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위한 선행학습
25년 전, 내가 운전을 처음 배웠을 때만 해도 '초보운전' 스티커 디자인은 딱 하나였다.
'초 보 운 전'
요즘 초보운전 스티커는 디자인도 다양하고 문구도 창의적이다.
'극 한 초 보
지금까지 이런 초보는 없었다
이것은 엑셀인가 브레이크인가'
'혈중초보농도 99.9%'
'내 차도 내가 무섭대요'
'초 보 운 전
당황하면 후진함(후진전적 2회)'
문구가 귀여워서라도 양보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스티커들을 보며, 나의 초보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문구는 '결초보은'이었다. "이 은혜 다른 초보분에게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결초보은' 중앙에 위치한 '초보' 두 글자를 강조하고 있는 디자인이다.
언어유희와 의미를 동시에 끌어낸 것도 맘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초보운전의 공포나 미숙한 운전 실력 대신 초보에게 베풀어야 할 '선의'를 강조한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초보운전자에게 양보를 해줌으로써 나에게 당장 돌아오는 이득은 없다. 그럼에도 내 배려로 인해 앞 차 운전자가 편하게 초보일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초보였으니까, 누구나 초보인 시절을 거쳐가니까.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 경력자에게서 초보자로 양보운전의 은혜가 흐른다.
언젠가 지인이 이제 막 면허를 따고 차를 샀다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초보운전 스티커 커다란 걸로 붙이고 절대 떼지 마! 무적의 스티커야!"
이렇게 말할 수 있다니, 그래도 세상은 아직 다정하고 따뜻한 곳 아닌가 싶었다 '초보운전' 스티커가 '무적' 스티커라는 믿음은 곧 운전이 서툴고 느려도 이해해 줄 거라는 상호신뢰가 존재한다는 뜻일 테니까.
2주 전 즈음이었나. 고령 운전자 전용 스티커에 관한 뉴스보도를 접했다.
솔직히 제목을 보고 클릭하기 겁났다. 고령 운전자 스티커 때문에 오히려 낙인찍혔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반응 속도도 느려져 위험한데 운전을 왜 하냐고 비난하는 건 아닐까. 기타 등등 혐오와 비난의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였다.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예방을 위해 시범적으로 실행한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는 효과가 꽤 좋았다. 운전자 10명 중 7명이 다른 운전자들의 배려를 체감할 수 있었다니, 뉴스 속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지도 모르는 양보 운전자에게 내가 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희한한 점이 있었다.
응답자의 대다수가 고령 운전자 스티커를 붙인 차량에 기꺼이 양보해주겠다고 한 반면, 본인이 65세 이상이 되었을 때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를 붙이겠다고 응답한 사람은 30프로에 불과했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두렵다는 것을 이유로 꼽고 있었다.
왜 우리는 '초보운전' 스티커는 오래도록 붙이고 다니라는 ‘꿀팁'을 주면서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는 붙이기 꺼리는 걸까? 나라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나 역시 찐 할머니가 되어 고령 운전자 스티커를 내 차 뒤 범퍼에 붙이는 상상을 하니, 선뜻 스티커 보호필름을 뗄 수 없었다.
'초보운전'은 올챙이 시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고령운전'은 내가 아직 겪어 보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 개구리 시절'을 가리키고 있어 그런 걸까? '결초보은'의 선순환을 기대하기에는 고령 운전자가 또 다른 고령 운전자에게 은혜를 갚을 시간이 없다 생각해서일까?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나는 다시 초보운전자가 될 일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능숙한 베테랑 운전자라 해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반드시 고령 운전자가 된다. 65세 이후 면허를 취소하지 않는 한 말이다.
65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고령 운전자'로 분류된다. 실제 운전 오작동으로 교통사고를 내는 경우는 75세 이상 노년들에게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어쩌면, 초보운전자는 언젠가 능숙한 운전자가 된다는 확신이 있기에 ‘스티커를 오래 붙이는 게 무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고령운전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가 ’퇴보의 표시’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른다.
운전 능력의 저하는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 보조 장치, 배려 운전 문화, 도로 환경 개선 등을 통해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 노화로 인해 상실하는 기능도 첨단 기술로 메꿀 수 있는 시대다. 일본에서는 이미 차선이탈 경고 장치, 페달 오작동 방지 장치 등을 사용하고 있다.
김영옥은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신체와 정신∙마음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부여되는 정체성과 사적으로 느끼는 정체성 사이에서 나이 듦은 협상과 조율, 적응과 성장의 문제가 된다. 개인별로 협상과 조율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적극적으로 존중받아야 할 사실이다. 아무튼, 나이 듦/늙어감은 배움이 필요한 일이다. 노년기의 적응과 성장을 위해서는 선행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학습에서 불변의 원칙은 바로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그렇다면, '어르신 운전 중' 차량을 향한 양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행학습 기회다. 경적을 울리며 재촉하는 대신 안심하고 천천히 운전하도록 배려하며, 노년에도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깜빡이를 켜고도 몇 번씩 옆을 확인하는 어르신에게 미소로 양보하며, 그분 입가에 번진 잔주름이 곧 내 것이 될 것임을 되새긴다.
노년 선행학습을 하고 싶어도 늙어가는 사람들을 실제로 만날 일이 적어 배울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며, 작가는 이어서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00을 해야 한다'는 열 가지, 스무 가지, 서른 가지의 지침이 아니라 '00 하면서, 00 하게 늙어가고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거다.“
80세까지 운전하기 위한 신체 반사신경 운동 10가지. 고령운전자를 위한 근력 운동 20가지. 물론, 이런 신체 훈련도 좋다. 하지만,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를 붙이고 “안전 운전하며 늙어가고 있는 사람”을 도로에서 더 많이 마주하는 선행학습은 더 귀하다.
혹시라도 도로 위에서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를 본다면, 나의 노년기 선행학습 선생님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고령 운전자의 차를 볼 때마다 ‘운전하는 미래의 나‘를 발견한 반가움을 배려로 표현 한다면, ‘어르신 운전 중’ 스티커도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안온의 대명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겨자풀식탁이야기
#유쾌한 나이듦 언니들에게 물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