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RD 지하벙커'를 만드세요

학대자로부터 나를 지키는 심리적 방어법 #1

by 겨자풀 식탁

** <유해한 학대 면역력 밥상> 매거진은 정신적•정서적 학대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만약 신체적•물리적 학대로 피해를 받고 있다면, 즉시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합당한 법적 보호 조치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학대자와의 대화가 늘 피곤하게 느껴지나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한 말은 왜곡되고, 결국 내가 더 상처받는 것 같나요?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심리적 방어법'입니다.


앞서 저는 날씨를 설득하려 들지 마세요 에서 근본적 수용은 "길 한가운데서 똥을 누는 사람을 피해 가겠다는 선택,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날씨에 맞는 옷을 준비하겠다는 선택, 조각이 하나 빠진 퍼즐을 맞추려 애쓰는 대신 새 퍼즐을 사겠다는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학대자도 학대할 권리가 있다고요? 에서는 학대자를 향해 "당신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말하는 대신 "당신도 그럴 권리가 있지"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학대자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사과나무에서 포도를 찾지 않고 사자에게 달걀을 내놓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했죠.




이제 "근본적 수용"에 걸맞은 옷을 갖춰 입으려면, 먼저 학대자라는 날씨가 어떤 요소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라마니 더바슐러 박사는 학대자를 판별하는 특징 여섯 가지(CRAVED)를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C (Conflic): 고강도 갈등 유발자

R (Rigid): 경직된 고집불통

A (Antagonistic): 적대적 태도

V (Vulnerable & Vindictive): 피해자 행세 & 보복 추구

E (Entitled & Exploitative): 특권의식 & 착취적

D (Dysregulated): 자기 조절 능력 결여


즉, 학대자라는 인재(人災)에서 살아남으려면, '갈등' '경직된 사고' '적대감' '피해자 행세' '보복적 처벌' '착취' 통제'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기상 현상은 한번 시작되면 사람의 의지로 멈출 수 없죠. 학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대자의 기상 변화가 한 번 시작되면 어지간해서는 멈추기 어렵습니다. 사전에 미리 방지하거나 차단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것이 바로 "심리적 방어법"입니다.




가장 좋은 방어법은 학대자가 폭풍우를 몰고 올 연료 공급을 아예 차단하는 겁니다. 학대자의 가장 큰 연료는 무엇일까요? 바로 학대 대상인 '나'입니다. 학대자는 '나'라는 연료로 자신의 학대에 동력을 부여합니다. 내가 공급하는 연료가 줄어들면, 학대자의 동력도 감소합니다.


학대자가 필요로 하는 연료를 쉽게 기억하기 위해 저는 ‘NER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N (Needs): 나의 필요

E (Emotions): 나의 감정

R (Relationships): 나의 관계

D (Defense): 나의 자기 방어


"얼간이(nerd) 같은 학대자의 행동을 연료 삼아 학대 관계 NERD(전문가) 되기"라고 기억하면 좋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NERD(괴짜)처럼 학대 패턴에 대한 전문가가 되어보세요.


먼저, 각 연료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필요(Needs) | 어떻게든 '나의 필요(Needs)'를 도구 삼아 괴롭히며 통제를 만끽합니다. 학대자는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필요에서부터, 급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응급 상황, 중요한 행사, 몸이 아플 때 필요한 돌봄 등, 상대방의 모든 '필요'를 무기로 사용합니다. 자신이 필요를 채워주는 것처럼 행동한 후, 이를 빌미 삼아 착취에 활용합니다. 혹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의 필요를 무시하거나, 실수인 것처럼 엉뚱한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경제력이 없는 배우자나 아이들에게는 생계나 기타 재정을 무기 삼아 통제하려 들는 경우도 많습니다.


감정(Emotions) | 나의 감정은 학대자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급 연료입니다. 학대자는 상대방이 느끼는 희노애락을 백 프로 활용합니다. 기쁜 일이 있다고 하면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기운을 뺍니다. 슬프다고 하면 예민하게 군다며 그걸 바라보는 자기가 더 힘들다고 합니다. 분노는 학대자가 가장 애정하는 감정반응입니다. 상대방이 분노하는 모습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이 오히려 피해자인 것처럼 역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관계(Relationships) | 나의 관계는 학대자의 '적군' 혹은 '지원군' 명단입니다. 내가 신뢰할 수 있고 나와 관계가 좋은 사람들,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간질해서 끊어내려 합니다. 반대로, 학대자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편으로 만들려 합니다. 그들에게 나에 대한 거짓 소문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자신의 학대 사실은 숨기고, 반쪽 짜리 사실만 전달하며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 갑니다.


자기 방어(Defense) | 나의 자기 방어는 학대자가 누르는 '비상벨'입니다. 본인이 궁지에 몰린다고 느낄 때 상대방에게 초점을 돌리기 위해 누르는 버튼입니다. 거짓말,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사실 왜곡, 등 모든 말을 버무려서 막무가내로 폭격하듯 던집니다. 상대방이 어이가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라고 반박하게 만드는 게 목표죠. 그리고 나면, 상대방의 자기 방어 태도를 빌미 삼아 비난합니다. "이거 봐, 늘 싸움을 시작하는 건 너야!"라며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절대 듣지 않습니다. 중간에 말을 자르고 아무 말 폭격을 이어갈 뿐입니다.




