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도 식이요법이 필요합니다
애플사이다비니거가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프로바이오틱스가 들어있는 발효식품인 애플사이다비니거는 소화와 혈당 조절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죠. 그래서 건강 관련 콘텐츠에 자주 등장합니다. 녹차도 대중적인 건강식품 중 하나입니다.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체중조절과 심혈관 건강에 유익하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혹시 아시나요? 암환자들에게는 애플사이다비니거나 녹차와 같은 ‘건강식품’이 오히려 회복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면역력이 이미 많이 낮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약물치료 혹은 항암치료 후 몸속 장기들이 일반인과는 다른 돌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치료를 위해 복용 중인 약이 특정 음식과 만났을 때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지에 따라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학대 경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서적 학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과 같습니다. 서서히 몸과 마음을 갉아먹죠. 따라서, 학대 경험자에겐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인간관계’에 관한 조언 혹은 계발서, 인간관계심리학 등은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일반적인 관계의 원칙들이 유해한 관계와 만나면 해로운 상호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학대 관계에 있는 사람이 관계가 호전될 수 있다 믿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갈수록 끊기 어려운 정서적 올무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죠.
학대를 경험하고 있는 분들, 혹은 학대를 경험했던 분들은
진정한 회복과 치유를 위해
가장 먼저 ‘관계 식이요법’을 바꿔야 합니다 – 겨자풀 식탁 -
첫째, 주변인들의 ‘맞는 말’을 거르세요
우리는 서로의 말을 경청하며 성장합니다. 하지만, 학대 경험자의 경우 주변인들의 ‘맞는 말’을 거르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변인들의 '맞는 말’은 대개 일반적인 관계원칙에 근거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은 말들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기회를 한번 더 주면 나아질 수 있다.
사랑으로 허물을 품어줘야 한다.
어릴 적 상처가 너무 깊어 그런 것이니 더 이해하고 감싸줘야 한다.
어떤 관계든 다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는 다 알 수 없다.
너에게도 분명 잘못한 점이 있을 거다.
상대방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더 바라보고 칭찬해줘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자꾸 꺼내 들추는 것은 관계를 악화시킨다.
하나씩 적어 내려가려면 아마 끝이 없을 겁니다. 유해한 학대 관계가 아닌 일반적이고 건강한 관계에서는 타당한 조언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대 관계에는 이런 원칙들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학대자들이 관계에 갖는 기대치와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해는 위에서 언급한 보편적인 원칙들과는 거리가 매우 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보편적인 관계 원칙들을 왜곡해서 자신의 학대를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학대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학대자의 심리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이 되고 싶은 선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무지에서 나온 '맞는 말', '좋은 말'은 오히려 더 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암환자에게 타이레놀을 한 알 건네주며 이 약을 먹으면 열이 내릴 거라고 말하는 격입니다. 항암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매일 아침 녹차를 마시면 분명 나을 거라고 말하는 격입니다. 암에 대한 정확한 지식 없이 암환자를 대한다면, 의도치 않게 그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암환자라면, 그런 사람이 하는 조언을 덜컥 받아먹어서는 안 됩니다.
학대에 관한 지식 없이 ‘선의’와 ‘호의’로만 ‘유익한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말을 거르세요.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말을 흘려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따뜻한 ‘선의’의 손으로 건넨다 해도, 독이 든 물을 먹을 수는 없으니까요.
둘째,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세요
내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맞는 말’을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보세요.
“내가 겪고 있는 관계는 일반적인 관계와 달라. 나를 걱정하는 네 마음은 알겠지만, 그런 말들은 오히려 내가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도록 나를 제자리에 묶어두는 말들이야. 건강한 사람에게는 애플사이다비니거와 녹차가 좋을지 몰라도 암환자에게는 오히려 정반대라고 하더라. 건강한 관계에서는 네 말들이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학대 관계에 놓여있는 나에게는 오히려 나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야.”
상대방에게 직접 말할 수 없다면 스스로라도 먼저 이렇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보편적인 관계의 원칙을 내려놓고, 학대 관계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걸음마하듯 한 걸음씩 내딛으며 스스로 학대에 맞서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내가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를 걱정하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맞는 말’을 거르세요.
대신 다음과 같이 바꿔서 말해보세요.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 학대자의 언행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다. → 학대자가 ‘약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핑계’다.
기회를 한번 더 주면 나아질 수 있다. → 학대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그들의 학대를 ‘용인’하는 것이다.
사랑으로 허물을 품어줘야 한다. → 학대자의 ‘허물’을 품어주는 것은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허용’하는 것이다.
어릴 적 상처가 너무 깊어 그런 것이니 더 이해하고 감싸줘야 한다. → 어릴 적 상처가 학대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상처가 있다고 누구나 학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관계든 다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 학대 관계는 ‘어려움’이 아니라 ‘학대’라는 ‘범죄’다.
한쪽 이야기만 들어서는 다 알 수 없다. → 학대자는 모든 이야기를 왜곡하고 재창조한다.
너에게도 분명 잘못한 점이 있을 거다. → 내가 잘못한 점이 있다고 해서 학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더 바라보고 칭찬해줘야 한다. → 상대의 ‘나쁜 점’이 아니라 ‘학대 행위’를 사실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자꾸 꺼내 들추는 것은 관계를 악화시킨다. → 학대자의 ‘과거’의 잘못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며, 학대자는 이를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받는 학대를 다시 용인하고 정당화하는 말들이라면, 아무리 친한 사람의 말이라 해도, 심지어 가족의 말이라 해도, 절대 귀 기울이지 마세요. 그들의 ‘선한 의도’가 나에게 항상 ‘선한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관계의 법칙'을 따르느라 내 삶에 '학대 무한 리필'을 허용한다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2차 가해를 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이다.” – 엘리 비젤(Elie Weissel)
#누구도 학대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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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한 관계 면역력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