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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Feb 22. 2024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너에게

수레국화

 노트북을 켜면 언제나 녹색 풀잎 숲 사이로 작고 귀여운 청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다. 바탕화면저장된 수레국화 사진은 유럽 어느 마을 목초지처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였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산책길에 만난 시골 풍경일지도 몰랐다. 여러 가지 핑계를 만들 산책을 나섰던 제인 오스틴처럼 끝이 좋은 소설이 술술 써질 것 같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모네가 그린 꽃밭 언덕처럼 붉고 파랗고 노란 점들로 수놓아진 명화를 따라 그려보면 어떨까 싶었다. 사진을 보면서 겨진 감정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시험 기간만 되면 소설책이 읽고 싶었다. 언젠가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 작은 책방에서 실컷 책이나 읽고, 어떤 책을 먼저 볼까 고민하며 지내야지 싶었다. 그것도 안된다면 하루종일 책상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고 수다스러운 낙서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엄마가 되고 나서야 중독된 사람처럼 에 빠져 도서관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유모차에서 낮잠을 자는 아이를 데리고 맘껏 책을 펼쳐보며 조용히 있을 최고의 장소였다. 덕분에 혼자 남겨질 틈 애타게 기다리며, 아이들과 딱 붙어 있는 엄마의 시간도 당연할 수밖에 없는 걸 감당하는 법을 배워갔다.

 신기하게도 혼자 있는 시간이 목말랐다는 것을 정말 혼자 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알게 되다니, 나는 집안일을 하더라도 혼자 남겨진 집에서 하는 편이 자유로웠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구나!


 들판에 핀 수레국화처럼 누가 보든 안 보든 나 혼자만의 은신처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말한 것처럼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자연'이라는 걸 알 것도 같았다. 놀랍게도 자연은 매일 찾아가도 나쁜 점이 없었다. 질리기는커녕 내일 다시 찾아갈 자연 어떨지 더 궁금하기만 했.  


 유모차를 밀며 중랑천 산책을 하다 평소 가지 않던 곳까지 멀리 나간 날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건 사파이어 색을 한 푸른빛의 수레국화꽃이었다. 꽃 앞에서 아무도 방해받지 않은 기분에 젖어 야생 숨겨둔 숲에 들어선 듯 혼자만의 감정을 느꼈다. 대단한 발견을 한 기분도 들었지만, 왜 그동안 찾아와 보지 못했는지 안타까웠다.

선명하고 총명해 보이는 꽃은 내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는지 주변엔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곁에 있는 건 유모차에 잠든 아이와 나였다. 마나 있었을까. 한 없이 의기소침했던 나를 감싸고도는 자연의 빛깔은 환하게 내리쬐는 태양의 온도에 포근해졌다.  


그래서일까?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꽃밭을 찾아가면  가 듯 충만한 감정이 솟아났다. 바라는 것을 모두 가지는 것, 하지만 꺼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다보니 알아채지 못던 것이었다.  남과 비교하면 울적해졌다.


 내가 가진 것과 그들이 가진 것을 비교하면서 초라해졌다. 매일같이 나를 찾아오는 초라한 감정은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처럼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러다가 떨쳐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음이 복잡해지면 밖으로 나가, 꽃밭 은신처로 향했다. 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깊은 잠에서 깬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랑해진 아이처럼 도 달라져있었다.


 꽃밭 은신처는 매년 다른 곳에서 피어났지만, 어김없이 내 눈에 띄었다. 어쩌다 수레국화를 보지 못한 날은 하루 일과가 더 고단하게 느껴져서 사진이라도 들여다보아야 했다. 은밀한 감정들이 울컥거리며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단어와 문장이 되어 주었다. 푸른 하늘, 구름 조각, 아무렇게나 핀 야생화들,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넘겨주면 내 안에서 뭔가가 흘러나와 꽃으로 피었다.  




