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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폭우처럼 몰려온 여름

글우산을 펴고 자판 앞에 앉는다

by 겨자풀 식탁


여름이 다 지났다. 아이들의 웃음과 나의 고단함이 한꺼번에 타 들어간 계절이었다.


5월 하순부터 시작한 아이들의 여름방학, 8월 첫 주에 접어들며 개학을 맞이했다. 시시콜콜 다 떠벌릴 수는 없지만,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볕 부럽지 않게 여름 한 철을 불태웠다. '올여름 방학에는 아이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을 누려야지' '너무 바빠서 혹여나 아이들 외롭다 느끼지 않게 해야지'라는 다짐으로 맞이한 5월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늘 예고편 없이 들이닥치는 법. 아니, 예고편에서 던진 떡밥과 정반대 되는 스토리로 휘몰아치며 혼을 쏙 빼놓는 법. '기갈나는 여행의 추억은 쌓아주지 못해도, 집 앞 도서관 나들이의 추억은 만들어 줘야지' '호캉스 하며 수영장에서 물장구치고 먹는 호텔 조식은 없지만, 수다 물장구치며 먹는 집밥 조식은 ‘엄마표 무한리필' 해줘야지'라는 나의 다짐은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매일 삼시 세끼를 해 먹이고, 가끔 도서관 나들이도 하고, 에어컨 바람 쐬러 간 게 절반, 장 보러 간 게 절반인 마트에서 콧바람도 넣고, 어떤 날은 치킨을 사 먹기도 했다. 문득문득 즐거움을 누린 순간들이 없지는 않지만, 올여름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엄마 지금 바쁘니까..." "엄마 지금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였다. 아쉬움 가득한 눈을 하고는 입꼬리는 억지로 웃으며 ‘알았어’ 하고 돌아서던 아이들의 뒷모습이 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오래간만에 브런치 스토리 글 발행 창을 열어 놓고 '작렬하는 바쁨'에 타 들어간 내 일상에 대한 하소연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다. 그저, 아주 오랜만에 자판 앞에 앉아 이곳에 남길 글을 쓰는 지금 마음이 어떤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글로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늘 차고 넘쳐 내 일상이 머무는 곳마다 아무렇게나 얼룩진 자국을 남겼다. 그래서 이렇게 내 마음을 먼저 달래며 넘치는 마음을 한 모금 덜어내는 중이다.


'유해한 배우자와 동거 중'이라는 문구를 작가 프로필 팻말로 달아둔 익명의 브런치 작가.


그 '유해한 배우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렇게 타 들어가다가는 아스팔트 바닥에 말라 붙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몸뚱이가 될 것 같은 일상에서, 그의 존재는 여전히 있으나 없다. 아이들과 하루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다. 불만은 없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아빠라는 사람의 험한 말, 험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엄마와 아빠가 신경전을 벌이는 통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럼에도 그 모든 '독립 육아'의 시간을 빼곡히 채워내느라 글 한 자 써낼 여유가 없었던 이 여름이 종종 야박하게 느껴졌다.


브런치북 연재를 하나 걸어 두었다가 취소했다. 글 목차까지 짜 두고도, 내 손으로 삭제 버튼을 눌렀다.(준 한부모 가정의) '엄마'라는 이름 앞에서 '작가'라는 명찰을 잠시 떼었다. '나중에 다시 달아줄게. 쏟아놓을 것이 많고, 꽃 피우고 싶은 것이 많은 이 가슴에, 다시 꼭 달아줄게' 그리고 오늘, 빨래 정리를 모두 마친 새벽 2시 그 명찰을 만지작 거린다. 다시 달고 싶지만, 또 떠밀리듯 지워질까 두려웠다. 망설이는 마음과 달리 내 손은 이미 컴퓨터 화면을 켜고 있었다.


거실 창밖 빗줄기처럼, 불쑥불쑥 찾아올 일상의 파도가 나를 다시 잠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무모하게 다시 글을 쓰기로 한다. 얼마나 버틸지 모르는 좁은 우산살 아래, 비에 젖은 내 그림자가 움츠려 앉아 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여름 한 철 모두 타 들어간 내 마음을 두드리며 적신다.




*** 여성가족부 2023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 가정의 82%가 양육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정서적 부담이 매우 크다고 한다. 저마다의 이유로 '열 명 같은 한 명' 역할을 하는 모든 한부모 가정의 엄마, 아빠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전하고 싶다. 비는 또 내리겠지만, 우산을 펴는 사람은 결국 살아내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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