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호탕한 데님에 관하여
한낮에는 반팔을 입어야 땀을 흘리지 않고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여름이 부쩍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내 여름의 한 축엔 늘 청바지가 있었다. 장맛비에 축축하게 젖은 모래사장 위에도, 칠흑같이 검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깊은 산속 무성한 수풀 사이에도, 열대야에 갇힌 어느 밤에도, 여름의 면면히 가득 차있다.
뭔가 묻어도 툭툭 털어내면 그만인데다가 산속 깊이 들어가도 천하무적이다. 눅눅한 공기를 머금다가도 볕에 마르면 또 생생하다. 무더움으로 숨 쉬는 것조차 갑갑한 계절에는 덜어내는 것만이 살길이다. 하나라도 덜 입어야 그나마 맞설 수 있다.
그럴 때 만만한 게 청바지다. 덜어낸 아이템의 빈자리를 한 번에 채우기에는 데님만 한 것이 또 없다.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지만, 백 개의 데님 진이 있다면 백 가지의 표정과 기분이 있으니까.
날실과 씨실이 촘촘하게 교차한 옷감의 표면은 거칠고 투박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때로 해방감마저 든다. 이유 없는 반항과 아득한 청춘의 표상 제임스 딘이 입었고, 몸에 딱 달라붙는 흰색 티셔츠와 함께 말론 브란도가 입었다.
데님의 시작은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광 광부들에게 텐트용 천을 팔던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그들의 해진 바지를 보고서 질긴 천막 천으로 광부용 작업복을 만들게 되는데, 때가 덜 타게 하려고 청색으로 염색하면서 ‘블루 진(blue jean)’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스트라우스와 청바지의 역사를 함께 한 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제이콥 데이비스다.
재봉사였던 데이비스는 튼튼한 주머니를 원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바지 주머니를 단단하게 고정하는 ‘리벳’을 발명, 1873년 스트라우스와 함께 특허를 취득하게 된다.
이러한 특허를 통해 리바이스는 진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특징을 만들어냈다. 1890년 수입한 데님 원단을 보관하던 창고 번호 501에서 따온 청바지가 바로 오늘날까지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리바이스 501'이다.
그 후 청바지는 카우보이와 헐리우드 스타, 세기의 반항아들을 거쳐 오늘까지 왔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남자의 옷장에 청바지 한 벌쯤은 다 있다. 그만큼 가깝고 편한 존재다. 입었을 때의 위험 부담은 다소적은 편이지만, 소재 본연이 가진 컬러와 워싱은 미세한 차이를 만든다. 같은 제품이라도 확연히 다르다. 모양새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잘 만들어진 청바지가 필요한 것이다.
엄선해서 고른, 데일리로 즐겨도 좋을 7개의 청바지 브랜드를 만나보자.
아주 정통적인 미국 데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단연 리바이스다. 모두가 알다시피 청바지의 상징 같은 존재이니까. A.P.C.의 남자 장 투이투(Jean Touitou)도 이전엔 리바이스를 입었다.
“캘빈 클라인과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어요.” 브룩 쉴즈의 캠페인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른 캘빈 클라인의 청바지는 그 어떤 것보다 뜨겁고 정열적이다. 살아있다. 별다른 장식은 없지만 단순한 요소에 더해진 절제된 멋스러움만으로도 충분하다.
준야 와타나베처럼 협업에 능한 디자이너가 또 있을까. 2018 봄여름 컬렉션은 리바이스, 칼 하트, 노스페이스 총 세 가지 브랜드와 협업하여 진행되었다. 특히 칼 하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눈여겨볼만하다. 산뜻한 리바이스의 트러커 재킷과 칼 하트의 캐멀 컬러가 패치워크 된 데님의 조합이란. 올봄이 가기 전 꼭 입고 싶다.
진짜는 변하지 않는 법. 완곡한 태도로 타협 없이 고집스럽게 만든 옷은 아름답다. 넉넉하고 담담한 청바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버릇처럼 물든다.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Vintage your denim.
잘 만들어졌다.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사소한 것 하나 소홀하지 않게 기본기가 탄탄하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몸에 잘 맞는 청바지는 매일 입어도 더없이 좋다. 밑 위가 짧고 엉덩이와 다리에 꼭 맞는 호리호리한 핏, 미드 라이즈에 엉덩이는 꼭 맞지만 다리 폭은 넉넉한 핏, 직선으로 툭 떨어지는 스트레이트 핏 총 세 가지가 있다.
과정의 자유를 추구하며, 심도 있게 데님을 연구한다. 입는 사람에 따라 온전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조니 요한슨의 아크네 스튜디오는 프로모션용으로 제작된 샘플 청바지 100벌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의 이들을 만든 것은 단연 청바지이고, 이들의 명성을 이어가게 할 것도 청바지일 것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이탈리아 태생 데님 브랜드. 그 시작은 미국의 데님으로부터 였으나, 60년간 소신 있게 청바지를 만들며 이탈리아의 멋이 고스란히 녹여냈다. 좋은 원단과 오랜 시간 쌓아온 아카이브, 오랜 시간 이어지는 고유의 디테일까지. 실용적이면서도 멋스럽다.
기본 아이템이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한 청바지. 찬란한 당신의 여름을 만들어줄 청바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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