 

 내가 써놓은 글을 다시 읽으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고, 소리를 내서 말하지 않아도 되기에 글쓰기를 만만하게 보았다. 거짓을 쓰지 않으면 될 것이고, 공개여부는 내 의지로 조정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말하지 못하고 속병이 난 것인지. 글쓰기가 도와준 덕분에 속마음이 들키는 일이 익숙해졌다. 감추고 있던 것들이 발에 걸려 넘어지듯 드러나니 나 자신도 당황스럽고 아찔했다. 루는 쓰고 싶었다가 다음날엔 소심해졌다.


 누가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술술 자백하고 있었다.

'뭐야 내가 이런 사람이란 말인가?'

겁이 났지만, 글로 써버린다고 인생이 너지지 않았고,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드러낼수록 나는 자신에게 더 깊은 애정이 생겼다.


 중랑천에 수레국화가 필 무렵 나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곳에 가려고 애썼다. 홀로 찾아가지 않으면 그 꽃은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홀로 글을 써야 하듯 고독을 불러오지 않으면 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바로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꽃밭에 깊이 숨어 들어가 진실된 삶이 무엇인지 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날처럼 지내면서 스스로 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숨고 싶은 걸까?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홀로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신세 지지 않고 나만 할 수 있는 삶을 으려고 했다. 답이 뭔지 몰라 야생의 들판에서 꼬박 3년 나는 똑같은 꽃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가꾸지도 않는데, 내게 와준 봄에 태어난 아이처럼 수레국화는 매년 봄 비슷한 풍경이었다. 렇게 답을 찾아갈 무렵, 꽃밭은 아스팔트가 깔리고 공원이 들어서면서 모조리 사라졌다.


 봄은 언제나 찾아왔다. 다른 장소에서 수레국화를 보니 반가웠지만, 습관적으로 수레국화 뒤로 숨고 싶었다. 은신처가 필요했던 나를 떠올다. 중랑천 빈 공터에 보석처럼 빛나던 수레국화꽃 사진을 찾고 싶었다. 아니 다시 눈에 담고 싶었다.   


 매일 나아질 거라고 긍정했지만 계절만 바뀐 듯 시간이 흘러갔다. 기대를 걸었던 시간도 멀어지고 꽃잎처럼 빛을 잃었고, 흥분했던 열정도 어느덧 다른 기대로 옮겨다. 시도를 할수록 실패도 그만큼 겪었다.


 레국화  찾기 어려워졌다. 

일부러 심어 놓는 꽃밭에도 수레국화가 몇 년 동안 인기가 없나 보다. 중랑천 수변공원에도 수레국화 꽃밭은 수년째 볼  수 없다. 대신 야생의 공간에서 더부살이하는 수레국화들이 있을 뿐이다. 락지가 아닌  가느다란 줄기를 올려 겨우 서너 송이가 핀 수레국화를 만났을 땐, 나의 열정이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꽃을 보'꽃으로 작은 보상을 받았구나' 마웠.




 꽃에게 너는  피었던 에 피지 않고 번 다른 타나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미워할 수 없다. 나란 사람도 늘 한결같은 엄마가 되지 못했다. 수레국화처럼 나도 매년 다르지만 같은 엄마 노릇을 한다. 엄마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때론 도전을 하면서 그 결실이 한 송이도 피지 않을 때도 있지만 섭섭해하지 않으려고 . 그렇게  말도 못 하게 좋아하던 꽃밭 은신처를 찾아가지 못해도 삶은 살아졌다.


 수레국화꽃밭이 바탕화면이었던 노트북은 고장이 나서 고철로 처분했다. 내가 찍었던  꽃사진도 같이 사라져 버린 걸까. 예전의 꽃밭을 영영 만날 수 없는 것처럼 사진 파일도 자취를 감췄다. 인화라도 해둘걸... 지만 꽃밭 사진을 찍을 기회는 또 다.


 수레국화가  피었던 장소를 떠올리며 야생화 지도에 표시를 해두었다.  세수한 듯 막 얼굴을 내민 청초한 꽃 만날 것이다. 신처는 따로 있지 않았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게 된 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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