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SSMUSS Jul 11. 2017

프롤로그 3] 왜 우리는 아이들과 여행을 잘 못가는가?

1살된 딸과 4개 대륙 20개국을 여행한 이상한 부부 이야기

왜 아이와 여행하고, 
왜 하필이면 아이와 여행한 이야기를 연재하는지에 관한 마지막 글 (3편) 



3. 아이를 위해


수 십 개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물론 기억에 남고, 시간만 있으면 또다시 가고 싶은 곳들이 있다. 나 역시 여행을 다녀온 여러 국가 중에서 광활한 자연과 다양한 Activity를 즐길 수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여름밤이면 수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한 몽고 같은 곳은 꼭 한번 다시 가고픈 나라이다. 그리고, 시간이 없어서 충분히 보지 못한 지중해의 몰타나 너무 넓어서 다 돌아보기를 일찌감치 포기한 브라질과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무언가를 남겨 두어야 다시 오게 된다”라는 나만의 주문으로 나 자신을 세뇌시킨 후 돌아왔던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이런 아쉬움마저 쉽게 잊을 수 있고, 심지어 어떤 나라는 가본 장소 하나가 기억나지 않는 곳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도 큰 차이가 있으니... 특히, 내 와이프는 나라 이름만 기억을 하고, 도시 이름은 도무지 기억하려 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을 보며, 그곳에서의 옛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우리는 저런데 언제 한번 가보나?”라고 하여, 나를 그야말로 “그 입 다물라...” 하게 하곤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나의 첫 째 딸은 엄마보다는 좀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연히 TV를 보다가 런던이 나왔다. 런던아이와 빅벤같은 거리 풍경이 나와서, "다후야, 너 저기 기억나?"라고 묻자, 3살 다후는 당당히 "저기 런던 이잖아... 우리 저기서 살았잖아, 그거 몰라 아빠?"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기억력 천재... 너무나 기뻤다, 우리의 추억을 기억한다는 것에... 런던에 산 보람이랄까?... 와이프도 그 모습에 다후를 엄청 이뻐해 주며 칭찬했고, 그 날 다후에게 런던에서 우리 가족이 한 일들을 하나하나 다시금 말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때 다후는 엄마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마치, 내 상사가 겁나 짜증 나는 말을 할 때, 내가 한 귀로 듣고 흘리는 듯한... 뭐 그런 모습이었다. 이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며칠 후, 다시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TV 나왔다. 네팔이었던 것 같다.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안 나오는, 하얀 히말라야를 품은 네팔...

다후는 묻는다. "아빠, 또 TV에서 런던 나오는데... 왜 아빠는 매일 런던만 봐?"

음... 기억력 천재, 추억은 개뿔...

다후의 뇌에는 한국과 런던 외에는 그 어떤 곳도 없다.

즉, 부모의 강압을 못 이겨 무려 20 여 개국을 다녔으나... 자신의 출생 후 2년을 절대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TV에서 가 본 나라가 나올 때, 내가 다후도 저기 가봤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녀는 절대 나는 저기에 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냥 순간만 즐길 뿐이다.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 것도,
어쩌면 우리 부모들 만의 생각이자 욕심일 수 있다.
아이들은 못 느끼는...



이러한 병폐(?)를 조금이라도 없애고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를 위한 포토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포토북을 보여주면,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이는 다후도 나라 이름, 도시 이름은 몰라도 자기가 거기서 뭐 했는지를 나한테 설명해 주곤 한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이것이 무지하게 짜증 나는 작업임을 미리 말해 둔다. 간단히 내 작업 방법을 설명하면... 우선 여행한 나라별, 도시별로 찍은 사진들 중에서 잘 나온 것을 선별한다. 보통, 1,000~1,500장의 사진에서 300~500장의 사진 (이렇게 하면, 대략 60~80페이지 정도의 포토북 한 권을 만들 수 있다)을 추려 낸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중요도에 따라, 한 장을 한 페이지로 할지, 여러 장을 한 페이지에 넣을지 등을 편집하게 된다. 처음에 작업할 때는 포토앨범 사이트에서 주는 Template를 이용하였으나, 그 디자인이 참으로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구려서, 고등학생까지 미술학원을 다닌 나의 엄청난 경력을 이용하여, 내가 직접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내 와이프의 평소에도 없어져야 할 쓸데없는 우려를 불식시킨 체, 훨씬 예쁜 앨범이 탄생한 것은 명약관화한 것. 그때부터는 내가 직접 장인의 정신으로 앨범들을 만들고 있다. 


