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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Feb 29. 2024

꽃을 좋아하는 너에게

꽃양귀비

  나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꽃을 좋아한다.

특히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법한 화단 밖의 꽃을 주로 찍는다. 도시의 특성상 화단이 아닌 자리에 핀 꽃은 위태롭다. 뿌리를 부지하고 있는 자리가 안쓰러워하는 말이지만, 사실 뒤집어 생각하면 참 척박한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극단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다.


 담벼락 한가운데 벽돌사이로 L 모양을 한 줄기 끝에 달린 꽃송이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작은 양귀비 꽃이었다. 매달려 있는 모양은 아슬아슬했지만, 내 어깨만큼 높은 자리에서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두 번은 만나지 못했다. 길에서 잃어버린 목걸이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도시는 냉정하다. 이별의 섭섭한 마음을 달래는 건 다른 꽃들이었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옮겨가듯 오래 붙들고 싶어도 떠난 건 잊어야 다.   


   담벼락을 지날 때마다 매달려 있던 꽃양귀생각났다. 렇지만 만날 수 없었다. 큰 건물 공사가 시작되었고, 담이 허물어지자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도시의 야생화는 발견의 기쁨은 주지만 결코 내 것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꽃을 찍는 것에 집착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태양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면 만 아는 야생화 꽃밭을 찾아갔다. 야생초 덤불사이로 무리 지어 핀 붉은 양귀비가 흔드는 몸짓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지도가 되어 준 건 찍어둔 사진었다. 지난해 찍은 진의 날짜와 장소를 따라가면 곧 나타날 듯 설렜다. 산책을 나선 지 한참이지만 장소가 확실하지 않았다. 야생초들이 만든 숲은 작년 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야 했다.




장소와 꽃이름을 기록해 두지 않아도
찍어둔 사진이 지도가 되었다.



 머릿속엔 야무지게 여물었던 양귀비가 남겨둔 씨앗 주머니를 떠올리면서, 그 정도의 씨앗이라면 꽃의 미래도 예상할 수 있었다. 꽃 스스로의 손길로 씨앗을 뿌린 자리를 어떻게든 찾아야 했다. 근처에 도착한 것 같았지만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이었다. 꽃 없었지만 생명이 움트는 자리에 서니 풀냄새와 꽃향기가 기분 좋았다. 때마침 적당히 부는 바람에 마른 흙냄새도 맡아졌다. 길게 뻗은 초록 풀숲 사이로 붉은 꽃과 야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꽃밭을 발견했나 싶어 한걸음에 그 앞으로 갔지만 착각이었다. 풀숲 틈에 꽃양귀비 몇 송이가 꽃잎을 펼쳐 나비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결국 내가 기억하는 꽃밭은 찾지 못했다. 이미 예상지점을 한참 지났기 때문에 되돌아가야 했다. 꽃양귀비 씨앗보다 먼저 야생초들이 선수를 친 걸까? 어쩌면 꽃밭을 찾았지만, 꽃들은 흙아래 과거인 채로 숨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꽃들은 알려준다. 지금 보는 꽃은 다시 피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다른 꽃이 웃는다. 자줏빛, 아니 보랏빛 꽃잎의 층층이 달린 '황금'의 꽃을 여기서 보다니, 이르게 핀 황금은 약초라 귀한 몸인데 한 포기가 탐스럽게도 꽃다발이었다. 양귀비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날 나는 지도에 새로운 꽃을 추가했다.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에 맞춰서 같은 꽃밭을 가는 길은 고향 마을에 가보는 기분이 들게 다. 내 유전자 속에 새겨진 야생에 살던 흔적에서 비롯된 믿음이다.


 나는 숲처럼 거대한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온 사방이 귤 밭만 보이는 중산간 마을을 내려온 건 학교에 다녀할 나이가 되어서였다. 여름과 겨울방학엔 온 가족이 짐을 싸들고 과수원 집에 머물렀다.  마을을 내려가려면 걸어서 30분 남짓 걸리는 외딴집이었다.


차도 다니지 않는 비포장 도로엔 할미꽃과 양지꽃이 무덤처럼 필 정도로 한적했다. 어디든 야생화들이 자랐는데, 새로 핀 꽃잎을 모아서 돌 위에 차곡차곡 늘어놓으며 몽상을 즐겼다. 내리쬐는 태양은 꽃잎을 뚫고 무지갯빛을 만들기도 했는데, 으깨진 꽃물을 손바닥에 물감처럼 발랐다. 손바닥이 알록달록 예쁜 색이 완성되면  씻지 않고 그대로 마를 때까지 두었다. 팔레트를 만들어 뭔가 그리고 싶었던 건지, 손바닥이 화폭이 된 건지 나의 동심은 날마다 반복하며 즐거웠다.


  나는 아직도 그 다채로운 색을 기억한다. 햇빛을 받으면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분명한 색이었다. 노랗고, 꽃분홍이고, 파랗고, 붉고, 하얗고, 연둣빛인 식물이 만들어낸 꽃잎은 한 가지 색이었지만 물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새로운 야생화를 발견하면 비슷하지만 또 다른 빛을 알게 되었다. 시력검사처럼 세상에서 내가 볼 수 있는 빛깔이 몇 개나 되는지 테스트를 받는 기분이었다.


