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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고 쌓이다 쌓고 쌓다,

행복해지려고 웃었는데 가면증후군만 걸리던데…

by 철없는박영감

* 이 글은 Spotify for Podcasters (舊 Ancho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anchor.fm/-6552/episodes/ep-e1uqvj4/a-a9aq710


퇴사를 하고 '어..., 어...' 하다 보니 해가 바뀌었다. 일도 안 하고 책만 읽으며 시간을 보내니 다시 우울한 병이 도질까 봐 조심하고 있다. 사실 불안함이 없진 않지만 베짱이가 천직인지 지금의 한량 생활이 꽤 마음에 든다. 얼마 전 외삼촌에게 전화가 왔다. 물론 받지는 않았다. 분명 엄마가 퇴사했다고 말했을 거고, 걱정되어 전화하셨을 거다. 퇴사 전에도 취한 상태로 어쩌다 한 번씩 전화로 잔소리를 하시곤 했다. 마흔 살 넘은 조카가 장가도 안 가고 일만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되셨을 거다. 이제 퇴사까지 했으니 통화 내용이 벌써 짐작이 간다.


'만나는 아가씨는 있냐? 없으면 소개해 줄까? 나 건강할 때 결혼해야 축하해 주러 갈 수 있다. 아프다던데 괜찮냐? 아파서 그만둔 거냐?’


전화는 안 받았지만 이런 걱정 아니었을까? 어쩌면 진짜 걱정은 본인께서 앞으로 나를 직접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음을 걱정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알면서도 잔소리도 듣기 싫고, 걱정도 듣기 싫었다. 특히 왜 퇴사를 했는지 설명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끝까지 안 받았다. 그런데 이튿날 전화벨이 또 울린다. 발신인에 '외삼촌'이 찍혀있다. 이게 뭐라고,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흔들렸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전화벨이 울렸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죄송하게도 진실은 피한 거다. 웃어른으로서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전화벨만으로도 '내 귀로 직접 확인하고야 말겠다’라는 의지가 느껴지니 더 피하고 싶었다. 다 큰 아들이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부모님 걱정시키고 있는 것도 죄송한데, 집안 어른의 전화를 안 받고 있으려니 버릇없고 못된 놈까지 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고, 짜증이 났다. '외삼촌'이 또 뜰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잠도 못 자고 멍하니 스마트폰만 바라보며 현실감각을 잃을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자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애쓰던 안 좋은 기억들이 맞짱이라도 뜨자는 듯이 앞을 가로막았다. 나를 비겁하게 만들었고, 겁이 나서 도망치게 했고, 아프게 했던 기억들... 가스라이팅을 하던 상사, 나이로 깡패 짓 하던 회사 사람들, 날 이용해 먹던 '학교 친구 사람들'의 기억이 그랬다. 초등학교 때 분명히 내 잘못인데 동생한테 뒤집어 씌었던 부끄러운 기억, 일곱 살 때 한글을 배우는데 'ㅎ'을 엄마가 가르쳐 준 것은 싫고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만 쓰겠다고 하다가 매 맞았던 기억까지 가로막았다. 답답했다. 억울하고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퇴사 전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망가트리지 못하게 하려고 방어벽을 쌓았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다.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라는 명언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웃었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쉽게 무너졌다. 그럴수록 단단히 다지기 위해 더 웃고, 더 참았다. 언젠가는 볕 들 날이 올 거라고 초인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스스로 강요했다. 그 당시 지식인들과 책들은 모두 나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놈의 엔도르핀이 뭐라고... 그렇게 나는 엔도르핀에 중독되어 점점 가면을 쓰게 됐다. 가족, 친구들의 걱정에 ‘난 괜찮아요’라고 최면을 걸었다. 가면으로 생긴 괴리감은 술로 풀었다. 그때부터 술을 조금만 마셔도 필름이 끊기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울기도 많이 울고 논쟁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한 10년 정도 그렇게 버틴 것 같다. 그러다가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몸도 마음도 침몰했다.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 후 간수치가 400을 넘었다. 회사에서는 아픈 나에게 이렇게 칼퇴하면서 일할 거면 다른 부서로 가라고 했다. 이 시점에서 퇴사를 결심했던 것 같다.


요즘 베짱이 생활을 하면서 운동, 명상 그리고 독서로 그동안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와 독소를 없애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쌓이고 쌓인 감정, 특히 부정적인 기억으로부터 쌓인 감정은 없어지지 않았다. 호시탐탐 나를 집어삼킬 기회를 엿보면서 남아 있었다. 숨어있지도 않았다. 그냥 원래 자기 자리였다는 듯이 태연히 있었다. 그것들은 당당하고 뻔뻔했다.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다 못해 발작 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내가 불쌍해졌다.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버려 두는 것이었다. ‘이젠 시간이 많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뭔가를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가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흘려듣던 유행가 가사가 갑자기 마음을 후벼 파기도 하고,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감동하기도 한다. 드라마 속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며 몰입하기도 한다. 해외에서 성공하고 있는 한국인들을 보며 '국뽕'에 취하기도 하고, 무용수의 우아하고 역동적인 몸짓을 보며 어설프게 움찔움찔 따라 움직여보기도 한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었다. 호르몬 변화 때문 일거라고 나름 과학적으로 분석도 해봤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내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부정적인 기억을 가볍게 추억거리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공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움켜쥐고 있던 것을 많이 놨다는 것을... 우울이라는 것은 더 이상 병이 아니라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이렇게 작지만 조금씩 마음 자산을 쌓고 쌓아서, 쌓이고 쌓인 것들을 승화시켜 동기부여의 양분으로 삼고 있다. 펌과 피어싱을 하고 액세서리를 사서 치장도 해보고,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통기타 클래스도 등록했다. 나중에는 피아노도 배워서 작곡도 해볼 거고, 이모티콘도 제작해 보려고 한다. 어릴 때, 뜬구름 잡는다고 못하게 했던 것들을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내 뒤로 버티지 못할 만큼 인생의 무게가 쌓이고 쌓여 떠밀려가 버리기 전에 인생의 방향을 바꿔줄 물꼬를 내 앞으로 쌓고 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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