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를 설득하려 들지 마세요

근본적 수용(Radical Acceptance) #1

by 겨자풀 식탁


저는 '유해한 관계 해방, 뭣이 중헌디?!'에서 유해한 관계를 끊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손절은 물리적 손절이 아니라 '정신적 외상 유대감(트라우마 본딩)'을 끊는 것이라고 했죠('부러진 발톱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참고).



오늘은 정신적 외상 유대감(트라우마 본딩)을 끊는 원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그 원리를 이해하는 좋은 비유가 공자의 가르침에 있습니다. 공자는 길에서 똥을 누는 사람을 혼냈지만,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사람을 보고는 "저 놈을 피해 가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후자는 부끄러움을 몰라 아무리 엄하게 가르쳐도 변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유해한 학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대자는 당신이 눈물을 흘릴 때조차 속으로 미소 짓습니다. 당신이 괴로워할수록, 그들은 더 큰 통제감을 느끼니까요. 상대방이 아무리 힘들다고 호소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방이 자기 때문에 울거나 소리 지르며 화를 낼수록,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영향력을 만끽합니다.




공자의 가르침이 학대자의 본성을 설명했다면, 라마니 박사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는 유해한 학대자는 '날씨'와 같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운 지역에 갈 때 어떻게 하나요? 두껍고 따뜻한 옷을 준비하죠. 반대로, 무더운 지역에 갈 때는 얇고 시원한 옷을 챙깁니다. 우리는 날씨에 맞춰 옷을 입습니다. 왜 그렇죠? 우리가 날씨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학대자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날씨입니다. 태풍이 오면 우리는 태풍을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비를 입고, 피할 길을 찾죠. 따라서, 학대자를 바꾸려 노력하는 대신 학대자라는 날씨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옷이 바로 '근본적 수용(Radical Acceptance)'입니다.


그러면, 근본적 수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근본적 수용'은 '호구되기'가 아닙니다.

1. 유해한 학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 타당하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2. 유해한 관계에서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것도 아닙니다.

3. 학대자에게 당하고도 가만히 있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근본적 수용'은

1. 유해한 관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2. 학대자의 행동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3. 관계를 개선하려고 기운을 뺏기는 대신 나 자신의 치유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근본적 수용을 위해서 반드시 버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희망'입니다.


항상 나쁜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야.

싸울 때는 힘들긴 했어도, 분명 가족 간에 사랑을 느낀 적도 있어.

사람 사이 관계가 다 그렇지. 쉬운 관계가 어딨어.

힘든 상황만 해결되면 관계도 좋아질 거야. 삶이 고될 땐 누구나 다 까칠하잖아.

원래 인간은 치열하게 일하고 치열하게 싸운다잖아.


이런 자기 위안은 마치 가라앉는 배에서 물을 퍼내며 '아직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적 수용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뒤에 맞닥뜨릴 감정들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헛된 희망이라도 품고 익숙한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 겁니다.




'아는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낫다(Better the devil you know than the devil you don't)'는 말이 있죠. 학대자의 유해한 행동 패턴이 '아는 악마'라면, 근본적 수용과 함께 겪어야 하는 슬픔, 분노, 죄책감, 무력감 등은 '모르는 악마'일 겁니다. 어차피 힘들 거, 익숙한 고통이 더 낫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악마'와 함께하는 삶은 아무리 익숙해도 끝이 없습니다. '모르는 악마'와 싸우는 길은 낯설지만, 끝이 있습니다.


아는 악마를 택할지, 모르는 악마를 택할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학대자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날씨입니다. 길거리 한가운데서 똥을 누는 사람처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학대자와의 관계"퍼즐을 맞추려다가 퍼즐 조각이 하나 빠진 것을 알게 된 경우"와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완성되지 않는 퍼즐처럼, 끝내 채워지지 않는 관계입니다.



근본적 수용은 길 한가운데서 똥을 누는 사람을 피해 가겠다는 선택입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날씨에 맞는 옷을 준비하겠다는 선택입니다.
조각이 하나 빠진 퍼즐을 맞추려 애쓰는 대신 새 퍼즐을 사겠다는 선택입니다.

woman with raincoat.jpg 폭풍우 한 가운데에서라도 우비를 챙겨 입고 나를 지켜야 합니다.


물론, '근본적 수용'을 하기로 했다고 해서 즉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대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변함없이 당신을 괴롭히려 들 것입니다. 그것까지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 수용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더 이상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그들의 말과 행동이 나를 정의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학대자라는 날씨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러기에 더 단단한 옷을 입고, 폭풍우에 휘둘리지 않기로 합니다. 상대방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의 파도를 더 잘 다스리는 선장이 되어야 합니다.


근본적 수용의 구체적인 방법들은 다음 글에 이어서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본적 수용이 없는 상태에서 치유를 시도하는 것은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날 걷는 것과 같다. - 라마니 더바슐라 -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 관계 면역력 밥상



[이 글은 라마니 더바슐라 박사의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를 참고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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