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정신적 외상 유대감'에 갇혀 있나요?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자가점검

by 겨자풀 식탁


저는 지난 글 '부러진 발톱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에서 '정신적 외상 유대감(trauma bonding)'에 묶여 있던 경험을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적 외상 유대감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돌아보고, 그 고리를 끊는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유해한 배우자와 저의 결혼 생활은 '갈등(葛藤)'으로 점철된 생활이었습니다. '갈등(葛藤)'을 뜻하는 등나무와 칡덩굴처럼, 유해한 배우자와 저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휘감아 올라가며 버텨온 세월만큼 점점 더 단단히 엉켜버렸습니다. 결국,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야만 끝이 나는 파괴적인 관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등나무와 칡덩굴은 기둥이 되는 나무를 타고 올라갈 때 감는 방법이 서로 반대다.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간혹 칡덩굴과 등나무가 같은 기둥나무에 얽히면 감는 방향이 서로 다른 이 둘이 얽히면 모습이 매우 복잡해지고 생장에도 큰 지장을 준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의 이런 상황을 빗대어 탄생했다. 갈등상태에 놓인 칡과 등나무의 경쟁은 처절하다. 한 나무가 고사(枯死) 한 후에야 끝난다고 한다.” - 신종찬(출처: 등나무와 칡덩굴은 왜 서로 갈등(葛藤)할까?)


유해한 학대자의 삶의 방식도, 그가 추구하는 결혼생활도, 모두 다 저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럼에도 ’ 결혼’이라는 하나의 기둥을 타고 함께 자라 보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매일 그의 기분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랐습니다. 그의 눈빛 하나, 한숨 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실수라도 하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고,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나는 날마다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했고, 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그렇게 고사(枯死)했습니다.


이 지독한 ‘죽음의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첫걸음은 자신의 상태를 정직하게 인식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신적 외상 유대감(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의 증상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혹시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이런 감정에 자주 빠지는지 한 번 돌아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신적 외상 유대감(trauma bonding)을 경험할 때 당신은:


1) 학대당한 것을 당신 탓으로 여긴다.

2) 그 사람의 학대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들 탓을 한다.

3) 학대하는 사람을 화나게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피한다.

4) 학대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골똘히 생각하면서 추측한다.

5) 학대하는 사람의 일정과 습관을 자세히 알고 있다.

- 스테파니 사키스, <상처받은 관계에서 회복하고 있습니다> 중에서


1) 학대와 무시를 당하면서도 이를 정당화한다.

2) 나르시시스트 상대가 말하는 허황된 약속과 거짓 가득한 퓨처 페이킹(future faking) 내용을 믿는다.

3) 만성적으로 갈등을 경험한다. 헤어짐과 화해, 같은 싸움을 반복한다.

4) 상대와의 관계가 마법 같고, 형이상학적이거나 신비로운 관계라고 생각한다.

5) 관계가 끝났을 때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6) 나르시시스트 상대가 원하는 인정과 칭찬을 ‘원스톱 서비스‘처럼 다채롭게 제공한다.

7)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숨긴다.

8) 관계에 대해 사람들에게 합리화하거나 독성 패턴을 숨긴다.

9) 관계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10) 갈등을 두려워한다.

- 라마니 더바슐라,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중에서


위에 적힌 목록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있나요? 저는 거의 다 해당 되었던 것 같습니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책과 영상으로 공부하며, 끈질기게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지금은 배우자와의 ‘정신적 외상 유대감(trauma bonding)’을 다 끊어냈습니다.


*** 만약 위 목록에서 자신을 발견했다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전문가 상담을 받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세요. 작은 변화가 결국 큰 탈출의 시작이 됩니다. ***


관계의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을 지워버린 모습(이미지 출처:Depositphotos)


모든 증상을 단 하나의 증상으로 요약하자면, ‘정신적 외상 유대감(트라우마 본딩)’에 묶인 사람에게 진정한 의미의 '나'는 없습니다. 학대자인 상대방의 욕구와 호불호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습니다. 최대한 갈등을 피하거나 최소화해야 하니까요. 그렇게 ’나‘를 없애가면서까지 노력하는 이유는 ’ 관계가 나아질 수 있다 ‘는 기대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혹은 내가 어떤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과의 관계도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하는 겁니다. 그 결과, 상대방의 유해한 행동 패턴을 숨기거나 변호하고, 심지어 학대자를 합리화하기 위해 제삼자나 환경을 탓하기도 합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정신적 외상 유대감‘에 갇혀 있다고 해서 당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너무 약하고 의존적이거나 혹은 관계에 중독된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는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원제: IT'S NOT YOU)>에서 ‘정신적 외상 유대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공감 능력이 있고, 인지 기능이 정상이며, 사회적*문화적 규범과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라온 사람이라면 충분히 관계에 매몰될 수 있다. 자기애적 관계는 헤엄쳐 나가려고 해도 다시 끌어당기는 급류와 같다 “


'급류' 속에서 허우적 대며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모습, 그럴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모습은 딱 과거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애적 학대 행동으로 인해 이 물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떠나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 떠나면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문제(재정, 안전, 문화, 가족), 애착, 소통, 사랑에 대한 자연스러운 욕구 때문에 이 물결의 힘에 계속 끌려다니게 된다 “



급류 속에서는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떠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해한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력, 가족, 문화적 압박까지 합류하면 더 거센 물살이 되어 나를 송두리째 집어 삼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급류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요. 수영 실력을 아무리 연마한다 해도 급류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급류에서 살아 남으려면 최대한 신속하게 빠져나와야 합니다.


'정신적 외상 유대감' 증상 점검 목록을 뒤집어서 생각하고 행동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1) 학대당한 것을 내 탓으로 여기지 않는다.

2) 그 사람의 학대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 탓을 하지 않는다.

3) 학대하는 사람을 화나게 하는 모든 행동을 피하지 않는다.

4) 학대하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골똘히 생각하지도 추측하지도 않는다.

5) 학대하는 사람의 일정과 습관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다.


1) 학대와 무시를 당하면서도 이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2) 나르시시스트 상대가 말하는 허황된 약속과 거짓 가득한 퓨처 페이킹 내용을 믿지 않는다.

3) 만성적으로 갈등을 경험하기를 거부한다. 헤어짐과 화해, 같은 싸움을 반복하기를 거부한다.

4) 상대와의 관계가 마법 같고, 형이상학적이거나 신비로운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5) 관계가 끝났을 때의 상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6) 나르시시스트 상대가 원하는 인정과 칭찬을 ‘원스톱 서비스‘처럼 다채롭게 제공하지 않는다.

7)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숨기지 않는다.

8) 관계에 대해 사람들에게 합리화하지 않고 독성 패턴을 숨기지 않는다.

9) 관계에 대해 나쁜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10)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유해한 학대자는 상대방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먹고 삽니다. 미안해서 양보하게 만들고, 두려워서 배려하게 만듭니다. 갈등을 피하고 싶은 두려움, 갈등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죄책감을 먼저 벗어 버려야 합니다. 유해한 학대자는 갈등을 먹고사는 기생충과 같습니다. 학대를 향한 굶주림은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먹힐 필요가 없습니다. 미안함도, 두려움도 내려놓으세요. 그들이 더 이상 당신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당신의 삶에서 그들을 굶기세요. 그것이 바로 정신적 외상 유대감을 끊는 첫걸음입니다.


*** 정신적 외상 유대감(트라우마 본딩)'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혼자서 빠져나오려 하지 마세요. 지금이라도 도움을 요청하세요. 전문가 상담을 예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와 대화하세요. ***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 관계 면역력 밥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부러진 발톱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