그러면 이 연료를 보호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볼까요? 그 공간이 바로 ‘NERD 지하벙커’입니다. 이제 지하벙커 비밀코드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이 다소 길더라도, 더 안전한 보호구역을 만들기 위한 정밀 코드라 생각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N(Needs): 나의 필요

'나는 이제 혼자다'라고 생각한다.

나의 필요를 가장 먼저 헤아리고 채워줄 사람은 '나 자신'이다.

학대자에게 나의 필요를 굳이 알리지 않는다.

학대자에게 나의 필요를 알리는 것은 무기를 주는 것이다.

학대자가 나의 필요를 알게 되었을 때, 적절한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학대자가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다면, 약속을 깰 것을 예상하고 차선책을 준비한다.

차선책이 없는데 학대자가 도움을 철회하면, 제삼자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혼자 해결한다.

나의 필요를 채워주겠다며 애정 공세를 하면, 나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라며 정중히 사양한다.


E(Emotions): 나의 감정

나의 감정 '지하벙커'를 만든다.

나의 감정은 내가 가장 먼저 돌본다.

학대자와 함께 있을 때는 '감정의 지하벙커'에 들어간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공유하거나 내비치지 않는다.

'감정의 지하벙커는' 나를 보호하는 도구다.

'감정의 지하벙커'는 학대자를 위한 내 감정 억압이 아니다.

"기분이 좋아/안 좋아 보이네?"라고 말하면, "그래? 잘 모르겠는데. 아무 생각 없었어"라고 말한다.

'분노'를 보이는 것은 학대자에게 '핵폭탄'을 주는 행위이므로 반드시 지하벙커로 안전하게 숨긴다.

'분노'의 감정이 올라올 때 3초 멈추고 심호흡한 후 대화를 멈추고 다른 핑계를 댄 후 자리를 뜬다.

나의 감정을 따로 공유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일기, 비공개 블로그, 신뢰할만한 가족 및 친구)을 마련한다.


R(Relationships): 나의 관계

내가 나에게 가장 다정하고 친절한 친구가 되어준다.

학대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한시적으로라도) 거리를 둔다.

학대자를 이해하라고 충고하거나 학대자와의 화해를 강요하는 사람들과는 (조용히) 연락을 끊는다.

"네 친구 00가 너 요즘 이상해졌다던데?"라는 식의 말을 하면, "응, 그랬구나" 하고 대화를 중단한다.

내 지인 험담을 하며 만나지 말라고 하면, "생각해 줘서 고마워. 내가 알아서 할게" 하고 대화를 중단한다.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학대자에 대해 솔직히 터놓는다.

(건강, 재정, 아이들, 등)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확보한다.

상담, 심리치료, 정신과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D(Defense): 나의 자기 방어

나는 학대자를 설득할 필요도, 학대자에게 설명할 의무도 없다.

학대자의 '의견'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설명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무조건 일단 멈춘다.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고 싶은 '억울한 마음'이 들면, 내 지하벙커에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필수 정보 전달'(행사 날짜, 아이들 관련 병원 방문, 가족 생일, 등) 외 대화는 최소화한다.

내 탓을 하는 말을 하면 "아, 그렇게 생각했구나. 알겠어" 하고 넘긴다.

학대자가 나에게 행동을 바꾸라고 요구하면 "나는 생각이 좀 달라. 알아서 할게"라고 한다.

자기를 무시하느냐며 피해자 행세를 하면, "당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할 수 없지"라고 한다.

나의 일처리 혹은 양육 방식을 비난하면, "당신은 모르겠지만, 요즘 전문가들은 다 이렇게 하라고 해"라고 한다.

그럼에도 아무 말 폭격을 이어가면, 적당한 핑계를 만들고 "지금 대화하기 좀 어려워"라고 한 후 자리를 뜬다.


지하벙커에 들어간다는 건
나를 '안전 모드로 전환한다’는 의미입니다.
얼굴 표정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유지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비밀 상자에 잠시 넣어두는 거죠.

대화의 종지부를 찍어 NERD 지하벙커 문을 굳게 잠그셔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반드시 내가 하는 말로 대화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지하벙커'가 활성화됩니다. 내 말을 빌미로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학대자가 대화를 이어가도록 허용하면, 지하벙커의 문을 닫을 수 없습니다.


학대자는 분명 말꼬리를 잡고 늘어질 겁니다. 그럴 땐, 바쁜 척을 해도 되고, 잠시 전화나 문자가 온 것처럼 해도 되고, 사 와야 할 것 또는 깜빡한 중요한 일이 있다며 아예 자리를 떠도 됩니다. 그래도 학대자가 끈질기게 아무 말 폭격을 하면, 위 예시에 제공된 말을 열 번 반복해서라도 대화를 끝내세요. 학대자가 원하는 대로 대화를 주도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응, 알겠어" 또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로 대화를 끝내세요.


물론, 단번에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나의 감정은 더 잘 다스리고 학대자의 패턴은 더 잘 포착하게 되었습니다.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시행착오야 말로 내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어느새 학대자의 패턴을 일기 예보처럼 읽어낼 수 있게 됩니다. 시도하는 모습 자체가 이미 학대자에게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작은 성공을 자축하세요. 자신을 마음껏 응원해 주세요.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근본적 수용'은 무엇인가요? 오늘 내가 나만의 'NERD 지하벙커'에서 안전하게 지켜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씩 천천히 시도해 보세요. 당신은 이미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 중입니다.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겨자풀식탁이야기

#유해한 관계 면역력 밥상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정서적 학대와 항암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