 꽃잎이 얇은 양지꽃의 노랑과 긴 터널처럼 구부러진 인동덩굴의 노랑은 달랐다. 귤꽃의 하얀색과 별꽃의 하얀색도 그러했다. 이름은 몰랐지만 나는 색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황홀한 시간은 너무 짧았다.


 풀들이 어린 내 다리 길이만큼 자라면 과수원에 풀을 죽이는 비가 내렸다. 며칠에 걸쳐 독한 냄새를 풍기며 상추 밭을 빼고는 초제가 뿌려졌는데, 반짝이는 것들을 영영 볼 수 없으면 어쩌지, 이 꽃은 다시 피지 않을 텐데 걱정되었다. 제초제를 뿌린 과수원엔 '아이들 출입금지'가 내려졌다. 한동안 집안에 갇힌 생활을 했는데, 한바탕 큰비가 오면 집밖으로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당겨지기도 했다.


야생화들이 모두 죽은 것 같았지만 봄이면 비슷한 꽃들이 피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게 참 신기했다. 계절이 바뀌면  꽃밭은 또 와주겠지 하면서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몸집이 커지는 나무 아래는  풀들은 돋아나지 않았다. 나무가 만든 그늘은 시원했지만 꽃을 보려면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나도 자연이 경이로움과 멀어져 갔다.



 

꽃 사진을 많이도 찍었다.


섬이 싫어 떠났지만 자연에서 너무 멀어져 버린 걸까. 병원을 끊지 못하고 다니는 내 체력은 길가에 만나 작은 꽃송이가 대견하고 부러웠다. 누가 봐도 막 피어난 싱그러운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기운이 솟았다.


 옴짝달싹 못하던 시절에는 담벼락 아래 떨어진 능소화 꽃송이도 부러웠다. 마치 집을 나온 후 잠시 맛보는 자유룰 꽃도 느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유롭고 싶었지만 도시에서 나는 또 섬에서처럼 비슷한 갑갑함을 느꼈다.


꽃을 쫓은 것 꽃이 예뻐서였는데, 이제는 보이는 풀포기도 다 예쁘다. 사람들은 나이 들어 그런 거라지만 난 향이 생긴 거라고 하고 싶다. 자연을 예찬하는 마음은 꽃을 보러 다니게도 했지만, 꽃을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다. 낯선 나라 알지 못하는 장소에 처음 보는 꽃 같았다. 젊음은 멀어지고 있다 싶었지만, 매년 다시 피는 꽃이 아름답다는 걸 제대로 배운다. 그리고 묻지 않아도 내가 더 잘 아는 것이 생겼다.


바로 나의 안부다.

집안일을 한 후, 커피 한잔을 들고 낮에 찍어둔 꽃 사진을 보는 순간 마법처럼 순간 이동을 한다. 못다 한 이야기라도 나누는 듯 나와 꽃이 좋다는 나는 연애 중이다. 나는 그녀의 취향에 빠진 채 올해도 잘 넘겼다. 겨울 동안 우린 자주 만났다. 찍어둔 꽃 사진은 충분했다. 다음엔 어떤 꽃을 찾으러 갈까. 이 로맨스는 기특하게도  날마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것만 남기는 기분을 알게 해 주었다.



 여전히 나는  좋아한다.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핀 꽃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때론 분주하게 움직이며 쉬지 않는 마음을 꽃이 멈추게도 했다.


꽃은 '지금'을 일깨워 준다.


사진은 그 시간을 잠시 잡아두는 것이다. 딱 그 순간만이 저장된다. 꽃이나 나무가 보여주는 건, 스스로 치장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사진으로 담은 꽃을 다시 찍을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풍경을 기대하며 그 자리를 찾아가지만 꽃은 사진으로만 남다. 때로는 전날 보다 꽃송이가 탐스럽게 피어 가슴을 뛰게 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가끔은 사진 찍는 일도 버거워 멍하니 꽃을 보기도 한다. 사실을 꽃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만큼 지쳐 버릴 때가 있다. 그럼 꽃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 우리가 사는 동안 자신의 수고와 견뎌온 힘으로 저마다 꽃이 된단다."


  봄이 왔다. 꽃을 좋아하다 보니 내 주변은 늘 꽃밭이다. 꽃은 색의 우열도, 꽃의 종류도, 피는 순서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 안에서 나의 취향은 좋은 것과 싫은 것이 더 모호해져 간다. 특별히 좋아하는 꽃이 없어졌고, 아주 깊은 슬픔도 멀어져 간다.


 도시에 숨어 지내다 보니 자꾸만 잊게 된다. 알록달록 계절을 바꿔 입는 자연의 충만한 의미, 그래서 더 매진해야 할 것 같다. 꽃을 좋아하는 일 말이다. 꽃양귀비가 보고 싶으면 어쩌지 싶다가도. 방법이 없진 않았다. 찍어둔 사진처럼 나도 꽃 사진 속에서 재회를 한다.


 꽃양귀비의 붉은 솔직함이 오직 흐드러지게 핀 것을 보려고 했는데 이상했다. 잠깐이지만  내 안에 보이는 것도 밖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것이 쓰는 욕구가 되어 글을 쓰는 일에 순종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무척 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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