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한 가지는 힘이 없는 듯 축 늘어졌다. 학기말 성적표가 얼마나 무거운지 어깨 힘이 다 빠진 아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풀이 죽은 아이를 안아주었지만 마음이 풀리지 않아서, 약처럼 달콤한 간식을 내밀었다.
하지만 점수가 심각할 때는 간식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린 다음을 기약했다. 식물을 돌 보는 일처럼 아이의 마음도 회복되길 기다려야 한다.
스파티 필룸은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 축하한다며 선물로 받았다. 검색해 보니 천남성과에 '스파티필룸'이라고 공기정화에 탁월하고 직사광선이 거의 들지 않는 실내에서 키우기 좋은 화초였다. 다만 독성이 있으니 화초를 자르거나 만질 때는 조심해야 하는 화초였다. 서너 송이의 하얀 꽃이 피어있었는데, 꽃이 지고 나니 수년 동안 꽃이 없는 화초처럼 지냈다. 영영 꽃이 피지 않나 보다 싶었는데, 아이가 유치원 입학할 때쯤 한송이가 피었다. 그 후로 매년 봄 여름에 꽃이 많이 피었다.
스파티필룸은 엄살 부리는 아이처럼 목이 마르면 '나 좀 봐줘' 라며 손짓했다. 그리고 물 한 모금에 금방 기운이 올라서는 씩씩해진 잎을 보여주었다. 가끔은 화분이 푹 적실 정도로 물샤워를 해주기도 하지만 이 아이는 목이 마를 때 물 한잔 마시듯 조금씩 주는 걸 더 좋아한다.
쓸데없이 물을 자주 주면 과습이 오기 쉬우니, 평소에는 무심한 듯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좋다. 그냥 물을 달라고 할 때 한잔씩 주면 딱 좋은 식물이다. 스파티필룸을 가만히 있다가도 나 좀 봐달라고 엄살을 부리는 듯보이지만, 아이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키를 훌쩍 너머 곧 아빠와 비슷해졌으니 엄마의 말은 다 잔소리가 되었다. 평소엔 입을 꾹 다물고 아이가 '나 좀 봐줘'라고 할 때만 잘 챙겨주면 잘 지낼 수 있다. 쉽지 않아서 문제지만 말이다.
엄살 부리는 아이를 꼭 닮은 스파티필룸은 아이보다 나이가 많다. 포기나누기를 한 모종들이 4개였는데, 작년 과습으로 하나를 떠나보내고 2개가 남았다.
바깥공기가 좋지 않으니 환기시키는 대신에 화초들을 샤워를 시켰다. 스파티필룸을 물샤워를 시키는데 작은 싹 하나가 올라온 것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빈 둥 거리나 싶었는데, 어느새 도전을 시작했던 것이다. 새로운 줄기가 나오는 걸 보니 봄에 오면 몸집이 커질 모양이다. 또 어느 정도 자라면 포기나누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를 꼭 닮은 아이는 어려서부터 피부색이 하얀 편이었다. 어딜 가나 할머니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내 얼굴을 보고는 아빠를 닮았냐는 소리를 하셨다. 나를 닮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수염이 거뭇 거리기 시작하자 하얀 피부는 더 수염을 돋보이게 했다. 친구들이 놀린다면서 깎겠다고 하더니 면도기를 사달라고 하더니 이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시험기간이 되면 공부해야 한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공부는 먼 나라 이야기다. 또 성적표가 나오면 심각해져서 잔뜩 기운 없는 척한다. 그러다가 곧 세상 태평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혼자 엄살 부리다가, 또 아무 일 없는 듯 지낸다. 나는 아이의 그런 모습이 꼭 스파티필룸이랑 똑 같이 느껴져서 인지 "이 정도면 충분한가?" 궁금해진다. 스파티필룸이 축 쳐졌다가 살아난 듯 고개를 들 정도 말이다.
식물은 목마를 때마다 내가 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싶다가도, 내가 식물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산다 싶어 진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 키운다 싶다가도 아이가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오히려 엄마가 내가 무얼 하는지 보여주어야 했다. 엄마가 뭘 하는지 아이가 지켜보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은 아이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본 적은 없다. 궁금하지만 물어보기도 두렵다. ^^:
내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믿다가도, 아이가 원하는 욕구를 충족해 주는 것 말고는 보호자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다.
아이에게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하면서 뒤로 빠지는 연습을 한다. 더 많은 것을 해주겠다고 들쑤시고, 과한 관심을 주듯 계속 물을 준다면 식물은 더 빨리 내 곁을 떠날 것이다.
식물을 키우면서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된 듯 과거로 간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식물을 키우는 것도 건강한 관계가 어떤 것인지 더 조심스럽다. 성격이 다른 아이들처럼 식물들도 생김새도 원하는 것이 다르다.
관계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엄살을 떠는 걸 잘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 적당히 받아 주어야 축 늘어졌던 자존감이 되살아 난다. 성적표를 받아서 시무룩하던 아이는 엄마의 위로가 언제 필요했냐 싶어 져서는 오늘 아침 어깨를 으쓱거리며 아이는 학교로 갔다. 복도를 신나게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