[ 새로 만들기 시작한 포토북 : 앞뒤 표지와 본지 한 장만 캡처 ]


멕시코 : 테오티우아칸 다녀와서, 만 1세 때 등이 벗겨지는 참사를 겪은 다후...



웨일즈 자동차 여행 : Great Orme 에서의 즐거운 혹은 빡센 등반...


발리의 추억 : 원숭이의 공격으로 잠시 당황했으나, 행복을 다시 찾은 다후...



스웨덴 : 시내에 다니는 기차, 그리고 너무나 파란 하늘에 빠진 다후...



물론, 이런 생각도 가끔은 든다. 내가 바보 인가라는... 왜냐하면, 고등학생 때까지 미술을 약 5년간 공부한 나에 비해, 무려 30년째 미술을 하고 있는 (내 아내는 미대, 심지어 대학원까지 순수미술을 전공한 전업 미술작가, 즉 화가이다...) 와이프는 디자인에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한 개당 열흘 정도가 넘게 걸리는 이 작업을 평생, 단 한 번도 안 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앨범을 만들다가 사진들을 보면, 망각으로 인해 내 머리 속에서 완전히 Delete 된 그때의 기억들이, 혹은 잊지는 않았으나, 평생 생각날 일이 없었을 일들이 다시금 내 머리 속에 들어옴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그냥 컴퓨터에 저장만 해 놓으면, 평생 볼 일이 없다. 이건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혹은 깨달은 사실 일 것이다. 

나와 내 딸은 여행 중에 심각한 알레르기로 인해 한 번씩 쓰러졌는데, 그때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난 속이 메슥거리며, 스페인 음식점에서 날계란이 들어간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먹고, 온몸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이 내리던 우리 딸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반대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 여행 중에 처음으로 걷기 시작한 (아직도 나는 그 장소가 머리 속에 생생하다. 말라가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바로 앞 레스토랑에서 우리 딸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서서 아장아장 걸은 장면이...) 우리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왜 이 생각을 못했는가?  
아이와의 여행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전에, 
사진과 나의 이런 기억을,
망각의 대표주자 다후에게 물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굳이 이리 오래 이야기할 꺼리는 아니지만, 내가 꼭 책을 써야 하는 이유가 이렇게 하나 추가가 되었다. 즉, 많은 부모들에게 자식들과 하나라도 더 좋은 추억을 만들기를 권하고, 그 예를 공유하고자 하는 이유와, 동시에 아주 개인적인 사유지만, 나의 사랑하는 딸에게 엄마, 아빠와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함이다.    


다시 정리하면, 

먼저, 아기와의 추억을 As many as possible 갖고 싶다는 생각은 아마 모든 부모가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한 것처럼, 추억을 만드는 데는 여행이 최고의 방법임을 앎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가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또는 아이와 갔을 때 여행이 얼마나 고될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주변에 너무 많이 있다. 역으로 물어보자. 아이가 크면, 불안감 없이 여행을 갈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리고, 자신들이 힘들지 않은 시기에는 아이들과 쉽게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크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행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는 대신 공부에 대한 더 큰 불안감이 생길 것이며, 그 시기를 조금 지나가면, 아무리 부모들이 여행을 가자고 해도 아이들이 부모랑 같이 가는 여행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부모들에게 있어서, 내 맘대로 아이들과 여행할 수 있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혹은 시간이 없어서, 또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아이의 건강상태가 매우 안 좋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다만, 아이 걱정에 (우리 아이가 정말 먼 곳까지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는 분들) 못 가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글을 보면서 뭔가를 느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쓸 것이며, 


동시에

"내가 쓴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고,
그중 가장 먼저 인쇄된 첫 번째 책에 나의 사인과 편지,
그리고 그동안 만든 사진첩을 모아서 같이 준다면,
그것이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


라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롤로그 2] 왜 우리는 아이들과 여행을 잘 못가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