한 음료를 만들어주면 식사 때까지 그럭저럭 버텼는데, 잘 마시던 유제품도 손을 대지 않는다. 기온이 뚝 떨어지니 냉장고 안엔 관심이 없고, 식탁 주변을 기웃 거리며 간식을 찾는 아이들 덕분에 고민이 많아졌다.
식사 준비보다 간식 메뉴가 주 고민거리가 되었다.
마트에서 서성이다가, 빵집에서 서성이다가, 떡집을 서성이다가 한계가 왔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서 다시 마트로 들어갔다. 핫도그를 해주려고 빵을 찾으러 갔는데 품절이었다. 관심 없을 땐 늘 있던데 그 빈자리에 햄버거 빵 봉지 하나만 덜렁 남아 있었다.
아이는 햄버거를 치킨버거로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어느 햄버거 가게를 가도 치킨버거를 먹는다.
치킨버거정도는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즉흥적으로 햄버거 빵을 사들고 왔다. 양상추만 준비하면 나머지 재료는 냉장고에 있는 듯싶었다. 치즈, 치킨 너겟, 피클, 양상추, 마요네즈, 머스터드소스, 버터가 없어서 빵에 바르진 못했지만, 맛은 좋았나 보다.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버거 전문가들이 만든 풍부한 소스의 맛은 없었겠지만 얼렁뚱땅 치킨버거의 진심은 통했다.
배가 불렀는지 기분이 좋아진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속상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구구절절 한참을 들었다. 아이가 힘들었을 사정을 듣고 나니 꼭 안아주는 것 말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미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처신을 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한 달 반이면 또 한 학년이 끝이 난다. 곧 겨울 방학이구나 싶었는데, 아이는 그 남은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나까지 우울해 할 수는 없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일어난 아이는 평소보다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학교로 갔다.
지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아이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평소보다 더 여러 번 해주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봐 주면서 손인사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이가 웃는 얼굴에 눈이 뜨거워졌다. 때론 조언보다도 말없이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게 된다.
극성 엄마가 되기 싫었지만, 담임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했다. 선생님은 기다렸다는 듯 상황 설명을 해주셨다.
다 듣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선생님이 진심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이 편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언들은 전해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평소처럼 배가 고프다고 했다. 따뜻한 호빵 두 개를 먹고는 책상에서 조용히 공부를 한다.
묻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꾹 참았다. 하고 싶은 말은 있었지만 오늘은 필요 없을 듯싶었다.
내일 간식을 뭘 할지 또 고민할 테지만, 그건 오늘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아이의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는 스스로 커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알아서 잘 지내길 바라기만 했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서툰 엄마의 솜씨를 이해하고, 군말 없이 먹어주는 아이의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때론 아이가 나보다 더 어른 스럽다는 기분이들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